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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원 축의금 봉투에 봉투 몇 번 확인

얼마 전 지인의 결혼식 접수를 본 적이 있다. 축의금을 받아 접수 장부에 이름과 금액을 적는데 봉투에 1만 원권 지폐 한 장 만 있었다. 봉투에는 부조자의 이름도 없었다. 잘못 꺼냈나 싶어 봉투 입을 다시 열어 보았지만 더 이상의 지폐는 없었다. 내 머리에 만 원이 든 부조는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어찌 보면 여는 봉투마다 5만 원과 3만 원이 대부분이고, 친분이 가깝거나 친지들이 한 것으로 보이는 십만 원 단위의 비교적 큰 금액도 눈에 띄었으니 내 머리가 이상할 것도 없었다. 누굴까하고 생각해보니 방금 허름한 옷차림으로 오셔서 얼른 봉투를 내밀고는 잰 걸음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같다.

해가 갈수록 나이에 걸맞게 해야 할 도리가 많아지는 같다. 애경사를 알리는 소식이 핸드폰 문자 든 청첩장이든 하루가 멀다 하고 날라 온다. 결혼을 전후로는 친구들 결혼식 챙기고 조금 지나서는 친구 아이들 돌잔치를 챙기는 정도였다.

40대 중반이 되니 친구 부모님들의 고희연은 물론 돌아가시는 일도 잦아진다. 부조금, 말 그대로 기쁜 일을 축하하는 축의금과 슬픔 일을 위로하는 조의금의 총칭이다. 그런데 기쁨과 슬픔을 나누기보다는 직접 가봐야 할지, 얼마를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 복잡한 심사다.

체면치레를 하자니 적잖이 돈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우습지만 행여 조금 적게 하면 다음에 그 사람 보기가 민망하고, 할 만큼 하면 그래도 조금 낯이 선다. 

부조금에 숨어 있는 관계 척도

부조금은 공공복지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독특한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았다. 말 그대로 보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아름답고 좋은 풍속'이다.

애경사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조금을 내 축하하고, 위로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복지다. 가족을 비롯하여 학연, 지연, 혈연 등 인적네트워크를 매개로 제공하는 사적복지인 셈이다. 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 목돈 마련이 여의치 않은 서민들이 자녀의 주택자금(전세) 을 마련하기위해 시작한 사기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요즘은 축의금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전셋값이 올라가 있다. 이만큼 부조금은 우리문화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해병대 사령관의 딸 결혼식을 알리는 e-mail이 문제가 돼 메일을 보낸 비서실장이 징계를 받았다.

부하들로서도 어찌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대목이 대략 짐작이 간다. 사령관이 부하들의 경조사를 챙겼을 터이니 그냥 넘어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로 협의 하에 금액을 통일해 내는 것이 서로에게 편했을지도 모른다.

직장 간부의 애경사가 있을 때 서로 물어 결정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처럼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금액이 충성이나 친분의 척도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친분이 같은 친구도 3만 원 한 친구보다 5만 원 한 친구가 더 살갑게 느껴지는 것이 사람의 심사다.

"부조금 무서워 이민간다"

이제 본격적인 결혼시즌이다. 여기저기 소식들이 들려온다. 결혼식, 돌잔치, 고희연 등 주말이면 다른 일정 잡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일정이 많을 때는 다른 사람 편에 보내고 한 두 곳 다녀오는 것으로 주말 일정을 대신해야 할 지경이다. 빠듯한 살림에 경조비 때문에 살림도 새로 짜야 할 판이다. 수입이 늘지 않으니 결국 다른 곳에서 지출을 줄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마이너스가 불어난다.

아직 미혼인 50대 지인은 결혼시즌만 되면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결혼하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할 때가 지금이라고 한다.

벌이가 없는 노인들은 더 걱정이다. 그나마 자녀들이 용돈이라도 넉넉히 챙겨주면 그런대로 체면치레할 법한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속된 말로 사람 노릇이 어렵다. 그래서 부조금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는 경우도 많다.

경조사를 치르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연락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스럽다. 하자니 부담을 주는 것 같고, 안하자니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부조금 문화는 이렇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오죽하면 '부조금 무서워 이민 간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나 싶다. 사람이 재산이라고 하지만 부조금 때문에 더 이상의 인맥 쌓기가 두려울 정도다.

'부담백배' 미풍양속

만 원을 내신 할머니는 그날 식사도 안 하시고 가신 것 같다. 그러면서 그 할머니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만 원짜리 봉투를 내미는 것이 부끄러워 이름도 적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성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직접 결혼식장을 찾아오신 것 같다.

형편 따라 해야 하지만 우리 부조금 문화는 그럴 형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받은 돈 돌려주고 낸 돈 돌려받는 것인데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지 모르겠다. 함께 축하하고 위로해야 하는데 부담금이 되어 버린 부조금 때문에 그런 마음이 상호 간에 덜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 또한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의 미풍양속은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 것이 많을까? 추석을 지나 떠오르는 또 하나의 어리석은 번뇌다.


#부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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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쓰고 함께 공유하고 싶어 가입했습니다. 삶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냥 스치는 사소한 삶에도 얼마다 깊고 따뜻한 의미가 있는지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그래서 사는 이야기와 특히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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