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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32살의 시나리오 작가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후 온라인을 통해 그의 '사인'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고, 젊은 작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영화계의 열악한 현실과 구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최고은 그 후' 기획을 통해 제2, 제3의 '최고은 사태'를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편집자말]
'어느 힘없는 무명 시나리오 작가.'

윤미영(가명)씨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지금까지도 수입이 없는, 아니 가끔 있는 전업 작가"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지난 10년간 윤씨가 시나리오 계약을 맺은 영화는 모두 3편. 이 가운데 영화제작까지 이어진 시나리오는 단 1편. 하지만 이마저도 "촬영까지 다 마쳤지만 투자가 안 돼서" 극장에서는 개봉하지 못했다. 나머지 두 편은 계약금 혹은 중도금만 받았다. 잔금은 받지 못했다. 6개월에서 1년간, 수정에 수정을 거치며 '글노동'을 했어도 영화가 엎어지면 그냥 거기서 모든 계약은 끝난다.

"주면 고마운 거고 안 주면 속상한 거고. 나서서 제대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관행이 있어요."

윤씨는 한 번 더 씁쓸하게 웃었다. 

"최고은씨의 죽음, 내 자신 속 또 다른 내가 죽은 것 같다"

최고은 감독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최고은 감독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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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2007년 대학을 졸업한 최고은씨가 5편의 시나리오 계약을 했다는 건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했다는 것"이라며 "나 같은 경우에는 10년 동안 이러고 있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데 일종의 죄책감 같은 걸 느꼈다"고 했다. "나도 굶어죽었으면 열 번은 굶어죽었겠지만 다만 그녀보다 편한 생활이기에 아등바등 넘겨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평소 "나는 5타수 무안타", "나는 잘 안 팔리는 작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윤미영씨는 "최고은씨의 죽음은, 꼭 내 자신 속 또 다른 내가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울렁증'이 있다는 윤씨가 이날 "혹시 잊어버리고 말 못할까 봐 적어왔다"는 A4 용지 7장 분량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은씨에 대한 뒷이야기가 많다. '굶어죽었다', '병으로 죽었다', '우울증이 있었던 거 아니냐', '알바라도 하지 그랬냐' 등등. 사인과 상황에 대한 논쟁 저 너머에 있는 한 가지 팩트(사실)는 자명하다. '생활고'. 최씨는 5편의 계약을 했지만 영화화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아마 얼마 정도의 계약금만 받고 끝났을 거다. 그런데 만약에 그녀가 정당한 노동력의 대가를 지불받았다면 갑상선 기능항진증쯤은 무난히 극복할 환경이 되진 않았을까. '영화판' 구조가 그녀의 권리를 제대로 지켜줬었더라면…. 복지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불합리한 관행, 부당한 계약에 대한 바로잡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윤씨는 "최고은씨가 겪었던 고통은 아마 작가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가 죽어서도 가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걸 긁어주고 싶다"며 힘들게 인터뷰 요청에 응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윤씨와 한 인터뷰와 그가 작성한 글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윤씨의 말과 글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 윤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신도림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되었다.

"계약 따내기 위해 돈 안 줘도 전투적으로 '글노동'"

배우 김민희가 시나리오 작가로 출연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한 장면
 배우 김민희가 시나리오 작가로 출연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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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가 되려면 보통 공모전에 도전한다. 1년이라는 스케줄이 공모전에 맞춰 돌아간다. 3월, 5월, 6월, 8월, 10월….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가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재능이다. 포기도 안 되는 마음이 미련하기 짝이 없다. '생초짜'부터 기성작가까지 한 공모전에서 경쟁한다. 500~700여 편 되는 작품 중에서 단 몇 편만이 당선이다. 그 어렵고 좁은 문을 통과했어도 상금만 받고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랫동안 공모전을 준비하고 당선됐지만, 영화화되기는커녕 아무 일도 없으면 또 다시 공모전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는 그마저 있던 공모전도 없어졌다. 가장 큰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전도 없어졌고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씨네21> 주최)도 쉰단다. 최근엔 지자체에서 공모전을 하긴 하는데, 열악한 면이 없지 않다. 300만 원이나 500만 원짜리에 당선되면 어떻게 하나 고민스럽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몇백 받고 팔기엔 그 노력과 시간이 말도 안 되게 억울하니까.

