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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개인 집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검찰은 지난 16일 태광그룹에 대한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이 회장의 집무실과 장충동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개인 집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검찰은 지난 16일 태광그룹에 대한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이 회장의 집무실과 장충동 집을 압수수색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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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태광그룹 망하는 거 아냐?"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를 기다렸다는 듯 언론에서 쏟아내는 온갖 의혹들만 보면 이러고도 회사가 무사할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검찰 수사망이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일가 주변을 압박하면 할수록 태광산업, 대한화섬 등 상장 계열사 주가는 폭락은커녕 오히려 급등하고 있다.

마치 2006년 '장하성 펀드'(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에서 태광그룹을 지배구조 개선 대상으로 처음 지목하고 이호진 회장 일가의 편법 증여 문제를 제기한 뒤 태광산업이 '황제주'로 군림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장하성 펀드' 자문을 맡아 이호진 회장 일가와 일전을 벌여온 김선웅(39· 변호사)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을 22일 낮 서울 종로 운현궁 옆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너 일가 비자금 수사에 계열사 주가는 급등?

검찰이 이 회장 모친 이선애 상무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망을 좁히는 가운데 이날 태광그룹 모기업인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가는 급반등하며 올해 들어 가장 높은 124만5000원과 9만600원으로 한 주를 마감했다. 수사 시작 전인 지난 12일보다 오히려 각각 5만 원, 2만 원씩 크게 오른 것이다.

김선웅 소장은 폐쇄적인 경영 스타일로 유명한 태광그룹 사주 수사는 소액 주주들에겐 오히려 '호재'라고 말한다.   

"태광산업은 그동안 불투명한 운영을 해왔다. 회사는 계속 영업이익이 나고 좋은데 지배 구조 탓에 눌려 있었다. (이 회장 일가는) 상장기업이면서 비상장 개인 기업처럼 행동해왔고 오히려 주가 떨어뜨리는 공시를 많이 해 주주들 불만이 많았다. (검찰 수사로) 문제점이 드러나면 회사 손실 회복이 기대돼 주가 폭락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거다."

재계 서열 40위권인 태광그룹은 섬유화학 업종에서 출발해 종합유선방송, 금융으로 사업을 다각해 왔다. 일반인에게 낯선 태광그룹이 처음 언론에 크게 오르내린 건 지난 2006년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를 만든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장이 '실적은 좋은데 지배 구조에 문제 있는 회사'로 태광산업을 지목하면서부터다.

"한국도서보급으로 경영권 승계...현대차 글로비스·삼성 에버랜드와 닮아"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 김 소장은 '장하성 펀드' 자문을 맡아 태광산업을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벌여왔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 김 소장은 '장하성 펀드' 자문을 맡아 태광산업을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벌여왔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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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만 개선되면 기업가치가 올라가리라 생각했다. 태광산업은 대표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이었고 회사와 합의가 이뤄진 뒤엔 실제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그동안 곪을 대로 곯은 게 이번에 터진 것이다."

장하성 펀드는 이호진 회장 일가의 편법 증여 문제를 줄곧 지적해 왔다. 이 회장 가족이 100% 지분을 소유한 한국도서보급에 태광산업이 갖고 있던 대한화섬 주식 16.74%를 헐값에 넘기는 등 이호진 일가에 이익을 넘겨왔다는 것이다.

태광산업 등 태광 계열사와 거래처들이 800억 원 대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해 부당내부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동림관광개발이나 태광산업 전산 부문 영업 자산을 양도한 티시스도 이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최근 수사 내용은 과거에도 검찰에서 제기했던 문제여서 이미 내사 종결했던 결정들을 다시 뒤엎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면 결국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 검찰에서 (이 회장 일가가) 회사에 손해 끼친 부분을 기소하고 배임 등 잘못된 행위를 판단하기 바란다. 우리도 이미 민사 소송을 요청했고 손해배상을 통해 기업 가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 장하성 펀드는 지난 18일 태광산업이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해 이호진 일가에 이익을 넘겨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요구하고 감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주 대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태광산업 자산으로 일군 회사를 이호진 개인 회사로 헐값에 귀속시키는 게 문제다. 100을 투자해 키운 회사를 50만 내고 가져가는 거다. 한국도서보급, 티시스 등 비상장계열사를 경영권 승계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인 한국도서보급에 주요 계열사 지분을 모아줘 3대에게 그룹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시도는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글로비스,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에버랜드 사례를 떠올린다.

김 소장은 "세습 자체보다 세습 과정에서 증여세, 상속세 재원을 만들려는 회장 전횡이 문제"라면서 "태광은 규모는 작지만 글로비스보다 정도가 더 심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에서도 로비에 엮였을 가능성이 있는 한국도서보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태광산업 자산을 빼 먹은 배임 문제에 대해서 조사해야 한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 해직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앞에서 태광그룹의 편법 및 특혜 의혹과 국세청 직무유기에 대한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 해직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앞에서 태광그룹의 편법 및 특혜 의혹과 국세청 직무유기에 대한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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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이용만 하고 처벌 안 하면 태광은 바뀌지 않을 것"

김 소장은 태광그룹 사태 원인을 주주 책임은 신경 쓰지 않고 개인 회사처럼 운영하는 '경영자 마인드'에서 찾는다. 태광산업의 경우 지분 70%를 이 회장 일가와 관계자,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6년 11월 장하성 펀드와 태광산업은 '휴전' 협약을 맺은 뒤 사외이사를 영입하고 기업설명회를 여는 등 한때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덕분에 주가가 100만 원대를 넘나들며 '황제주'가 되기도 했지만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계속되자 장하성 펀드는 지난해 9월 "이호진 회장 일가가 보유한 회사에 대한 지원성 거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회계장부열람청구소송에 이어 이사 해임청구소송을 내는 등 다시 갈등으로 치달았다.

태광그룹의 적은 '장하성 펀드'와 소액주주뿐이 아니었다.

"태광그룹이 이 상황까지 온 것은 우리와 협약을 깬 탓도 있지만 케이블방송 사세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고, 다른 방송 사업자들이나 이해 관계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최근 특정 언론에서 태광그룹 수사가 유독 부각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내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를 통해 케이블방송업계를 대표해 온 태광그룹은 지상파 재전송 문제로 KBS, MBC, SBS 등 방송사들과 일전을 벌였고, SO들이 종합편성채널 낮은 채널 번호 부여에 반대하면서 조중동 등 종편 준비사업자들과 이해 관계도 엇갈린 상황이다. 

"언론이 보도를 세게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태광그룹의 행위 자체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게 아니다. 최근 내외부에서 제보가 잇따른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소장은 오히려 검찰의 태광그룹 수사 시점과 의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대검 중수부까지 C&그룹 비자금 수사에 나서면서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한 온갖 정치적 해석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G20 앞두고 기업들 군기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답답하다. 우린 계속 문제 제기를 해 왔다. 시기에 맞춰 정치적 해석을 하게 되면 정작 (기업지배구조) 개선 효과는 낮을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용만 해놓고 제재나 처벌을 하지 않으면 태광그룹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태그:#태광그룹, #김선웅, #장하성펀드, #태광산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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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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