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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대학> 표지
 <청춘대학> 표지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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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런 젠장, 이렇게도 나를 착취하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울컥했지만 그렇다고 짱돌을 들고 뭔가를 얘기하며 사회에 맞서기엔 두려움이 컸으니까요.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제자리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숨을 짙게 내쉬며 웅얼거렸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이인, <청춘대학> 278p)

20대 청년들에게는 <88만원 세대> 트라우마가 있다. 세대 간 불균형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 책은 출간된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이 책을 읽던 순간의 충격과 분노, 두려움을 잊지 못하는 20대가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경제가 어려워서 그러려니, 청년실업을 묵묵히 견디던 때였다. 그런 우리에게 우석훈은 '세대 착취'의 강고한 구조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20대는 분노했다.  

하지만 우석훈의 처방대로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치며 연대하지는 못했다. 사회와 맞선다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겨본 적 없는 세대였고, 무엇보다도 각자가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나 개인의 인생을 보장해주지는 않잖아'라는 게 변명이라면 변명이었다. 때문에 분노가 큰 만큼 무기력도 컸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세대에 대한 사회의 조롱과 멸시도 나날이 심해졌다.

<청춘대학>은 20대의 이러한 한계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20대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길에서 이탈할 용기가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몰라 그저 '어쩌지, 어쩌지······' 하며 망설이고만 있다. 이 책의 저자인 20대 청년 '이인'은, 지금 대한민국 청춘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세상의 어른들'을 찾아나섰다. <청춘대학>은 이 청년이 지난 1년여간 찾아다닌 선생님들이 20대들에게 남긴 따끔한 지적과 자상한 조언을 담은 책이다. 

궁금증을 가득 안고 찾아온 20대 청년을 반갑게 맞아준 '참선생님'들은 누구일까. 저자는 "신문이나 뉴스를 꼼꼼히 보면서 젊은이들에게 애정 어린 말을 하거나 관심을 보인 분들을 찾았다"고 전한다. 시인 김선우, 수유+너머의 고미숙,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언론인 홍세화, 개그우먼 김미화, 컨설턴트 구본형, 철학자 강신주 등이 이렇게 '선정'된 선생님들이다. 총 18명의 선생님들은 각자의 화두를 중심으로 20대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남겼다.

'스펙=취직'이라는 환상

"젊은이들이 똑같은 상품처럼 제조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뜨겁게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싹 말라서 세상으로 배달되는 사람들로요. 토익 900점을 넘지 못하면 취직하기 힘들다며 영어책만 파고 있고, 아직 20대인데도 "이미 나이가 많아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인, <청춘대학> 208p)

