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현재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갈 데도 없었고 이들이 이뤄내는 역사적인 민주화과정을 지켜보고 싶었기에 피하지 않았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세상과 통하게 하고자 합니다. - 기자말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이날 이집트에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ㆍ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시위대와 경찰 등 3명이 숨졌다.
▲ 무바라크 대통령 사진 찢는 시위자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이날 이집트에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ㆍ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시위대와 경찰 등 3명이 숨졌다.
ⓒ AP=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월 4일] '예전으로 돌아간 카이로'?

2월 4일 금요일, 대통령궁까지 행진하리라던 시위대는 안정과 질서를 원하는 군대의 의견을 받아들여 Tahrir 광장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하기를 기도하며 하루를 보냈다.

2월 5일 역시 간간이 소요도 있었고 카이로의 지역에 따라 총성이 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큰 불상사 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언뜻 카이로는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리고 몇몇 경솔한 외신들은 그런 뉘앙스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CNN> 기자 중 보안국요원들에게 구타를 당했던 이는 보따리를 쌌고, 나의 지인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표현을 이용하여 전세계로 퍼뜨릴 것같은 외국인' 대상의 공격적인 시선에 '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이제 이집트 어디에서고 외국인에게 친절한 현지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좀더 시간이 흐른다면… 그땐 정말 예전보다 더 다정한 그들로 돌아올 것이 틀림없을 테지만 말이다.

2월 7일까지도 미국은 우왕좌왕했고, 2월 5일 저녁 즈음에는 25인 재건위원회라는 단어가 어느 채널에서 한번인가 튀어나왔으나 확인이 이어지지 않았으며 '포스트 무바라크'를 겨냥한 본격적인 야권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또한 군부의 태도는 대단히 모호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발로 '누가 이집트의 정권을 잡든 군부와 함께 가야할 것'이라는 기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도저도 아니라면 군 최고사령관이 이집트를 틀어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남아 있는데, 이미 군출신 대통령 무바라크에 학을 뗀 이집트인들이 다시금 공포정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슬람 형제단, 그들의 행보가 관심을 끈다

무바라크 온갖 탄압과 까탈스러운 정당구성조건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국회의석의 20%를 차지하고야만 무슬림형제단은 전국적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으며 '죽음도 불사하는 화끈한 당노선'을 갖고 있어 그들의 행보가 나의 관심을 끈다.

이들은 현재로선 가장 지구력이 뛰어난 주자들이다. 어떤 차기정권이 등장하더라도(그들은 차기대권에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하였다) 무슬림 형제단은 인정없는 감시자의 시선으로 '껄끄러운' 야당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다.

암로 무사 아랍리그 사무총장의 경우는 워낙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여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조차도 그 얼굴을 알고 있을 정도다. 역시 기득권자였고 지배층의 일원이었던 그이지만 서방으로부터 '존경받는 아랍의 관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는 평가가 현지가 아닌 서방의 매스컴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원래 매스컴이란 것이 이미지 창출의 수단으로써는 독보적이 아닌가. 진정으로 그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이집트 내에 그를 밀어줄 '정당구성요건을 갖출만한 세력'이 없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의 오랜 정적이긴하지만 워낙 국내에 지지세력이 적은 데다 지난 30년간 '온갖 고문과 사선을 넘어온' 무슬림형제단과 견주기에는 정치적인 실적마저 미미하다. 게다가 그는 '조국이 어둠에 갇혀있을 때 조국과 동포들 곁을 떠나있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경우 미국이 지지를 한 이후로 그에 관한 정보가 온갖 국내외 매스컴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다. 요는 서방과 친숙하며 리더십이 있는 인사라는 것인데 역시 만들어진 이미지일 확률이 높다. 정보국 수장이었고 무바라크 정권의 핵심이었다. 또한 무바라크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무바라크가 서방의 언론에 '자신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정보를 '고의적으로' 흘린 것을 보면 얼굴만 술레이만으로 바뀐 것이지 실질적인 이집트의 권력의 핵심에는 여전히 무바라크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난 2주간 누구를 위한 투쟁이었나 다시 한 번 생각하게되는 대목이다.

요즘 매스컴을 보고있자면 누군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일 이 시점에서 국제사회가 '이집트는 평상시로 돌아갔다'는 외신을 그대로 믿고 이집트의 현실에서 관심을 거둔다면 이집트는 새로운 군사정권 아래에서 다시금 질식하게 될 것이다.

냉장고 속 우유는 지난 6일 이미 동이 났고 달걀은 단 한 개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 달걀을 어떤 이유로든 한동안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단지 '나에게도 달걀이 있다'는 위로로 삼을 테니까 말이다.

[2월 9일] 오후 2시 되면 퇴근하는 차들로 도로는 '북적'

"대통령, 당신은 신이 두렵지 않은가?" 2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시위자가 '신이 말하길 잘못을 행하는 모든 자는 멸망한다' 라고 쓰인 천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통령, 당신은 신이 두렵지 않은가?" 2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시위자가 '신이 말하길 잘못을 행하는 모든 자는 멸망한다' 라고 쓰인 천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2월 9일 집 앞 수퍼마켓에 배달차가 드나든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가보았다. 카이로로 들어오는 도로들이 통제된 상태에서 물건들이 채워지니 그 신선도를 선뜻 믿기 어려웠지만 이웃들이 '유제품은 신선한 것같더라'하여 우유를 구입했다.