설상가상, 영진위에서 하고 있는 '시나리오 마켓'에 대한 올해 정부 지원금이 '0원'이라고 한다. 영화사들이 관심이 사그라져서 조회수도 낮고 매매편수도 적어졌더라도, 심사기준이 어쨌다 저쨌다 해도, 그리고 설사 작품이 매매되더라도 신생영화사에 헐값에 매매되기도 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들려왔어도, 신인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영화사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임에는 틀림없었는데. 그나마 있던 지원도 끊겼다고 하니 막막하니 짝이 없다.

보통, 작가들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사와 계약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진짜로 어렵다. 쉽지 않다. 나 같은 경우 공모전 최종심의에 올라간 후 감독 눈에 띄어 '이런 이야기 한 번 써봐라'고 해서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기획영화'를 하게 될 경우, 소위 '핫'한 작가의 물망에 오르지 못한 무명작가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영화사의 테스트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기획한 영화를 어떤 식으로 풀 건지, 각색일 경우 어떤 방향으로 고칠 것인지. 시놉(시놉시스)이 많게는 십수 번까지 오고 간다.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든가 개봉한 영화가 없을 경우 그 작가와 계약하고 일을 하는 게 불안하기 때문에 (당연할 것이다) 힘없는 작가들은 이런 상황에 방치될 수밖에. 회사에서 작가가 고심해서 써온 시놉이 마음에 안 들면 땡전 한 푼 못 챙기고 뒤돌아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 작품은 여러 작가에게서 돌고 돈다. 한 작품이 이 작가, 저 작가 마구 돌아다니는 동안 작가들은 코 묻은 돈을 받고 배터리처럼 존재한다. 언제 교체될지도 모르는 배터리. '그 작가한테는 더 이상 빼 먹을 게 없어…'. '방전'의 기미가 보이면 교체된다. 영화사가 원하는 게 안 나오면 즉각 교체되는 배터리 인생이다. 작품이 이 작가, 저 작가 손때가 꼬질꼬질 묻을수록 작가들은 방전되어 가고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글을 쓴다.

그때의 작가 심정은 '어떻게든 잘 써줘야 한다. 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돈 안 줘도 전투적으로 '글노동'한다. 계약만 하면 되니까. 처음부터 불평등이다. 영화사 앞에서 왜 나는 작아지는가. 어쨌든 머리 싸매고 기똥찬 이야기로 영화사를 유혹해 계약을 성사시킨다. 이렇게 계약을 하고 나와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다.

"넌 돈 한 푼도 안 받은 상태에서 글 한 줄도 써주지 마."

"영화 엎어지면 모든 계약은 종결, 돈은 재수 좋으면 받는 거고"

배우 김여진이 드라마 작가로 출연한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의 한 장면
 배우 김여진이 드라마 작가로 출연한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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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돈을 받는가 보다 싶다. 돈은 보통 두 번이나 세 번에 나눠서 준다. 작가가 힘이 약할수록 돈을 뒤에 실려 놓는다.

영화가 제작에 들어갈지 아니면 기획개발용으로 좀 끼적여보다가 별로면 접힐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몇 달간 열심히 쓰고 초고 탈고. 중도금 받고 2고 들어가나 했더니 초고 수정하잰다. 그리고 수정, 또 수정. 중도금을 받아야 일할 텐데 수정만 하란다. 6개월에서 1년, 몇 번의 수정 끝에 이게 몇 고일지도 모를 작품이 나왔다. 그런데 중도금을 받아야 할 시점에 영화가 안 될 것 같단다. 재수가 좋으면 중도금 받고 나온다. 악덕 기업주는 중도금도 안 주고 계약금에서 끝낸다.

더 무서운 건 그게 당연시된다는 거다. 영화가 투자가 안 되니까 굳이 지불할 명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무서운 관행. 영화가 엎어지면 그냥 거기에서 모든 계약이 종결되는 셈이다. 재수 좋으면 돈은 받는 거고.

