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여고괴담>이 흥행에 성공한 이래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적인 공포영화들은 대체로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공포영화들이었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주인공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횟집에 데려가 "이제부터 경쟁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하듯이, 학교라는 공간은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학력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 더나아가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한국의 공포영화들은 학교의 비정하고 경쟁과 배제, 횡포를 잘 부각시킴으로써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고사> 시리즈는 이런 학교공포물이라는 장르의 전통을 따르면서 아울러 일본영화 <배틀 로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배틀 로얄>은 일본의 고등학교에서 문제아들만을 어느 가상의 섬에 모아놓고 서로 죽이게끔 유도해서 최후에 살아남은 사람만 섬에서 나오게 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가상의 섬에서 벌어지는 학생들간의 살육은 일본사회의 학교체제가 입시지옥이 된 상황을 암시한다. <배틀 로얄>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들을 모아놓고 서로 죽이게끔 함으로써 모범생/모범시민이 될 가망이 없는 학생들을 제거하는 가상의 제도를 보여준다.

그에 비해 <고사>시리즈는 주말이나 방학때 우등생들만 모아놓는다는 점이 다르다. 우등생들만 모아놓고 특별자습을 시키는데 한 사람씩 살해당한다. 한 사람씩 살해당하기 전에 살인범은 문제를 하나씩 내고 다른 학생들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는데 문제를 풀지 못할 때 그 학생은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영화에서는 문제풀이와 살해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긴 하는데 정작 문제를 푸는 사람의 속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않는다. 겁에 질려서 당황해서 문제를 못 푸는 것이라면 모를까, 만약 속으로는 '쟤만 없어진다면 내가 점수가 올라갈 텐데'라는 마음을 품는 장면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미카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이나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같은 잔혹극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어떻게 우리 심성이 피폐해지는가를 보여줄 수도 있는데 영화는 딱히 그런 방면은 부각시키지 않는다.

대신 <고사> 1편은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어떻게 경쟁이 왜곡되고 불공정해짐으로써 다른 정당한 노력을 한 학생이 피해를 입는가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고 불공정한 경쟁과 부패를 거론한다. <고사 두번째 이야기: 교생 실습>은 경쟁의 불공정성보다는 이미 우열반으로 나뉘어진 상황에서 부모의 사회적 계급을 물려받은 학생귀족집단과 이 집단에 끼지 못하는 이들간의 계급갈등을 더 강조한다.

이런 학생귀족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의 문제가 부각되다보니 김수로, 박지연, 박은빈, 윤시윤 그리고 황정음보다 학생귀족집단의 여왕벌격인 엄지윤 역을 맡은 최아진이 더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고사>1편은 무심하게 던지는 "김치 너무 익었다"라는 명대사를 낳았는데, <고사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은 엄지윤 (최아진)이 하는 "니들이 날 죽이고 살 수 있을 것 같애?"라는 명대사를 선보인다.

한편, 김수로와 박지연의 등장은 텔레비전 시리즈 <공부의 신>을 연상시킨다.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는 삼류학교 병문고를 살리기 위해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천하대 특별반을 구성하고 박지연은 좋아하는 남학생을 따라 별 생각없이 그 반에 합류하는 학생으로 나온다.

김수로는 <공부의 신>에서 보여주던 구원자로서의 역할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고사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에서 맡았다. 그런데 <공부의 신>에서는 그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고사 두번째 이야기:교생실습>에서는 두드러진 활약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핵심이 '누가 누구를 돕느냐'가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피해를 입혔느냐'이기 때문이다. 박지연은 <공부의 신>에서 천하대특별반 경험함으로써 자기가 정말 하고싶은 것을 찾아나가는 희망적인 캐릭터를 맡았는데 <고사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에서는 그런 생생한 캐릭터를 선보이지 못한다.

사실, 제목의 부제를 '교생실습'으로 정했으면 이야기는 학교에 실습하러 간 교생 선생님에게 벌어지는 일 중심으로 전개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교생 선생님이 선임교사와 학생들에게 성희롱당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1편의 이야기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않고 학생들이 주로 희생양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교생역을 한 황정음의 비중이 크지않고 그만큼 활약도 적어져서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음에도 비중은 거의 특별출연이나 조연에 더 가까와진다.

<고사> 시리즈의 후속작이 앞으로 더 나오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여고괴담> 시리즈가 5편까지 제작되었고 또 학교공포물이 한국영화계의 주요장르가 된 이상 다른 학교공포영화가 더 나올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고괴담>을 능가하는 작품은 아직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고사>시리즈는 <여고괴담>이 귀신이 나오는 '귀신-학교공포영화'인데 비해 괴물이 희생자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난도질 영화의 관습을 결합시킴으로써 '난도질-학교공포영화'라는 다른 하위 전통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데 이번 <고사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은 그 전통이 채 확립되기도 전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기작은 그런 불안한 모습을 극복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시네21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사 고사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배틀 로얄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 여고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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