재난대비용(비상용)으로 분유를 사놓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생소하다며 입도 대지 않았기에 하는 수 없었다. 나는 얼마나 오래 냉동고에 있었던지도 알 수 없는 냉동치킨 두 팩도 함께 구입했다. 무려 17일간 야채와 통조림만으로 버텨준 아이들이 기특하고도 딱해서 역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식품가격이 1월 25일 이전과 비교하여 무려 30%나 올라있었다. 오후에 은행을 가보려고 나섰다가 오후 2시만 되면 부랴부랴 퇴근하기 시작하는 요즘 차량들에 하염없이 길이 막혀 되돌아와야 했다. 내일은 멀쩡한 ATM기기라도 찾아봐야겠다.

퇴근시간의 전경이라도 사진에 담아두려고 아이폰을 꺼내들었으나 도로 주변의 부대 초소들과 떡 버티고 선 탱크들을 보고는 가방 속에 도로 집어넣어야 했다. 어제 오후 시내에 나갔던 지인이 사복경찰인 듯한 자들에게 끌려갈 뻔한 것을 행인들이 나서서 막아주었다던 얘기가 떠올랐다. 여전히 이집트는 안전하지 않다. 외국인에게든 내국인에게든.

타흐리르 광장, 2주간의 구금 끝에 석방된 구글 북아프리카 책임자였던 Ghonim(그호님)은 자신을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영웅은 내가 아니라 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지난 1월 25일 '분노의 날' 시위가 시작된 이후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울먹였다.

"나는 미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

그호님이 말하는 미션이란 이집트 국민의 자유와, 보다 나은 생활의 보장과,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그리고 인권회복이다. 그의 용기와 격려에 사기가 진작된 수만 명의 인파가 이날 타흐리르 광장에 몰려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그간 뻔뻔한 정부와, 진전없이 느슨한 시위대 자신들의 저항 그리고 갈팡질팡하는 서방의 태도로 인하여 호시탐탐 전화위복을 노리던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자칫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시위대였다.

그호님의 출현은 다시 한번 시위대를 각성시키는 도화선이 되어주었다. 2월 10일 이집트 전역에서 맹렬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번에는 노동자계급이 참여한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카이로의 석유 철도 통신분야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고, 알렉산드리아항구의 노동자 1000여 명은 임금인상을 위해 나섰으며, 수에즈운하관할청의 노동자들과 철강업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사태가 악화되자 이집트 외무부장관은 '비상시 군이 개입할 수도 있다'는 다소 위압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평생 '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있던' 이집트인들은 '조국 이집트와 이집트인인 자신들을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어린 딸을 무등태우고 타흐리르 광장으로 나아온 아버지의 눈에는 '나는 죽을지언정 내 자식에게만큼은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2월 10일] 무바라크 하야 성명 기다렸던 시위대, '격노'

10일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대들이 한때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기정사실화하는 쪽으로 흘러가자 기뻐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의 다 왔다, 거의 다 왔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대에 부풀었으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즉각 사퇴를 거부하고 권력을 부통령에게 이양하겠다고 발표하자 순식간에 분노에 휩싸였다.
▲ "이때가 좋았지..." 앞서간 시민들 10일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대들이 한때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기정사실화하는 쪽으로 흘러가자 기뻐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의 다 왔다, 거의 다 왔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대에 부풀었으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즉각 사퇴를 거부하고 권력을 부통령에게 이양하겠다고 발표하자 순식간에 분노에 휩싸였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마침내 2월 10일 저녁이 되었다. 외신은 일제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한발 물러나 정권의 일부를 부통령에게 이임한다'는 타전을 치기 시작했다.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무바라크의 하야 성명을 기다렸지만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는 외신이 흘러나와 저녁 내내 가슴을 졸이며 기대하며 기다렸던 시위대였다. 그들은 전보다 더더욱 실망했고 더더욱 격노했다. 부통령이 아무리 '무바라크 대통령은 실권을 잃었다'라고 발표를 해도 시위대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들의 기준으로 1월 25일 '분노의 날'로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일(11일)이다. 내일 어떤 일이 있어도 무바라크는 물러나야할 것이다."

시위대의 마지막 경고였다. 시위대는 곧장 국영텔레비전청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국내안정'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불사하겠다는 군부의 입장에 눌려 밤새 큰 불상사는 나지 않았다. 무바라크의 태도에 실망한 것은 비단 시위대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은 이제 대놓고 "이집트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즉각적인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라고 무바라크를 밀어붙이고 있다.

두어 해 전 빵 1파운드로 일가족이 연명해야 했던 현실에 항의하며 자살폭탄을 만들어 카이로 한복판에서 터뜨리고 산화했던 어린 대학생의 기사가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때도 모든 이집트인들이 분노로 온몸을 떨고 가슴을 쳤지만 아무도 감히 자신들의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조금만 더 버텨주었더라면 이런 날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독재에 저항하여 일어서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날의 사건 후 하룻밤 사이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그 대학생의 가족과 친지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다. 그들이 살던 구역은 쑥대밭이 되었고 그들은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기사만이 뒤에 남겨졌다.

오늘 하루(2월11일) 여느날보다 더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의 시국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나는 '긴 압제를 딛고 마침내 일어서준' 이집트인들이 자랑스럽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장하다 이집트, 이집트인들. 무바라크가 물러나야한다는 사실을 세계가 인정하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신의 가호가 이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나는 끝까지 지켜보려 한다. 모스크에서 아잔(기도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아미라 리 기자는 현재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교민입니다.



태그:#이집트민중항쟁, #이집트민주화, #그호님, #무바락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