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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 주얼리호를 납치했던 해적 청년들이 한국으로 이송되고 얼마 후, 인터넷에서는 그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푼틀란드의 영상이 화제가 됐다. 유엔난민기구가 제작한 이 영상은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데, 유엔이 제공한 비닐 천막조차 구하지 못해 나무막대기와 천 조각을 얼기설기 이어 만든 움막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푼틀란드는 소말리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데, 돈과 일자리를 구경하기 어려운 이 지역에서는 그래서 해적의 길로 빠지는 젊은이들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물론 소말리아 다른 지역의 상황도 가난하고 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소말리아는 2008년부터 3년 연속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실패한 국가'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소말리아는 언제부터 그렇게 가난하고 배고픈 나라였을까?

 

블랙호크다운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를 잇는 교차점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오래전부터 이 지역 무역의 중심지였다.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던 시기에 소말리아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영역 다툼으로 몸살을 앓았고 1960년이 되어서야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소말리아는 독립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 다른 유럽 국가들의 내정간섭에 시달리며 독재정권을 경험했고 결국 1991년에는 전국이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 결과는 모두가 기억하듯이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근으로 이어졌다. 다른 나라 일에 큰 관심이 없던 변방의 국가 한국에서조차 소말리아의 굶어 죽는 아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될 정도로 세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유엔과 미국, 영국 등 소위 국제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선택은 남달랐다. 그들은 소말리아에 식량 대신 군대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만들어진 개념이 "인도주의적 개입"이었다. 그들의 새로운 군사전략 실험은 1993년에 미군헬기가 격추되고 미군 18명이 전투 중 모두 사망하는 사건을 맞아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 전투 중에 소말리아 인은 무려 천명이나 사망했다. 영화 <블랙호크다운>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을 계기로 서구사회는 소말리아가 '스스로 도움을 거절한 이들'이라는 구실로 군대를 철수시킴과 동시에 모든 관심과 지원을 끊었다. 그렇게 소말리아는 가난과 무정부상태의 혼란이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국제사회에서 버려진 나라가 되었다.

 

그 후 소말리아 해역에는 대형 외국선박들이 찾아와 수자원을 싹쓸이하고 폐기물을 투기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러시아, 영국, 일본, 한국, 대만, 인도, 미국 등 수많은 나라의 어선들이 소말리아 바다에서 불법어획을 저질렀는데, 이들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매년 약 4억 5천 달러어치의 수자원을 빼돌렸다. 유럽 어선들은 유럽에서 소말리아에 제공한 원조금액의 5배를 도로 가져간 셈이었다. 심지어 유럽의 대형 어업자문회사들은 소말리아 군벌들과 손잡고 외국 어선들에게 조업허가증을 발급해주고 돈을 벌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식량이 잘사는 나라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소말리아 인들은 바다에 버려진 화학 폐기물로 인한 심각한 질병에 시달렸다. 하지만 소말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보호하고 대변해줄 정부가 없었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치 지도자들, 어부들이 UN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들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모두 무시당했다. 그래서 소말리아 사람들은 스스로 해안경비대를 꾸려 불법 행위를 하는 선박들을 단속하고 이들에게 벌금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서구 언론과 정부들은 이들을 해적이라 부르기 시작했지만,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외국 선박들이야말로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자신들을 더욱 가난으로 몰아넣는 해적이었다.

 

'해적질'로 내몰린 사람들

 

그러다 드디어 2006년에 소말리아 사람들에게도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내전 동안 교육과 의료 등 사회 서비스를 제공해오며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왔던 이슬람법정연대*)가 군벌들을 몰아내고 수도 모가디슈를 접수한 것이다. 이슬람법정연대는 반년 만에 소말리아 국토의 절반을 통치하게 되었고, 이에 맞춰 소말리아 사회도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갔다. 심지어 유엔도 이슬람법정연대를 소말리아의 정부로 인정했다. 하지만 희망에 찬 기대도 잠시. '이슬람'이 들어간 이름이 탐탁지 않았던 미국은 에티오피아 정부를 꼬드겨 모가디슈를 침공하고 망명자들로 구성된 과도연합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지지기반이 없던 과도연합정부의 영향력은 모가디슈 밖을 벗어나지 못했고 소말리아는 또다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자신들을 지켜줄 정부가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소말리아 사람들은 다시 총을 들고 바다에 나가야만 했다.

