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들의 거칠고 검은 머리는 길고 헝클어져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머리를 가늘게 꼬아서 땋았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새의 볏을 서투르게 흉내내어 상투를 머리 꼭대기에서 묶었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목둘레에 흩어져 있었고, 얼굴은 굶주리고 더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들의 의복은 짧고 헐렁한 조끼와 길고 자루 같은 바지로 이루어진 더럽고 흰 토속옷이었다. 가난한 하층 국민의 경우 한 달에 두 번 이상 옷을 갈아입는 적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식민지 국가가 될 위기에 있던 조선이라는 작고 낮선 땅에 선교활동으로 도착했던 뉴욕 출신의 여의사 언더우드가 기술한 한국인의 이미지다.

 

사극을 보면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거나 색이 화려한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양반들, 궁중에 가면 눈부신 장식의 복식들에 지금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하지만 당시 대국의 평범한(?) 시민이 본 한국은 작고 보잘 것 없고 가난하고 더럽고 비위생적인 후진국일 뿐이었다.

 

'기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파리가 달라붙어도 쫒아낼 힘이 없어서 눈만 꿈벅이는 아이. 배는 볼록하고 앙상한 팔다리는 마치 배에다 팔다리의 뼈에 칠만해서 꼽아놓은 엽기적인 인형을 보는 듯하다. 아이가 땅위에 엎드려있고 그 뒤에 독수리가 앉아서 관찰하는 모습의 사진은 극단적인 위험에 처한 검은 대륙을 상징하여 퓰리처상을 받았다. 100년 전 우리의 모습을 한 그곳은 하루 1달러가 없어 밥을 굶고 결국 죽는 아이와 어른들로 차고 넘친다.

 

멋지고 예쁜 연예인들이 가난으로 죽어가는 나라에 가서 아이들을 안고 눈물을 짓는다. 그런 프로그램의 목적은 분명하다. 그들을 돕자. 세끼가 모자라서 간식에 야식까지 챙겨먹는 우리의 한끼 값으로 그들은 며칠을 살아갈 수 있다. 우물을 파주고 집을 지어주는 버라이어티까지 등장한 시점에 도무지 어디에 얼마만큼을 '기부'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개인이 나 혼자만은 아닐 거다.

 

우리가 기부를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는 그냥 줘버릇 하면 받는 데에 익숙해져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망치는 것이라 한다. 어떤 이들은 천성이 게으르고 방탕한 민족인 흑인들을 도울 게 아니라 놔두는 것이 '적자생존'의 이치라는 이론도 나온다.

 

우린, 어떻게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부국이 되어 굶어죽지 않고 살게 되었는가. 물론 한가지 면만 보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식민지를 거쳐 전쟁까지 겪은 한국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과 유엔의 결의에 의한 원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84호에 의해 유엔군 사령부가 미국 주도 하에 결성된 이후 유엔의 대한국 원조는 미국과 유엔의 긴밀한 협조 하에 이루어졌다. 유엔군 사령부는 유엔민사처(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를 설치하여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 하에 교전 지역을 제외한 한국의 전 지역에서 민간인 구호 및 지원 업무를 떠맡았다. 


운크라(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는 한국에 대한 구호의 차원을 넘어서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경제를 전쟁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시켜 한국 경제 재건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운크라의 지원 활동은 경제의 영역에만 그치지 않고 교육, 아동 문제 등에까지 미쳐 전후 한국 사회의 재건에 기여했다. 한국 경제 재건을 위한 운크라의 지원은 시설투자와 원자재를 도입하고 한국 사회의 교육, 문화적 기반을 확충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국의 농업 및 자연자원 개발을 위한 기반 시설투자가 이루어졌다. 연탄, 판유리, 제지, 농기구, 시멘트 공장들이 설립되어 한국의 공업 부흥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공업발전의 기초가 되는 송배전 시설의 확충과 전력 개발에도 많은 기금이 투입되었다. 교통운수, 보건위생, 교육 분야에도 운크라의 지원금이 할당되었다. 특히 전후 폐허가 된 학교 시설·병원을 복구하고 전후 수많은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고아원들을 설립했다. - 국가기록원 참조

 

전쟁을 통해 군수물자 생산과 수출로 세계적 부국의 대열에 들어선 일부 국가들이 전략적 요충지였던 한국을 나몰라라 할 수 없었던 이유였겠지만, 어쨌든 지금 대한민국의 존재는 그들의 원조에 빚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마찬가지 위의 사례에서 분명히 보이듯 지금 가난한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게 <빈곤의 종말>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들의 기반 시설을 원조하고 교육과 의료, 사회기반시설을 지원하면 그들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씨앗이 될 것이고 스스로가 일어나 달릴 준비가 될 때까지 그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세계 경제와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론을 담고 있다.

