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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사람마다 손맛이 다르듯 주방장이 만들어내는 식당 음식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반찬은 말할 것도 없고, 비빔밥이나 회덮밥 한 그릇도 주재료와 부재료를 배합하는 순서와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요.

 

 

위 사진은 엊그제 지인과 함께 군산 나운동 극동 사거리에 있는 식당 대장금에서 먹은 '회덮밥'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사진으로 봐도 침이 고이는데요. 꽃보다 예쁘게 생긴 모양만큼이나 맛도 일품이었습니다.

 

반찬과 회덮밥이 부드럽고 음식궁합이 맞으니까 식후에는 양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식탐이 일기도 했는데요. 입안에서 사각사각 씹히는 싱싱하고 상큼한 야채는 추운 겨울임에도 저 멀리 있는 봄을 느끼게 했습니다. 

 

회덮밥은 싱싱한 광어회 한 주먹에 양상추, 양배추, 오이, 상추, 양파, 당근, 새싹, 치커리 등을 넣고, 고명으로 해태향이 그윽한 김 가루와 날치알을 올려놓았는데요. 얼마나 푸짐하고 아주머니가 친절한지 상궁 장금이에게 수라상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생선회 중에 으뜸인 광어회는 입에 들어가니까 살살 녹으면서 밥도둑 역할을 했습니다. 식당 아주머니는 손님의 요구에 따라 '광어'나 '우럭'을 선택해서 넣어준다고 하더군요. 손님의 입맛까지 배려하다니, 과연 '장금이'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초고추장과 뜨끈뜨끈한 밥을 넣고 수저로 비비니까 밥알이 붙지 않고 떨어져 쫀득한 맛을 더욱 즐길 수 있었습니다. 회덮밥도 일종의 비빔밥이어서 주재료인 밥이 고슬고슬해야 입에 착 달라붙으면서 차진 맛을 내는 광어회와 조화를 잘 이루거든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 광어회와 톡톡 터지는 재미까지 더해주는 날치알, 그리고 파릇파릇 생기가 도는 양배추, 양상추 등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면서 씹힐 때마다 비빔밥 특유의 '개미'(깊은 맛)도 느꼈습니다.

 

적당한 크기로 도톰하게 썰어놓은 광어회와 각종 채소가 예쁘게 담긴 그릇에 초고추장과 참기름을 적당히 뿌려 비벼 먹으니까 세상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먹는 행복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얘기지요.

 

회덮밥도 일반 비빔밥처럼 수저를 휘저어 비벼 먹습니다. 그러나 적은 양이라도 생선이 들어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회덮밥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모두 회덮밥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회덮밥은 싱싱한 생선회와 채소가 생명이라고 하지만, 초고추장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생선 양념회에는 항상 식초가 따라다니는데요. 식초와 생선은 상극이면서도 상생하는 관계여서 회덮밥도 초고추장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은 수돗물과도 상극입니다. 해서 싱싱한 생선은 되도록 수돗물로 씻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생선회도 날로 먹지요. 그러한 것을 잘 아는 주방장이라면 생선이 들어간 회덮밥도 손님의 구미를 잘 맞춰줄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장금 식당에서 회덮밥의 진수를 맛보았는데요. 초고추장을 잘 만드는 주방장은 회덮밥도 맛있게 만들 거로 생각하면 맞는 진단일 것입니다.

 

 

전라도 지방은 어딜 가나 6000 원짜리 백반 한 그릇을 사 먹어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나옵니다. 그러나 7000 원짜리 회덮밥에 병어찜, 잡채 등 맛깔스러운 반찬이 12가지가 넘게 올라오는 식당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차려주고도 남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곁들여 나온 된장국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전통 된장 특유의 구수하고 개운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공깃밥의 3분의 2 정도만 비벼 먹고 나머지는 된장국에 말아 먹었는데요. 고소한 맛이 가미되어 후식이 필요 없었습니다. 

 

아무리 떠먹어도 국물이 짜지 않아서 좋았는데요. 부드럽고 담백해서 물어봤더니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육수로 끓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식사를 마친 후에도 된장의 구수한 맛이 한참 동안 입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맛깔스럽고 푸짐하게 차려 나오는 반찬 중에 가장 맛있게 먹은 무생채를 외면하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비빔밥의 주재료이자 도망간 밥맛을 잡아준다는 무생채는 덜 익어도 맛이 상큼하고, 새콤하게 익어도 그 나름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전통음식이지요.  

 

젓국에 무쳤다는 무생채는 적당하게 익어서 회덮밥 반찬으로는 그만이었습니다. 사각사각 씹힐 때 느끼는 시원한 맛은 입맛을 더욱 돋우었는데요. 된장국과 함께 특유의 개운한 맛으로 팍팍해지기 쉬운 회덮밥을 부드럽게 해주었습니다. 

 

 

병어(병치)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고소한 맛으로는 따라올 생선이 없고, 뼈가 연해서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여도 가시에 찔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선인데요.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이지만, 회덮밥 한 그릇 반찬으로는 딱 맞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상궁이 임금 모시듯, 손님에게 친절한 아주머니에게 광어 회덮밥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이 따로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장금이 만들잖유. 싱싱헌 생선허고 야채여다 정성까지 들어가니께 쥑여주지유!"라고 답하더군요. 명답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 대장금, #회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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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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