현재 '꺄르르'라는 필명으로 블로그(http://blog.ohmynews.com/specialin)를 운영하고 있는 '이인'은 인생 선배와 동시대 젊은이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 나눔을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2008년부터 그가 '삶을 깨우치기 위해, 공부를 더 깊게 하기 위해' 만난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 대학 시절에는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쌓으며 취직 준비를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는 취직만을 향해 돌진하는 여느 젊은이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동년배 젊은이들 사이의 스펙 쌓기 열풍에도 자연히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청춘대학>의 저자 '이인'은 파워블로거다. 2008년부터 인생 선배와 동년배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 나눔을 글로 풀어낸 그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지금까지 1300만 명이 넘는다.
 <청춘대학>의 저자 '이인'은 파워블로거다. 2008년부터 인생 선배와 동년배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 나눔을 글로 풀어낸 그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지금까지 1300만 명이 넘는다.
ⓒ 이인 블로그 메인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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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난 선생님들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단편적인 지식을 기계적으로 쌓으며 자격증 따기, 토익 공부에만 몰두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모든 대학생들이 고시생 포스를 하고 있다" 혹은 "너무 안정된 직장에 모든 걸 걸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청춘대학>의 여러 선생님들이 젊은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남긴 주문은 '독서'였다. 한계에 부닥친 상황에서 스스로 돌파구를 뚫어내려면 능동적인 사유를 해야 하고, 능동적이고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사고력을 확장해주는 종류의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홍세화 선생님은 "젊은이들이 나서지 못하는 것은 객관화된 암기공부만 반복해서 하면서 생각하는 주체로서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왜 이렇게 책을 읽지 않는가?'라는 선생님들의 질문에 젊은이들이 변명할 거리는 많다. 취직하고자 하는 기업에서 원하는 '스펙'을 다 갖추려면 책 읽을 시간도, 성찰할 여유도 없는 게 사실이다. 토익 점수와 학점, 각종 자격증, 어학연수, 인턴십, 공모전 등 구직자들이 할 일은 너무 많다.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일단 이력서 한 줄을 더 채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우선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몇몇 선생님들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구본형 선생님은 기계적으로 스펙만 많이 쌓는다고 해서 취업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구 선생님에 따르면, 기업의 인사정책도 이제는 옮겨가는 추세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구직자의 학점, 학벌, 지식, 다양한 경험을 중요하게 봤지만, 자세와 가치관을 더 높이 평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꿈을 크게 갖고 마음가짐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가 하면 한완상 선생님은 취업에만 매달리는 젊은이들의 자기중심적 태도를 꼬집기도 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큰 꿈 없이 그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미래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대학에서 취직에 필요한 공부만 열심히 하려고 해요. 그러니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경험한 민주화, 통일, 인권 문제에 대해서 '내 문제가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죠. 군사독재 시절 아버지 세대가 피땀 흘려 얻은 자유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잖아요. 나쁘게 말하면 소시민적인 자족감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에요."(한완상 전 부총리, <청춘대학> 292p)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의 고미숙 선생님 역시 "가난해서 불행한 게 아니고 나를 경제만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라며 청년 세대의 소비만능주의를 지적했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제안했다.

'정말 행복한 게 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피 튀기는 경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젊은이들에게 선생님들은 이런 질문도 던진다. '열심히 사는 너, 행복하니?'

"밥과 자기 존재, 이 두 가지를 화해시키려고 애를 써야 해요. 두 가지가 불화한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요. 젊을 때, 현실적인 문제에만 치중하게 되면 밥은 건질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공허하다는 걸 느낄 거예요. 취업을 준비할 때는 못 들어가서 안달이지만 들어가서는 못 나와서 안달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곤란하죠.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정말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다 보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그것이 밥도 되고 명예도 되고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도 될 거예요."(변화경영 전문컨설턴트 구본형, <청춘대학, 253p)

직장 문제로 자살 충동을 느낀 20대가 20%가 넘는 시대다. 구직난, 불안정한 직장생활, 불투명한 미래... 이런 어려움 앞에서 '행복'을 말하는 게 사치는 아닐까?

"각 개인이 '정말 행복한 게 뭔가?'라고 묻는 것에서 출발해야 해요. 다들 취직이 안 된다고 난리잖아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는 거예요. 지금 대기업 취직이 되었다고 치자, 지금 내 삶이 행복할까? 대기업 다니는 제 친구들도 행복하게 살지 않거든요. 인생의 행복, 삶의 가치는 정해진 게 아니에요.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청년세대들이 조금 더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시인 김선우, <청춘대학> 29p)

젊은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 사회에도 잘못이 있지만,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20대들의 자세가 더 문제인 듯했다. 부모와 사회, 학교가 그려놓은 거짓 행복을 좇으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지 점검해봐야 한다. 그런 다음,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아내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할 과제다.

<청춘대학> 학생 '이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에게도 행복을 찾느라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리저리 다니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같이 부딪히며 일도 해보다보니 슬슬 제 테두리와 언저리가 보이더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이 청년이 걸어온 길에서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시도해보아야 할 일의 실마리가 보였다. 

