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천년여우> 포스터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포스터 ⓒ 매드하우스

지난 24일 췌장암으로 사망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가 만든 작품들 중 내가 본 것은, 그의 데뷔작인 <퍼펙트 블루>(1997)와 <천년여우>(2001), 그리고 <파프리카>(2006)다.

 

<'퍼펙트 블루>는 일본에서 유행한 아이돌 스타에 대한 팬의 집착을 다룬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하지원과 안성기가 나온 <진실게임>같은 스릴러물이다. 보통 '극장용 애니메이션'하면 동화, 우화, 공상과학, 판타지물, 코미디, 아동 모험물, 그리고 하야오식의 전원일기물이 떠오르기 십상인데 사토시 감독은 <미저리>나 <위험한 독신녀>같은 할리우드식 스릴러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도입한 셈이다.

 

<천년여우>는 첫사랑의 남자를 찾아나선 여인이 남자가 간 곳에 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녀는 영화를 찍다가도 첫사랑의 남자를 보았다는 소식만 들으면 촬영장을 벗어나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다양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영화가 바뀔 때마다 그녀의 의상과 화장도 바뀐다.

 

그녀는 기온의 게이샤가 되기도 하고 공포물의 귀신이 되기도 하며 사무라이영화 속의 여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멜로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애니메이션 속의 그녀의 이미지와 의상의 변화를 통해 일본영화사를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특이한 작품이다. 보통 자국의 영화사를 위인전이라는 형태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보여주는 경우는 많았어도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그의 최근작인 <파프리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한 형사가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에서 그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애니메이션 <파프리카> 포스터

애니메이션 <파프리카> 포스터 ⓒ 매드 하우스

타잔이 되기도 하고 미스터리물의 형사가 되기도 하고 서부영화의 총잡이가 된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린시절에 형성된 기억인데, 이를 통해 사토시는 현대인의 기억과 내면에 자리잡은 할리우드, 대중문화, 대중영화와 꿈의 관계를 탐구한다.

 

확실히 일본이 애니메이션의 강국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단순히 제작량이 많아서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개성있는 애니메이션 감독들, 자기의 애니메이션 세계를 가진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비교적 많다는 점이 그렇다.

 

현대사회에 대한 무한혐오를 공상과학물로 담아내는 오시이 마모루, 사이버펑크의 대표작가 오토모 가츠히로, 그리고 서구지향주의와 일본의 재발견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미야자키 하야오까지. 그들과 비교할 때 콘 사토시는 영화라는 매체의 성격을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삼아서 영화매체와 애니메이션의 관계에 대해 생각케하는 특이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였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성의 예술작품과 할리우드와 기성의 영화를 패러디하고 패스티쉬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특성이라면 사토시의 애니메이션은 그런 포스트모던한 애니메이션이었던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네 21 블로그 '사과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8.27 12:33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네 21 블로그 '사과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곤 사토시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파프리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그냥 영화보고 책보고 글쓰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