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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를 하다가 제목에 꽂혔다. <언제나 소박하게>(존 레인 지음, 샨티 펴냄). 몇 장 넘기다 보니 오래 전에 사 둔 책이다. 읽었나? 읽지 않은 것 같다. 정리하던 책 더미에 앉아 끌리는 대로 읽기 시작한다. 어디서든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일단 사놓고 보는 편이라 더러 이런 일이 생긴다. 뭐 읽었던 거면 어때. 좋은 사람 만날수록 더 보고 싶듯, 좋은 책은 몇 번 읽어도 좋은 거지.

 

<언제나 소박하게>는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삶에 관한 책이다. 많이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소비사회에서 왜 소박하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소박하게 살 수 있는지, 소박하게 살면 삶에서 어떤 유익함이 따르는지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짚어주는 실용서다.

 

성 프란체스코-아미쉬-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이르는 소박한 삶의 역사를 꼼꼼이 소개했다. 그들의 소박한 삶을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풍부한 자료 분석과 경험적 증언, 그리고 동서고금의 모범과 경구들을 돌아보며 설득력있게 그 방법을 제시한다. 소박한 삶이 궁극적으로 개인과 사회, 나아가 지구환경에 이르기까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보여준다.

 

책은 자기만의 소중한 것을 선택하는 법이나, 더 적은 물질로 더 풍요롭게 사는 지혜를 알려준다. 소박한 삶은 궁핍, 인색함이거나 자기부정의 삶이 아니라 흔전만전한 물질로 인해 고갈돼 버린 정신을 풍요롭게 회복하는 일이라고 한다. 소비중심 사회에서 거기에 휩쓸려 복잡하고 조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창조적인 계획을 세우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주어진 시간을 맘껏 즐기는 데서 시작하라고.

 

우리는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기꺼이 불행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삶이라 지적한다. 깨닫지 못하면 잘못된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없다고.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그 행복이 있다고. 미래는 없다고.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당신은 행복할 수 없다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미래는 잊으라.(당신은 미래에 살 수 없다.) 과거를 무시하라.(과거는 지나갔다.) 당신이 존재하는 유일한 현실인 현재에 살라. 당신이 지금 존재의 특권을 누리는, 현재라는 현실에 집중하라. 당신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여기'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금', 그 신비로운 현존 속에 있다. (155P 지금 여기)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었을 때와 느낌이 다르다. 그의 책이 교과서였다면 이 책은 친절한 참고서같은 책이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만 취하라. 허섭쓰레기가 산처럼 쌓이면 뭐하는가. 꼭 필요한 것만 있으면 행복해지는 지혜를 배워라. 군더더기 없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을 가르쳐 준다. 그리하여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길로 안내한다. 표주박에 담긴 맑은 샘물 한 그릇을 마셨을 때처럼 마음이 개운해진다.

 

소비문화는 교활한 방법으로 우리의 불평과 불안과 불만을 부추긴다. 우리가 사려고 선택한 물건은 아무리 많이 사모아도 충분치 않다고 꼬드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가졌더라도, 늘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더 높은 수준이 존재한다. 예전의 사람들이 대체로 당연히 여겼던 평화로운 수용은 이제 대량 마케팅, 대량소비, 대중매체가 이끄는 문화에 의해 끝없이 손상되고 있다. (198P 결론)

 

나 자신도 인생의 최고의 시절들을 일에, 돈버는 일에, 안락한 집을 얻어 가구를 들여놓는 일에 보냈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 콜롬바, 또는 아미쉬의 생활을 모방해야 소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략-- 나는 우리의 삶을 소박화하는 응집된 노력을 제안한다. 조금씩 줄이고 이미 충분한 것에 만족하며 이미 가진 것-작은 것들 우리 가까이 있는 것들, 아름답고 신비한 것들 - 속에서 기쁨을 찾기를 부탁한다. (204~205P 결론)

 

경계해야 할 것은 좋은 책의 허망함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서 가슴을 꽉 차오르는 감격이 있다 해도 현실적으로 실천이 어렵다면 지적유희에 그친다. 이 책의 핵심인 소박한 삶은 자본주의 세상을 거슬러 사는 일이다. 세상을 거슬러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김규항도 블로그에서 세상은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 의해서 바뀐다며 그걸 직시하지 않는 모든 싸움은 그저 카타르시스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트위터든 촛불이든 인터넷이든 책이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착각만 선사할 뿐이라 했다. 지적 유희.

 

삶을 개선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삶의 전환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새로운 삶의 방법을 모색하면서도 '언젠가는'을 다짐하며 그저 동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라. 물건을 살 때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점검하는 작은 일부터. 그게 바로 소박한 삶의 시작이니까.


언제나 소박하게

존 레인 지음, 유은영 옮김, 샨티(2003)


태그:#소박한 삶, #언제나 소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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