"옛날처럼 싸우라는 얘기 아냐"

그렇다면 20대가 마음껏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똘똘 뭉쳐 군사독재에 대항했던 386세대 선생님들은, 지금의 젊은이들도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해보라 말한다. '짱돌'을 들고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면 20대는 영원히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지 모른다고 말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선생님은 '20대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강조한다.

"제가 <88만원 세대>에서 말한 짱돌은 정책 수요를 표상화한 거예요. 얘기를 해야 뭐가 들어가죠. 20대도 뭔가 필요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보면 동일한 자원을 갖고 할아버지들한테 지고 있는 거예요.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이들은 처음 시작이 너무 불리해요. 이걸 만회하는 큰 흐름이 있어야 하죠."(경제학자 우석훈, <청춘대학> 276p)

하지만 '투쟁'과 '저항'만큼 20대에게 공허하게 들리는 말도 없다. 내 경우에는, 냉혹한 취업난에 직면하고 보니 솔직히 그동안 더 순종적으로 살지 못했음이 오히려 후회되기도 했다. '진작에 엄마 말 듣고 더 열심히 공부할걸' 하는 생각이 앞섰다는 말이다.

20대는 스무 해가 넘는 교육 과정 동안 경쟁과 비교에 시달려왔다. 협동하고 양보했을 때보다는, 친구를 한명씩 밟고 올라섰을 때 칭찬과 격려를 받는 시스템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경쟁의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로 돈이었다. 가정에서도, 교육현장에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믿을 것은 돈과 나 자신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꾸만 벌어졌다.

20년이 넘도록 이런 방식의 '생존 프로그램'이 각인된 우리들에게 갑자기 '연대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들려왔다.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무서웠다.

그래서일까. 한홍구 선생님은 좀 더 조심스러운 제안을 던졌다.

"젊은이들이 옛날처럼 싸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요즘 20대들에게는 하나하나마다 새로운 가능성이 있으니 그걸 좀 더 밀고 나갔으면 해요. 젊은이들에게 해답을 주기 위해선 젊은이들이 자기 싸움을 할 수 있도록 윗세대는 격려랄까, 도와주고 함께하도록 애를 써야겠죠."(역사학자 한홍구, 362p)

<청춘대학>, 대화의 시작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약간의 반발심이 꿈틀거렸다. 홍세화, 강신주, 우석훈, 한홍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분들이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어떤 말을 할지,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너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드러운 말로 포장한다 해도 결국 '어쩜 이렇게 개인적이냐' '너무 무식하다' '부모님 돈 없으면 못 살지?'라는 힐난으로 귀결될 거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동안 우리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그저 꾸짖기 바쁜 어른들이 '꼰대'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그 충고들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어른들은 '요즘 젊은것들'의 이런 태도가 참 답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20대는 그저 서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 마음의 벽이 <청춘대학>을 읽는 동안에는 많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어른들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젊은 세대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도무지 생각할 줄도 모르고 이기심만 가득한 우리를 야단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우리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 젊은 세대가 처한 끔찍한 상황은 자신들이 초래한 것이라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무조건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기보다는 '함께 해보자' 제안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청년 세대들에게서 섣불리 희망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그래서 <청춘대학>은 대화의 시작이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어쩌지, 어쩌지······' 하며 망설이기만 하던 나약한 청년이 이제는 용기를 내어 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그가 '참스승'으로 삼은 세상의 어른들은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은 질문할 것이고, 더 많은 선생님들이 대답해 주어야만 한다.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20대 청춘의 쉽지 않은 이 고민이 책 한 권으로 해결될 리는 없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이제는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음속 망설임은 줄었고 용기는 늘었다. 불안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나와 우리의 상상력으로 '진짜 행복'을 빚어낼 수 있는 용기.


청춘대학 - 대한민국 청춘, 무엇을 할 것인가?

이인 지음, 동녘(2010)


태그:#청춘대학, #이인, #꺄르르,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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