저작권? 저작권이 작가한테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아예 저작권에 관한 모든 건 '갑'의 독점적 소유라고 계약서에 명시된다. 만에 하나 영화가 흥행한다고 해도 작가에게 더 돌아가는 건 없다. 물론 인센티브 계약하는 작가도 있다. 그런데 신인작가에게 인센티브 계약은 멀고 먼 이야기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대단한 것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협회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지만 실제 계약현장에서 표준계약서를 가지고 도장 찍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작품이 각색에 각색을 거치다 보니,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팔았을 경우에는 내 작품이 추락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표준계약서에는 모든 것이 원작가의 승인을 받아서 각색이 되어야 맞는데 그런 계약은 안 해준다. 갑이 원하면 고치는 거다. 

그 뿐인가. 한국에서는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독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수많은 감독들이 직접 각본을 쓴다. 하나의 직업으로서, 감독과 작가의 경계가 명확히 있어야 하지만 감독이 쓰고 작가가 고치고, 또는 작가가 쓰고 감독이 고치고.... 감독과 작가의 사이가 틀어지면 중간에 프로듀서는 환장하면서도 감독의 의견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까. 드라마에서는 작가들이 적어도 자존심 있게 '작가로서의 영역'을 지킬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감독이 철저히 '갑'이다. 가끔씩은 드럽고 치사해서 감독하고 싶다.  

왜, 재작년에 김수현 작가가 임상수 감독이랑 <하녀> 작업하다가 대본 수정 문제로 하차한 적 있지 않나. 그게(감독의 시나리오 수정) 영화판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 때 김수현 작가 보면서, '영화가 많게는 100여 명의 스태프가 함께하는 작업인데 너무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했다.

그렇게 작품이 끝나고 나면, 나도 계약 한 번 해봤으니까 또 일이 들어오겠지. 금방 들어오겠지 한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혹은 1년 2년이 지나도 의뢰 한 번 안 들어온다. 최소한 개봉은 했어야 내가 작가인 걸 알 수 있지. 꼭 '개봉하는 영화'를 쓰자고 다짐을 하지만 실제로 영화화 되는 확률은…. 이러니 시간도 가고 젊음도 간다. 치사하다! 이름 있는 작가가 되겠다고 또 다시 공모전에 도전한다.

"국민연금 못 낸 지 수년... 고용보험? 그게 뭐에 쓰는 건가"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가 남긴 송모씨의 집 출입문에 붙인 쪽지.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가 남긴 송모씨의 집 출입문에 붙인 쪽지.
ⓒ 민중의소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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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고상한 정신적 활동이 아닌 육체노동이다. 정신활동의 대가가 아니라 온몸으로 일하는 직업이다. 노동력의 대가를 공정히 바란다는 건 정말 당당한 일임에도 이상하게 계약서 앞에만 서면 또 작아진다. 공급은 늘 있으니까, 나 아니어도 작가할 사람은 많으니까.

요즘, 이런 말도 떠돈다. 충무로의 잘 나가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어느 작가가 '1000만원'에 '각본 같은 각색' 계약을 했다고. 그 정도로 안 좋다는 말이다. 이런 말도 들려온다.

"500만 원 줄게. 쓸래? 말래? 너 아니어도 하겠다는 사람 많아."

그래도 '500만 원이라도 받고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입에 풀칠하는 게 어디야' 하고 뛰어드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돈 갚으려면 어쩔 수 없어. 노는 것 보다는 낫잖아'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나마 나는 부양가족 없는 혈혈단신 싱글이라 버틴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생계가 안 된다. 빚지지 않고서는. 공지영 작가가 그러더라. '글쓰기를 위해서 밥벌이를 놓는 일은 하지 말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된 건 전업작가를 하면서부터다. 그 말을 일찍이 새겨들었더라면, 하고 후회도 된다.

물론 작가에게 가난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능을 착취당해선 안 된다. 글을 쓰면 쓸수록, 영화 일을 하면 할수록 내핍을 견디며 끝내는 지쳐 스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일은 골방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며 죽어가는 일이 아니라 글쓰기라는 '노동'을 하며 사는 일이기에.

그런데 이 직업으로는 4대 보험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연금은 안 낸 지 수년이 되어가고 산재보험은 당연히 없고. 다행히 건강보험은 가족한테 얹혀있다. 고용보험? 그게 뭐에 써먹는 거란 말인가? 전세자금이라도 대출받을라치면 소득증빙이 어렵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아르바이트도 한다. 글 쓰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르바이트 하면서까지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정말 단순한 직업을 찾는다. 그래도 생활이 안 되니까 마이너스 통장을 만든다. 뭐든지 살 때는 10개월, 12개월 할부로 산다. 차라리 결혼해서 남편 생활비로 가사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작가라는 직업이 상대한테는 마이너스인가 보다. 차라리 무직이 낫다나. 

