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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곧 쏟아질 듯 칙칙한 이른 초저녁, 불 켜진 창문 틈으로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백발이 희끗한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진지한 모습이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 여름 농한기를 맞아 '농민과 나'라는 주제로 인문학 강좌를 마련한 자리이다. 조용한 농촌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자본주의 상품미학의 허위의식으로부터 삶의 진정성을 성찰하고, 농민의 자리를 고민할 예정이다.

 

강좌는 지난 25일부터 시작해 7월30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총 6차례 이루어질 예정이다. 25일 첫 번째 강의는 10년 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곡성으로 들어와 도깨비마을 촌장이 된, 어린이 문학작가 김성범씨가 '농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 문을 열었다. 그는 "농사는 목숨이다. 그 누구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삶을 영위하는 근본이다"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김 씨는 농사에 있어 '판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풍년농사를 지어도 팔 걱정이 앞선다.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생산중심 농사는 보통이상의 농산물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각종 인증제도와 검사를 통과한 농산물은 지천에 널려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친환경이다. 어떻게 생산하느냐 보다 어떻게 팔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한 것은 '이야기가'였다. 그는 "분석적 이성적 광고마케팅은 효용이 거의 없다"며 "감성으로 다가가는 '이야기가 되는 광고'가 더 잘 통한다"고 말했다.

 

"농촌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문화와 삶을 생산하는 인류의 영원한 고향이자 원천이다. 곡성 구석구석에 살아 숨쉬는 문화를 찾아 농사와 함께 접목한다면 '해리포터'같은 경제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는 "문화와 함께하는 마케팅이 절실하다"며 곡성의 '도깨비 살' 이야기와 함께 '바보매실'을 사례로 들었다.

 

"지난해 매실 수확기 때 농약을 치지 않아 열매에 파리똥처럼 점이 앉아 팔 것을 고민했는데, '바보매실'이란 설명서를 덧붙였더니 주문이 쏟아졌다. '저희 바보 매실은 농약을 치지 않아 파리똥처럼 표면에 점박이가 발생했습니다. 보기 좋은 상품을 만들자고 생명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정도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김 씨는 "농민 스스로 공부를 통해서 자기를 계발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기획하는 창의적 농업을 해야 한다"며 "공무원만 믿지 말고 농민 스스로 일꺼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예술을 버리고서는 그 무엇도 최고를 만들 수 없다"며 다시 한번 이야기를 포함한 문화예술과 농사의 접목을 강조했다.

 

더불어 "오늘의 고단함이 물질만능 세상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꾸어간다는 즐거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인문학이라고 해서 대단한 학문이 아니고 사람 사는 이야기다. 바쁜 세상살이 일수록 느린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시간 이상 진행된 강의 내내 그의 구수한 입담과 토박이도 모르는 이야기 보따리는 청중의 귀와 눈, 그리고 혼을 쏘옥 빼앗아 버렸다. 옥과고 1학년에 재학중인 이후락(17)군은 "곡성이 이렇게 유서 깊고 이야기가 많은 곳인 줄 몰랐다. 도깨비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힘없고 돈 없는 약하디 약한 우리 서민들의 희망과 이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이어지는 강의를 빠지지 않고 듣겠다고 말했다.

 

김재형 도서관장은 " 각자 농사작목이 있듯이 나는 인문학 강좌를 올해 농사작목이라고 생각한다. 대풍은 아니어도 종자를 받는 마음으로 임하겠"며 "앞으로 10년 동안 농한기인 여름과 겨울에 인문학 강좌를 열어 농민의 자존감과 긍지가 대를 이어 농사짓는 풍토로 만들어 지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은 2004년 곡성군농민회 죽곡면지회 회원들이 꾸민 농민문고로 출발해 2006년 도서가 2500권으로 늘자 외부의 지원을 받아 24평짜리 도서관으로 발전하였다. 이 도서관은 5년 만에 7000여 권의 장서로 빼곡해졌고, 매월 둘째, 넷째 쉬는 토요일에 영화를 상영하는 등 지역문화의 빛과 소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061-363-1350)

 

앞으로의 강의 일정

7월2일(금)오후 7시 인드라망 공동체 대표 지리산 실상사 도법스님

7월9일(금)오후 6시 지역구 국회의원 민주당 김효석 의원

7월16일(금)오후 7시 곡성민주사회단체협의회 박종채 상임대표

7월23일(금)오후 7시 '풍경소리'발행인 김민해 순천평화학교 교장,

7월30일(금)오후 7시 오마이뉴스 오연호대표기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죽곡농민열린도서관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문학강좌, #미래, #농민, #열린도서관, #산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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