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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에 잡힌 성탄 행사'가 아니라 '성탄 행사 날 펑펑 쏟아진 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눈은 사람의 발을 묶어두는 데 선수입니다. 잔칫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하는데, 눈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손님들이 오기가 어려워집니다. 비보다는 눈이 더 그렇습니다.

 

두메산골에 자리 잡고 있는 옥천 소서교회엔 빠짐없이 하는 연례행사가 있습니다. 그 중 성탄절 경로잔치는 벌써 열두 해째 계속되고 있는 소서교회의 상징적 행사입니다. 성탄절을 즈음하여 성도들이 마음과 힘을 합쳐 잔치를 준비합니다. 주 손님은 소서리 마을 주민들이지만 이웃에서도 참석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옥천군을 앞장 서 이끌어가는 기관장들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석해 주민들을 격려합니다.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17일(금) 아침 시간에 휴대폰 벨이 계속 울려 댔습니다. 먼저 경로잔치에 맞추어 봉사하기로 되어 있던 서울 영락교회 이미용 봉사팀이 내려오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중부지방에 내린 대설로 교회 버스의 운행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봉사자들의 이동이 힘들게 된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단장 권사님을 위시해서 기차를 타고서라도 약속을 지키자는 마음들이었지만 기차 이외의 운송 수단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라 그 방법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소서리 주민들에게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중간에서 조금 당혹스럽게 된 분은 이한구 집사님입니다. 이 집사님은 이번 행사를 실질적으로 준비한 사람입니다. 재정과 봉사 그리고 음식준비와 내빈 연락 등 그가 총대를 메고 진행한 잔치인데, 펑크가 나서 아주 난처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다고, 이렇게 된 데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 있으실 거라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제가 소서교회에 도착하니 이한구 집사님은 부인 권사님과 함께 영천으로 떠나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가 쪽에 급한 일이 생겨 그곳으로 옮긴 것 같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방울이 길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해 발걸음을 재촉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리 기상이 좋지 않더라도 소서교회를 가야 했습니다. 전도사님이 특별히 성탄절 잔치 예배 설교를 저에게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사진작가 김현옥 집사님을 대동하고 소서교회로 가고 있는 도중, 연달아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이한구 집사님은 영락교회 이미용 봉사팀이 중부 지방 폭설로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왔고, 옥천의 이창수 님, 임만재 님 그리고 한의사 정철종 님과 황성건 감독은 눈으로 소서리까지 오기가 쉽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무리하지 말고 다음에 보자고 그들에게 마음의 짐을 들어 주었습니다.

 

영동 톨게이트를 나가 소서리까지 가는 지름길은 아예 생각지 말고 청산으로 돌아오라는 전화도 왔습니다. 대사리 고갯길이 지름길이긴 한데, 눈으로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청산으로 오다가 장유리 작은 고갯길을 이용하려다가 이왕 늦은 거, 청성으로 해서 신매리로 한 바퀴 도는 평평한 길을 택했습니다. 눈은 사람도 차도 거북이걸음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소서교회에 도착하니 11시 40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11시 정각에 예배 시간을 잡아 둔 것에 의하면 40분이나 늦은 예배가 되는 셈입니다.

 

마을 주민들로 예배당의 자리가 채워져 갔습니다. 아주머니(할머니)들이 먼저 오른 쪽에 자리하고 아저씨(할아버지)들이 왼쪽에 자리했습니다. 마을 주민 거의 대부분이 참석했습니다. 개인 볼 일로 출타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다 참석한 것입니다. 황규명 이장님도 참석했고, 송이섭 노인회장님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소서 마을 최고령이신 93세의 송교헌 옹도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를 빛내고 있었습니다. 두메산골 교회의 성도는 마을 주민 전체가 되는 셈입니다. 교회 행사엔 만일을 제쳐두고 참석해서 예배드리고 식사를 함께 하며 감사 예물을 드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현수막과 강단에 마련된 성탄 트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앞당겨 자아내고 있습니다. 전도사님의 사회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찬송을 몇 곡 부르고, 저의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본문으로 "성탄절 정신"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습니다. 소서리 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두메산골 소서리에 20 여 년 전 교회를 세워주시고 한 명 두 명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더니 지금은 많은 주민들이 천국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축복임을 강조했습니다.

 

예배 뒤에 따르는 식사는 늘 참석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 되어 준비한 음식상이 풍요로웠습니다. 돼지 전골, 오징어 무침, 잡채, 고구마 전, 과일 사라다... . 오늘의 주 메뉴는 떡국입니다. 엄마 손맛을 느끼게 하는 전통 음식이었습니다. 저는 시장하던 차에 두 그릇을 후딱 해치웠습니다. 마을 주민들뿐 아니라 20명 가까운 영락교회 이미용 봉사팀 그리고 군수님 등 내빈들까지 고려하여 넉넉하게 준비한 음식이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이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의 몫까지 해결해야 한다며 즐거운 비명들을 질러댔습니다.

 

행사가 끝날 즈음, 청성면에 새로 부임한 민성기 면장님과 청성면 사무소 살림을 맡고 있는 충무계 진성주 님이 찾아주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급히 상이 차려졌습니다. 제설 작업을 하고 오느라 늦었다는 그들의 말에서 공무에 충실한 공무원 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청성면과 옥천 발전을 위하여 그리고 소서리와 같은 두메산골 마을의 행복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민관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특히 한 마을 노인 문제를 떠맡고 있는 소서교회를 도울 방법에 대해서도 토론을 했습니다.

 

농촌 교회의 잔치는 이렇게 흐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 시작해서 먹는 일로 이어 성속의 관계성 내에 군면과 지역 교회가 어떻게 윈윈할 수 있는가의 의제로 쉽게 넘어갑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한 사람이 대중가요라도 한 가락 뽑아댄다면 금세 예배당은 노래자랑 무대가 됩니다. 딱히 마땅한 장소가 없는 두메산골의 예배당은 다용도 공간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곳이기도 하고, 식당이기도 하며 곧 토론장으로 화했다가도 노래자랑의 무대 그리고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의 역할까지 하니 말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청산 보건지소에서 사회복지사 선생이 나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어르신들의 겨울 건강법'에 대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농어촌 작은 교회는 어려움의 정도가 더합니다. 유지하기조차 힘든 농어촌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농어촌 교회는  과거 우리 교계의 모판 역할을 톡톡히 감내했습니다. 농어촌에서 길러 도회지 교회로 보내는... . 이제 도회지 큰 교회가 농어촌 교회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들과 손잡고 나아갈 때입니다. 작은 농촌교회 목사가 더 작은 두메산골 교회에 가서 느끼는 심정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그래도 그곳에 성도가 살아 있고 사랑이 넘쳐나며 서로를 주 안에서 인정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있다는 것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한 주 전에 먼저 예수님이 찾아오신 오늘 소서교회 성탄절 경로잔치에 직간접적으로 함께 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11년 새해가 소망의 한 해, 꿈을 이루시는 일 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태그:#소서교회, #두메산골, #성탄절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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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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