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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급증하는 생계형 범죄

 

월요일이던가?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설 때였다. 갑자기 달려온 아내가 득달같이 묻는다.

 

"혹시 출근할 때 우유 가지고 갔어?"

"아니, 왜?"

 

"우유가 안 와서 전화했더니, 아침에 분명히 우유를 배달했다고 하기에."

"내가 우유를 왜 가지고 가. 그럼 도둑맞은 건가?"

 

"설마 아파트 9층까지 와서 우유를 훔쳐가?"

"신문배달 하다가 목이 말랐나? 아니면 진짜 배고픈 사람이 숨어 들어온 건가?"

 

도선생이었다. 물론 우유 회사에서 우유를 넣지 않고 거짓말 할 수도 있었으나, 정황상 그것은 도선생의 짓인 듯 했다. 보통 우유가 7시에서 8시 사이에 배달되니 아마도 도선생은 내가 출근한 이후 친히 아파트 9층까지 올라와 우유를 가지고 가셨을 게다. 꽤 추운 날씨였던 것 같은데 부지런하기도 하지.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우유 도난은 배달을 받다보면 가끔 일어나는 일이니까. 20년 전에도 그랬고, 10여 년 전에도 가끔 사라지던 우유.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의 흐름인 듯 했다. 약속이라도 것처럼 언론들이 일제히 생계형 범죄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남 광주에서는 김모씨가 생계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빈 건물에 들어가 건축자재를 훔치다 걸리고, 서울 봉천동에서는 전모씨가 1만 여원 짜리 칫솔 세트를 훔치다 걸리고, 수유역에서는 김모씨가 배포용 무가지 60부 짜리 한 뭉치를 훔치다가 걸리는 등등.

 

결국 언론들은 최근 기승하는 생계형 범죄의 원인으로 연초부터 이슈가 되어왔던 물가 인상을 지목했다. 급등하는 물가가 얼마 앞으로 다가온 설 물가와 맞물려 서민들의 시장바구니를 가볍게 만들더니, 급기야는 생계형 범죄를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어느 언론은 이 분야의 전문가라며 경찰대 교수의 발언을 싣기까지 했다. "물가가 오를 때마다 '장발장식'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게 되는데 "경기가 침체되고 생활이 어렵다고 해서 사회 전반의 준법의식이 저하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청한 것이다.

 

생계형 범죄의 이면

 

 

가파른 물가 인상으로 인해 급증하는 생계형 범죄. 일면 맞는 말이다. 아파트 9층의 우유마저도 없어질 정도라면 현재 생계형 범죄가 기승하는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

 

그런데 찝찝하다. 생계형 범죄의 증가를 마냥 물가 인상 탓으로 돌리자니 영 꺼림칙하다. 생계형 범죄의 증가는 매년 연초와 명절 때에 으레 회자되었던 언론의 단골 메뉴로서, 그 비루함만 더해 갈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물가가 큰 폭으로 뛰는 연초나 명절 때에 기승을 부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생계형 범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상화된 범죄이다.

 

따라서 생계형 범죄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가득 매우고 있는 제각기의 눈물겨운 사연을 걷어내어야 한다. 대중들이 그 각각의 사연을 보면서 작금의 현실을 자신의 일처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례 중심의 보도 형태는 범죄자에 대한 연민만 키울 뿐 그 범죄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생계형 범죄자가 우리의 불우이웃은 아니지 않은가.

                  

언론은 그 사례를 나열하는 대신 생계형 범죄의 증가율을 제시해야 하며, 또한 그 원인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진정 생계형 범죄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물가인상이 이슈화 되었을 때나 명절 때 구색 맞추기로 보도하기 보다는, 그 근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생계형 범죄의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목하고 있듯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이다. 사회의 부가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한쪽으로 흘러가면서 절대 빈곤층이 양산되고, 그들이 생존을 위해 범죄를 하는 것이 소위 생계형 범죄의 원인인 것이다.

 

문제는 현 정부가 이런 생계형 범죄를 줄이기 위한 궁극적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양극화를 부추김으로써 생계형 범죄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 서민'을 모토로 생계형 범죄자 사면 등을 통해 그 시늉이라도 냈던 몇 해 전과 달리, 정부는 이제 노골적으로 가진 자의 편에 서서 서민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11년도 예산안 날치기가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뻔뻔스럽게 국익을 운운하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분배될 몇 푼 되지 않는 복지 금액 마저도 자신들의 주머니에 집어넣는 한심한 현실.

 

어느 사회건 생계형 범죄가 느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생존의 극단에 선 국민들을 보듬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국가가 대부분의 계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비참한 현실을 주시하여 정책을 행하기 바란다. 당신네들 말대로 G20에 포함된 선진 국가가 생계형 범죄자를 이렇게 증가시킨다면 너무도 쪽팔린 일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생계형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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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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