 

외국 선박들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억류 되었다가 돈을 주고 풀려나는 일이 증가하면서 각국 정부들은 소말리아를 통제할 더욱 강력한 조치를 필요로 했다. 아예 해군 함대를 주둔시키는 거였다. 해적의 활동이 더 활발했던 다른 해역에 대해서도 이런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해당 정부들의 반발로 실행에 옮겨진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소말리아는 유엔에서 결정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2008년 유엔 안보리는 소말리아 해역에 군대를 파병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것은 그 동안 지리적 요충지인 소말리아 해역을 차지하고자 했던 외국 정부들에게는 자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인도, 이란, 파키스탄, 일본, 중국 등 20여 개국이 앞 다퉈 해군을 파병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해적 퇴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적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생계형 해적행위가 급증했다. 수십 척의 함대를 피해 인도와 가까운 먼 바다로 나가거나 국제기구의 원조 물품을 실은 선박을 납치하는 일까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함대와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훈련된 각국 해군과는 화력으로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고, 실제로 미국이나 프랑스 등 여러 국가들이 나포선박에 대한 군사작전을 감행하면서 상당수가 사살되거나 먼 나라의 법정까지 끌려가기도 했지만 그들은 해적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 해적질 말고는 다른 돈벌이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해적들이 몸값으로 큰돈을 받아 부동산과 주식을 사고 재벌처럼 살고 있다는 것은 해적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앉아 있는 극소수 두목이나 군벌 지도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일개 해적 청년들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20년간 지속된 무정부 상태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알량한 국제사회의 원조만으로는 앉아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그들은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적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군사력을 동원해 해적을 뿌리 뽑겠다는 국제사회의 전략이 실패해왔고 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군사 작전을 통해 해적들과 충돌하면 할수록 이에 대응하는 해적들의 무장력과 해적 행위의 양상은 더욱 더 대담해지고 있다. 최근 해적들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을 벗어나 먼 바다에까지 나왔다고 놀라는데, 외국함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없던 일이다.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군사적인 대응을 강화하면 할수록 해적과의 싸움은 더욱 크게 번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인질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군사작전

 

또한 억류된 선박에서 벌이는 군사작전은 선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또 다른 위험을 낳는다. 이번 '아덴만의 여명' 작전 과정에서도 하마터면 선장의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일반 인질 사건이 벌어지면 인질의 안전을 위해 병력투입을 가장 마지막까지 미루는 것이 당연한데, 외부로 빠져나갈 방법이 모두 차단된 배 위에서 총격전 끝에 인질을 구출한다는 발상은 인질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해적들이 위협을 느끼면, 그 위협은 곧바로 억류하고 있는 선원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해적들이 원하는 것은 선원들의 목숨이 아니라 돈이다. 금미호를 억류한 이들이 몸값을 낮춰주다가 결국 풀어준 사례가 보여주듯이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그들은 군대를 공격할 의지도, 그럴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각국의 군대는 그들을 적으로 간주해 마치 자신들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총을 쏴대고 그들의 생명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해적도 사람이다. 삼호 주얼리호에서 체포돼 한국으로 이송된 소말리아 젊은이들이 세끼 밥을 깨끗이 비울 정도로 잘 먹고 잠도 잘 자더라는 신문 기사를 읽고 소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떠올랐다. 소설의 배경이 지금의 소말리아라면, 장발장도 그들처럼 해적이 되어 배를 타지 않았을까.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행위를 완전히 없애고 싶다면, 방법은 딱 한가지다. 더 이상 소말리아의 젊은이들이 해적이 되어 바다로 나오지 않게 만들면 된다. 그들이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더 이상 전쟁을 피해 떠돌지 않게 하면 된다. 너무 뻔하고 이상에만 치우친 발상이라고? 아니, 그렇지 않다. 각국 정부가 군대를 파병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과 노력이 소말리아에 식량과 교육, 의료 등 사회 복구에 쓰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국 정부가 3년 째 청해부대 파견 비용으로 사용하는 돈만 천억 원이 넘는다. 거기에다가 그동안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법적으로 훔쳐간 수자원과 환경오염에 대한 보상까지 이루어진다면 소말리아인들은 해적질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른 생계수단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포악한 해적질을 일삼던 그들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2006년에 이슬람법정연대가 소말리아 국토의 절반을 통치했던 6개월 동안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 행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미국이 지원한 에티오피아의 침공이 없었더라면, 1992년에 군대가 아닌 식량을 보내기로 선택했었다면, 국제사회가 지금 해적과의 전쟁에 들이는 노력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소말리아 정국의 안정과 평화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면, 우리가 해적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그들은 지금쯤 충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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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소말리아 정부가 무너진 이후, 이슬람법에 따라 법집행을 해오던 각 지역의 법정들이 구성한 연합조직. 질서를 확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인정받아 상인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며, 1999년에 무장조직을 구성하고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수진 님은 경계를넘어 활동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덴만, #삼호주얼리호, #소말리아, #해적, #금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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