"선배작가들, 자신들이 걸어온 고난을 한 번 뒤돌아봤으면"

작은 영화지만 몇 년 전에 내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었다.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도 됐지만 결국 개봉은 안 됐다. 결국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공모전에도 당선됐다. 그래도 또 다시 제자리.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늘 상태는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공모전 당선된 작품? 돈 받고 끝났다. 시나리오는 영화사에 영구 귀속됐다. 직장을 다닌다면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승진이라도 있지. 이건 비정규직 파트타이머랑 다를 바가 없다. 내가 그렇게 실력이 없고 못난걸까? 비즈니스를 못해서일까? 초라한 작업실 내 자리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우울증도 걸리고 불면증도 걸리고. 그런데 이거 말고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열정이 떨어져있다가도 좋은 영화 보면 빨리 써야지 싶고.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생각하면서도 '좋은 날이 오면 내가 뒤를 돌아볼까' 싶기도 하다. 

선배작가들이 자기 작품에만 매몰되지 말고 자신이 걸어온 고난을 한 번 뒤돌아보면 좋겠다. 후대의 어린 작가들이 다시 겪지 않아도 될 일이 있다면 그 위험에서 보호해주는 것이 기성세대들의 배려 아닌가. 후배 작가들이 더 이상 불편부당한 계약조건에 희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한편 대박내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시나리오 하다가 감독데뷔 하면 되니까, 굳이 싸울 필요는 없는 거다. 드라마는 안 그런데 왜 영화판만 그럴까. 시나리오 작가는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그래서 누구나 들쑤실 수 있는 하나의 웅덩이 같다.

보통 투자사는 시나리오 완고 후에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투자사의 위험부담은 줄어들겠지만 그 전의 작업과정에서 작가들의 위험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투자가 안 되면 돈도 못 받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제작비 가운데 시나리오 지분, 스태프 지분 등이 합당하게 책정되어야 한다. 노동력의 대가가 현실적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노동력의 대가가 '관행'이라는 이유로 소멸되지 않았더라면..."

최고은씨의 죽음은, 꼭 내 자신 속 또다른 내가 죽은 것 같다. 아주 가까운 내 친구가 죽은 것 같다. 기가 막혔다. '쓰는 일'이 '사는 일'이 아니라 '쓰면서 죽어가는 일'이 되다니…. 나도 굶어죽었으면 열 번은 굶어죽었을 거다. 다만 그녀보다 편한 생활이기에 아등바등 넘겨왔을 뿐. 어쩐지 죄책감도 든다. 예술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그 죽음을 알고 가슴 깊은 상처를 받았을 거다. 박봉에도, 일 없음에도, 무수한 공모전 낙방에도 그렇게 꿋꿋하게 버텨오던 내가 일면식도 없던 그녀의 소식을 듣고 한숨에 무너지는 걸 보면….

팩트는 어쨌건 생활고다. 자신의 권리가, 노동력의 대가가 '관행'이라는 이유로 아사무사 소멸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좋은 제도가 뒷받침되었더라면 적어도 그렇게…. 제2, 제3의 최고은이 얼마나 양산되어야 이러한 시스템이 개선될까.

영화 시나리오는 영화화가 안 된다면 존재의미가 없다. 어느 기사에서는 '무가치하다'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라 더 고통스럽다. 나는 지금 하염없이 무가치한 일에 인생을 쏟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쓰는 이 시나리오가 영화화될 확률이 1퍼센트라면 그 1퍼센트를 믿고 가야 하나? 어쩌면 지금 나는 '삽질'을 하고 있는데, 이 무가치한 일을 언제까지 해야하지. 글을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나이는 먹어가고. 이 길에 살아남아있는 자의 고통같다.

대학시절 부르던 '열사가 전사에게'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최고은, 그녀의 죽음이 묵시하고 있는 것들이 드러나길. 건강한 글쟁이 노동자로서 살고 싶어질 내일이 '오늘'이 되는 날이 비로소 오기를. 


태그:#최고은 ,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작가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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