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여름에만 어울리는 장르가 아니다. 한겨울에 만나는 공포영화는 이한치한이란 명목으로 먹는 겨울날의 아이스크림 맛처럼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그 영화가 단순히 무서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연민, 현실의 반추를 통해 씁쓸함까지 버무려서 온갖 상념을 이끌어낸다면 이 겨울에 더욱 어울리는 영화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여고 괴담3-여우계단>은 겨울에 다시보기 좋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여고괴담3-여우계단> 포스터 .

▲ 영화 <여고괴담3-여우계단> 포스터 . ⓒ 영화 <여우계단>

줄거리

 

영화예술고등학교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특별한 미신이 있다. 총 스물여덟 개의 이 계단을 오르며 계단의 숫자를 세다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스물아홉 번째의 계단이 나타날 때 자신의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계단을 여우계단이라 부르며 자신의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뚱뚱해서 왕따를 당하던 미술반 혜주가 살이 쏙 빠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소원을 이룬 것을 알게 되자 무용반 진성은 황급히 여우 계단으로 달려가서 자신도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여우야, 여우야, 내 소원을 들어줘. 내가 학교 대표로 발레 콩쿨에 나갈 수 있게 해줘."

 

그때 진성은 단짝친구 소희에 대한 열등감에 불타올라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희에게 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다, 학교 대표로 소희가 발레 콩쿨에 나가게 되자 진성은 질투감에 휩싸여 무서운 짓을 저지르게 된다. 소희의 토슈즈에 유리조각을 넣기도 하고 사사건건 소희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여우계단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자 거짓말처럼 소희는 학교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를 다치고 진성이 콩쿨에 나가게 된다.

 

사건은 더욱 커져서 다친 다리로 발레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을 상심한 소희는 자살을 하고, 진성은 대신 콩쿨에 참가하고 대상 수상자가 되어 러시아 발레학교에 초청받는다. 하지만 이어지는 친구들의 왕따와 일련의 이상한 사건들이 진성을 괴롭힌다.

 

소희를 흠모하며 그처럼 날씬하고 아름다워지기를 원했던 혜주는 자아분열증이 심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흠모하던 아름답고 날씬한 소희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히던 미술반 윤지를 흉내 내더니 급기야는 조각도로 그녀를 살해한다. 그리고 소희의 목소리를 내며 진성에게 매달리지만 실패하자 분신자살한다.

 

한편 남아 있던 진성은 일이 무섭게 커지자 조여 오는 공포를 견딜 수가 없어 또다시 여우계단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모든 것을 되돌려 놓으라며 계단 어딘가에 숨어 있을 원혼에게 다그쳐본다. 그러자 소희의 혼령이 나타나서 영원히 함께 있자고 하며 진성을 죽이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후 세월이 흘러 여우 계단을 밟고 기숙사에 새로운 학생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학생이 예전에 진성이 쓰던 방을 쓰면서 또다시 전설은 되풀이되기만 한다.

 

내재된 욕망, 비뚤어진 자아

 

사람은 누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예술이라는 순수한 열정과 입시라는 강박 관념이 뒤범벅이 된 예술 고교의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우 계단에서 간절하게 자신의 욕망을 빌었던 소녀 네 명은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다들 약한 일면을 가진 개인들이다.

 

영화<여고괴담3-여우계단> 포스터 .

▲ 영화<여고괴담3-여우계단> 포스터 . ⓒ 영화<여우계단>

 

그 중 외톨이로 지내며 인형들과 대화 나누는 혜주는 네 명의 소녀들 중 가장 열정적이고 순수한 여학생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다 바치면 스물아홉 번째 계단이 나타나서 소원을 이뤄준다는 원래 목적에 충실한 사람은 혜주밖에 없다. 혜주는 살이 빠져서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고, 이후에 소희가 죽는 바람에 자신의 롤모델이 없어지자 다시 살이 쪄버린 자신을 자책하며 그녀를 되돌려 달라고 여우계단에 기도를 한다.

 

남을 짓밟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다른 여학생들의 소원과 달리 그녀의 기도는 소녀다운 순수미를 가지고 있고, 열심히 조소 작업에 임하는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결국 학생들 중에서 그녀의 소원이 가장 먼저 이뤄지고 그 소원 덕에 행복을 맞이하게도 되지만, 그녀의 내면을 침범한 소희의 영혼이 진성의 사랑을 갈구해도 이뤄지지 않자 혜주의 육신은 외로움을 느끼며 죽어간다.

 

순수가 환기하는 공포

 

이 영화는 흑과 백이 주는 간결함이 잘 드러나 있다. 흑백의 조화로 단정한 교복, 여학생들의 검고 긴 머리, 고즈넉한 겨울밤에 유난히 아름답게 빛나는 눈 덮인 계단. 기숙사 옷장의 흑백 체크 패턴 등, 단정하고 정갈한 여고생의 이미지를 사물로 환기시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단정함은 공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정돈되고 정제된 느낌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무형의 공포는 빨강머리 혜주에게 다가와서 '머리가 검으면 더 예쁠텐데' 라고 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가 공포와 친구가 되게 만들어 버린다. 이후 검은 머리로 염색한 혜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하고 외톨이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나쁜 길로 간다.

 

영화<여고괴담3-여우계단> 가장 마지막으로 여우계단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진성

▲ 영화<여고괴담3-여우계단> 가장 마지막으로 여우계단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진성 ⓒ 영화<여고괴담3-여우계단>

 

여학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거울이다. 특히 무용실에 사방으로 둘러쳐진 전신 거울은 우아한 발레리나의 이미지를 환기시킴과 동시에 공포의 대상물로 등장한다. 그 가운데 거울은 소녀들의 본마음을 읽게 하는 매개체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친구가 선물한 토슈즈에 유리조각을 넣는 소녀의 질투심도 거울을 통해 낱낱이 읽혀져 버린다. 외모를 치장하기 위한 거울이 가진 원래의 의미를 떠나서 추악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도구로 거울이 사용되었고, 복고풍의 건물과 소품들이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잔잔하게 몰려오는 색다른 두려움으로 잘 표현하였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지는 고정관념을 뒤집음과 동시에 어디서 들어본 듯한 에피소드를 나열하여 줄거리나 트릭의 부족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빼어난 영상미와 카메라 시점 등은 공포 영화라는 장르에서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서정과 추상성을 가미하여, 이 영화를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닌 예술 영화로 등극시켜 놓았다.

2011.01.09 10:27 ⓒ 2011 OhmyNews
여우계단 여고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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