 

지구에서 '극단적 빈곤'을 몰아낸다


2025년 지상의 모든 가난을 끝낼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담고 있다.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2000년 유엔이 채택한 '인류의 공동발전과 번영을 위한 협력계획'이다.

 

범지구적 문제인 '절대적 빈곤 퇴치'(절대적 빈곤이란 그냥 가난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계조차 유지할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단적 가난을 뜻한다)를 위해 보건, 교육, 빈곤해방, 남녀평등, 환경보호 등 전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엔이 전 세계의 과학자, 석학, 개발전문가를 모아 과학기술 혁신의 태스크포스팀을 결성하여 절대빈곤의 실질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다. 2002년 191개 회원국이 채택하였다.

 

저자 제프리삭스는 부유한 국가, 미국이 소득의 0.7%만이라도 극단적으로 빈곤한 나라들에게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소모를 줄이고 세계가 고루 좀더 높은 수준의 소득을 누리게 될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여러 사례를 들며 국가주도의 경제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직접 참여한 볼리비아, 폴란드, 러시아, 중국, 인도,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 이라크 사례를 들면서 빈곤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적 조처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사례 등을 증거로 든다.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든다. 그 사람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게으른지 어떻게 아는가. 그들의 가난함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낮은 생산성이 게으름과 노력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생산에 투여한 자본재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아프리카의 농부들은 게으르지 않으며 단지 토양영양분, 트랙터, 도로, 관개지, 저장시설 같은 것이 없을 뿐이다. 아프리카인들이 게을러서 일을 별로 하지 않고 따라서 가난하다는 식의 주장은 마을에서 하루만 지내보면 즉시 모습을 감춘다. 마을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하루 종일 등이 휠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또 에이즈에 대한 언급도 한다. 유독 아프리카 대륙만 황폐하게 만든 병에 대해 그들의 성적인 방종과 무책임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정에 근거하여 아프리카가 직면한 문제의 핵심을 문화와 도덕의 위기로 간주했다. 영국의 '랜싯'의 통계에 의하면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등의 남자들의 우발적인 섹스파트너의 수는 서구의 많은 나라 이성애자들의 경우와 거의 비슷하다. 여자들의 경우 5인 이상의 섹스파트너가 있었다고 응답하는 여성 수는 아주 적었다. 아프리카인의 도덕에 대한 공격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상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재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민주국가의 그것보다 떨어지는 사례를 입증하기 힘들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희망을 잃어버린 극단적 가난에 원조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서 그들이 일어설 수 있게 하려면 선진국이 할일이 분명해진다. 0.7%의 기부. 그것으로 향후 10년, 극단적 가난을 겪는 나라들을 지구상에서 보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배고픈 깡패를 친구로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그에게 밥을 사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준다면 '개과천선'은 쉽게 이루어진다. 여기서 한국의 당면과제는 분명하다. 바로 옆에서 굶어서 쓰러져가는 악만 남은 북한을 더 이상 자극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즉시 내미는 일이다.

 

북한은 우리 옆의 '절대빈곤' 국가다. 창고에서 썩어가는 쌀부터 보내야한다. 전쟁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고 훈련에 몰두할 일이 아니다. 예산 2.8%수준을 맴도는 국방비예산의 절반, 그 절반이라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들을 돕는 데에 쓰는 것이다.

 

통일세를 걷는 것보다 그들 스스로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기반사업과 교육시설과 비용을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좀 더 쉽고, 직접적인 통일로 가는 길이다. 과거 10년 쌓아왔던 그 길로 복귀하고 좀 더 과감하게 지원하는 일은 우리가 구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국가에 지원하지 않고도 국제사회에 선진국으로서 명분도 내세울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빈곤의 종말/ 제프리삭스 저 김현구 역/ 21세기북스/ 28,000\


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 지음, 김현구 옮김, 21세기북스(2006)


태그:#원조, #극단적가난, #제프리삭스, #미국의기부문화, #유엔밀레니엄프로젝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