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농촌으로 들어온 어느 도시가족

책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 겉그림.
 책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 겉그림.
ⓒ 북홀릭

관련사진보기

일본도 마찬가지인가.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된다. 도시에서 한가족이 농촌마을로  이사해 들어온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초등생딸 이렇게 한가족이다. '들어온 돌'의 탄생. 그렇다고 귀농이나 귀촌은 아니다.

아빠의 직장 지점공장이 그 마을에 새로 하나 들어선 것과 관련이 있다. 도쿄 본사에 근무하던 아빠는 새로 들어선 이 지역 공장의 책임자로 전근하게 되었다. 아빠만 혼자 시골공장으로 보낼수 없어 아내와 딸까지 그 마을의 일원이 된다. 한 삼 년에서 오 년 정도만 근무하면 다시 도쿄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이 가족이 새로 이사해 들어간 마을은 전형적이랄 수 있는 농촌마을이었다. 그곳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긴 공기가 참 깨끗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공기 좋은 것 외에는 특별히 알려지지도 내새울 것 없는 그런 시골마을이었다.

아빠는 그 마을에 새로 들어선 공장의 책임자가 되어 곧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딸은 그 마을의 초등학교에 편입해 들어간다. 아내는 남편의 직장 때문에 마지못해 시골로 따라 들어왔지만 내내 못마땅했다. 

문화시설도 없고 변변한 학원도 없다. 교류할 만한 수준의 이웃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공장을 관리하며 지역 사람들을 직원으로도 고용하여 바쁘게 생활해 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딸은 전학한지 얼마되지 않아 곧 적응하고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지냈다. 그 지역의 또래 계집애들과 잘 어울리며 그녀들만의 아지트에도 초대받곤 했다.

엄마는 가급적 집밖을 나가려 하지 않았다. 생활용품이 필요할 땐 택배로 주문받거나 도시 나들이 때 대형마트에서 대량구입하곤 했다. 굳이 지역사람들과 어울리거나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의 얼굴 내밀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딸의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엄마도 할 수 없이 최소한의 지역행사에는 얼굴 도장 찍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마지못한 참석은 상대도 느끼기 마련인 법. 진정성이 없는 방문과 교류는 마을사람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가끔 마을 슈퍼에서 생필품을 구입하지만 까다로운 식성과 쇼핑 습관 때문에 마을 슈퍼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했다.

그녀는 슈퍼에서 왜 자신의 등뒤에 대고 수군거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 생각에 그녀는 단지 '뭐 특별한 걸 찾은 것도 아니야, 소 정강이살, 카망베르 치즈, 데미글라스 소스 통조림, 생크림…  겨우 이런 걸로 교만한 부잣집 사모님 취급을 받은 거'라 여겼다.

딸아이와 남편은 이 '공기도 깨끗한' 마을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간다. 하지만 엄마는 이 '공기만 깨끗한' 마을에 정붙이지 못하고 몸만 마을에 둔 채 살아갔다.

살인사건

그런 마을(여긴 공기가 참좋아요 라고 말하는)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중년의 남자가 어린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 남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초등여학생 다섯 명에게 접근했다.

그는 선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신이 환풍기에 나사를 하나 조아야 되는데 깜빡하고 사다리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의 목마를 타고 환풍기에서 나사를 조아줄 아이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다. 도와주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하고 그 중 한 아이를 꼬득여 데려갔다.

뽑히지 못한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은 뽑혀가는 자신의 한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자신의 친구를 데려간지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나머지 친구 네 명은 서서히 그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친구들은 그 아이를 찾아나섰고, 학교 풀장 근처에서 시체가 된 친구를 발견했다. 희생자는 이 시골(공기가 너무 깨끗한)로 전학해온 공장 책임자의 딸이었다.

딸이 이 마을에서 희생되자 그의 남은 가족들을 큰 충격에 빠졌다. 약정된 근무기간까지만 잠시 머물려고 정착한 이 시골마을에서 그들을 소중한 외동딸을 잃게 된 것이다.

특히 아이의 엄마는 딸아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장례식이 끝나고도 넋을 잃고 아이의 부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유독 자신의 딸만 희생된 것에 대해서도 수긍하기 힘들어했다. 운동장에 있었던 딸의 친구들은 멀쩡한데 왜 자신의 딸만 끌려가서 죽음을 당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딸의 친구들이 범인의 얼굴을 기억해 내지 못하자 더 절망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경찰은 전혀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이 모두가 이 마을로 이사온 탓인 것 같았다.

희생자의 엄마가 보기에 아이들은 범인의 얼굴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도 형식적인 위로만 할뿐 구경꾼으로만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 모였을 땐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작 아이 엄마는 마을 사람 그 누구와도 이 아픔을 나누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예전부터 이 마을에 살던 토박이 아이가 이렇게 죽었어도 저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까. '내가 슈퍼에서 카망베르 치즈를 찾은 건 온동네 아주머니까지 다 알면서 살인범에 대한 정보는 들어오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을회관 방송까지도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사람을 주의하라는 방송은 아침저녁으로 내보내면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경찰에 꼭 신고하라는 방송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사람들대로 이 사건으로 인해 나름 힘들었겠지만 아이 엄마는 그들도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딸아이의 친구들이 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사실을 모든 마을사람들이 알고 은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들어온 돌'인 나만 모른 채…. 이 마을이 내 딸을 죽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이제 '마을자체'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뒷이야기들

1. 살아남은 친구들.

