욕구를 억누르고 살아야하는 성범죄자 오성철(이준혁)

욕구를 억누르고 살아야하는 성범죄자 오성철(이준혁) ⓒ 트리필름


성범죄자. 어린 아이를 강간, 성폭행한 사람. 사회에서는 '인간 쓰레기'로 불리고 항상 전자 발찌를 차며 감시당하는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그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악독한 사람. 당연히 그들은 욕을 먹어야하고 벌을 받아야한다. 심지어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해버리자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삶을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그들이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우리의 눈에는 말도 안 되게 비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하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 눈에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삶이란 죽음보다 더 무거운 형벌인지도 모른다.

전규환 감독의 <애니멀 타운>은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그로 인해 딸을 잃고 가족이 무너져버린 사람의 모습을 담는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여주며 영화는 말한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라는 곳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를.

같은 하늘, 같은 도시에 사는 범죄자와 피해자

성범죄자였던 오성철(이준혁)은 곧 철거될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물도, 가스도 이미 끊긴지라 추운 겨울에도 방에 불을 때지 못하는 성철.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은 빨리 이사를 가라는 건물 주인과 그를 감시하러 온 형사들이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막노동을 하지만 현장에서는 회사 사정을 이유로 월급을 절반밖에 주지 않는다. 그 돈으로 성철은 매춘부를 사서 자신의 욕구를 풀려 하지만 그의 성적 능력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물도 나오지 않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욕구를 어떻게든 참아야하는 것이 '성범죄자' 성철의 생활이다.

그는 받지 못한 나머지 돈을 받으려하지만 현장은 건설회사 사정만 이야기하며 지급을 차일피일 미룬다. 돈도 받지 못하고 직장 잡기도 어려웠던 성철은 다행히 한 택시회사에 취직해 택시기사가 된다. 이런 그의 시선은 동네에서 폐지를 줍고 다니는 아홉 살 어린 소녀에게 꽂혀있다.

 성범죄의 피해자 김형도(오성태)

성범죄의 피해자 김형도(오성태) ⓒ 트리필름


조그만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형도(오성태). 아내와 딸이 있던 가장이었지만 지금은 둘 다 그의 곁에 없다. 그는 집에서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만 그건 단지 상상일 뿐이다. 그의 가정을 파괴한 장본인이 바로 오성철이다.

형도의 인쇄소는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다. 인쇄물 주문이 들어오고 만들어서 직접 배달까지 하지만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이 영화 속에선 나오지 않는다. 결국 형도는 회사 사정을 이유로 직원 한 명을 해고한다.

형도는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는 형도를 위로하지 못한다. 아니, 그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주보 인쇄를 맡기고 성가대 연습에 빠졌다는 것만 말할 뿐이다. 심지어 이미 세상에 없는 딸의 안부까지 물을 정도다.

그래서 형도는 교회 장로가 가족들 먹이라고 준 잉어를 길가에 버린다. 그런 형도가 어느 날 우연히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오성철을 발견하고 그의 뒤를 조금씩 쫓기 시작한다.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죽음보다 더 큰 형벌

오성철이 노리고 있는 아홉 살 소녀. 그는 가난한 방에서 할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가 보는 텔레비전에는 늘 트로트가요가 나온다. 생활보호대상자인 이들 가족은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쌀로 끼니를 해결하고, 소녀는 학교까지 빠져가며 폐지를 모으러 다닌다.

쌀을 전달하러 온 사회복지사는 학교를 안 간 소녀에게 학교에 가라고 다그치고 먹을 것을 사러 편의점에 간 소녀를 본 점장은 공짜로 과자 등을 준다. 그렇게 초라하게 살아가는 아홉 살 소녀를 오성철은 욕구를 푸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결국 오성철은 자신을 무시하고 욕하는 여성 손님을 폭행하고 길에 내버린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성철은 목을 매고 자살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목을 매려는 순간, 그의 앞에 김형도가 나타난다. 운명의 순간, 형도는 성철의 자살을 막는다. 죽이고 싶은 마음은 한이 없겠지만 성철의 뒤를 따라다녔던 형도는 알 것이다. 그의 생활 자체가 엄청난 형벌이라는 것을.

영화를 이끄는 것은 오성철과 김형도, 그리고 가난한 아홉 살 소녀와 멧돼지다. 도심 속 멧돼지는 분명 안 어울리는 대상이다. 영화 속에서도 왠지 생뚱맞아 보인다. 그러나 멧돼지를 통해 감독이 보이고픈 의도는 이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도 알고 보면 도시를 어슬렁거리는 멧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잔인한 도시에서 어색하게 살아남아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니멀 타운>을 주목하는 이유는 카메라를 '범죄자의 삶'에도 들이댔기 때문이다. 영화들, 그리고 범죄를 다루는 뉴스들이 크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범죄자를 '악한'으로만 치부하면서 아무런 감정도 주지 않고 그저 살인이나 하려는, 범죄나 저지르려는 사람이라고 그냥 넘어가버릴 뿐, 왜 범죄가 계속 반복되고 그들의 심정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연구를 하거나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 무시해버린다.

<애니멀 타운>은 그 관념을 뒤집는 시험을 한다. 범죄자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것은 결국 그를 감시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로 인한 욕구불만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범죄자와 피해자가 공존하는, 가난한 자들이 아등바등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곳.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도시'다. 동물같은, 짐승같은 도시 '애니멀 타운'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끔찍하게, 어떻게 보면 어이없게 이 모든 상황들이 정리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멧돼지도 모두 잔인한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차소리만 들리는, 정적에 가까운 사고의 현장에서.

전규환 감독의 작품들이 보고싶어질 것이다

 우연히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오성철을 발견한 김형도는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우연히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오성철을 발견한 김형도는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 트리필름


<애니멀 타운>은 전규환 감독의 '타운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2008년 <모차르트 타운>으로 데뷔한 전규환 감독은 이후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을 만들었고 최근 네 번째 작품 <바라나시>를 만들었다.

<애니멀 타운>의 개봉을 시작으로 나머지 '타운' 시리즈, 그리고 <바라나시>가 차례로 극장에 선보인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게 되면 그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작품들이 궁금해지고 보고싶어질 것이다.

아무도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으려는 곳을 파고들면서 도시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는 것이 <애니멀 타운>을 주목할 만한 영화로 꼽은 이유다. 물론 너무 기대를 하고 보면 생각보다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한 범죄자들의 꽉 막힌 삶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잘 봤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타운' 시리즈가 어서 개봉하기를 다시 바란다.

애니멀 타운 전규환 멧돼지 이준혁 오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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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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