남자 어른이 성징도 발달치 않은 어린 여아를 대상으로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목격자가 있었다. 희생자의 친구들이다. 목격자인 아이들은 범인과 제법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범인의 얼굴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큰 충격 때문인지 범인의 옷이나 키에 대해서는 기억해 내지만 얼굴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일까. 친구의 희생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서 범죄자의 상을 지워버리게 된 걸까. 조사받은 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건 그날의 기억들은 다 선명하다 한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몇 시쯤부터 무슨 놀이를 하고 놀았는지. 누가 술래가 되었고 누가 달아 났으며 누가 이겼는지도…. 그리고 범인이 자신들이 놀고 있을 때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범인의 얼굴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힘들어 하고 말을 더듬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얼굴이.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건 그들의 탓이 아니다. 15년이 지나 아이들이 성장한 후 아이들은 조금씩 휴유증을 이겨내며 범인의 얼굴을 어렴풋한 기억의 저편에서 불러낸다.

2. 희생자의 엄마.

이처럼 살인사건을 목격한 네 아이들은 큰 트라우마를 입었다. 거기에 더해서 희생자인 친구 엄마는 딸의 친구들을 원망했다. 마을과 평소에 교분이 없던 엄마는 마을과 마을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

더해서 딸과 같이 놀러갔다가 딸은 주검이 되었지만, 그 친구들은 멀쩡이 돌아온 데 대한 뒤틀린 마음이 있었다. 왜곡된 억하심정이 마음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거였다. '왜 내딸만 희생 된 거지. 너희들은 왜 살인마의 얼굴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거야. 같이 놀다가 친구가 낯선 사람에게 갔는 데도 한 시간 동안이나 찾으려 하지 않다니, 그러고도 너희들이 친구냐. 범인의 얼굴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면 속죄라도 해라 속죄를 해'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딸을 잃은 엄마의 악받친 외침은 그 뒤 살아남은 네 아이의 인생에 커다란 휴유증을 남기게 된다. 그 어머니가 외쳤던 '속죄의 요구'는 형태를 달리하여 각자의 인생과 이 어머니의 인생을 무섭게 비틀고 옥죄게 된다…(스포일러가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3. 상처와 엇갈림.

이 소설에선 인물간의 엇갈림이 있다. 희생당한 초등여학생 에이미, 그리고 그 아이의 또래 친구 네 명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 그리고 희생당한 아이 에이미의 아빠와 엄마 아사코, 범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각자의 성격에 걸맞는 방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얽힌다.

그들은 모두 그 사건의 커다란 피해자들이면서도 서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오해하고 미워하며 심지어 저주한다.

각자는 오래도록 미련과 회한이 남게 되는 어리석음 속에 살게 된다. 희생당한 초등생 에이미의 어머니는 딸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도하게 주변을 힘들게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스스로의 피해의식 속에 마을 사람들을 불신하고 딸의 친구들을 구석진 인생으로 밀어붙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처지가 이해되고 동정이 가기도 한다. 도시에서만 살다 시골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면 더 끔찍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삶터에서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 그녀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그녀의 낯설고 불안한 감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읽은 윤태호의 <이끼>나 주영선의 <이웃>에서 그 유사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배타적인 시골마을에선 낯선 이방인이 쉽게 타자가 되어 버릴 수 있다. 그 마을사람들과 적절한 코드를 맞추지 못했을 때 그들은 커다란 벽으로 와 닿을 수 있다고 본다.

잘못 맞춰진 단추처럼 계속 어긋나간다. 희생자의 엄마와 '공기가 깨끗한 마을'은 서로 악연이 되어 서로를 구속하고 망가뜨려가기만 한다. 읽는 내내 불편했던 대목이다. 역시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4. 이 책의 미덕.

이 책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서술 방식의 독창성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들은 사건 이후 서로 만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선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일은 별로 없다. 

편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약 15년이 흐를 때 즈음 어떤 계기로 인해 한 아이(이제는 어른이 된)가 편지를 보내게 된다. 딸의 친구들이 희생자의 엄마에게, 그리고 희생자의 엄마가 딸의 친구들에게.

각자는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를 통해서 할뿐이다. 그들의 편지가 한 개 두 개 쌓이면서 사건의 윤각은 입체적으로 완성되어 나간다. 뭔가 허술했던 빈구석들을 채워나가며 미스테리 했던 사건 본질에 다가간다.

다른 장소 다른 나이가 되어 하나씩 보태어진 편지가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퍼즐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 듯하다. 자, 독자 여러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을 거에요. 그럼 이걸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 같아요. 기대하지 마세요. 절대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 않을 거에요. 잘 따라와야 할 거에요. 중간에 흐름을 놓치면 후회할 거에요 라며….

서술 방식의 묘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재밌는 배치가 느껴진다. 작가만의 특권을 맘껏 구사했다. 작가란 이런 재미로 글을 쓰는 거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속죄> / 미나토 카나에 / 김미령 / 북홀릭 / 2010년 1월 / 1만1000원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북홀릭(bookholic)(2010)


태그:#속죄, #미나토카네에, #귀농, #살인사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