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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화전동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클래식 음악감상실 1호 녹향. 1946년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6·25 동란 때 이중섭, 유치환, 최정희, 양주동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 문인들이 찾아오는 등 문화의 아지트(?)라 불릴 만한 곳이었다.

이런 문화 공간이 현재는 찾는 이가 거의 없어 문을 닫을 위기였는데, 젊은 시절 녹향에서 보낸 지역 사람들, 학계에서 이를 안타깝게 여겨 녹향을 살리기 위한 운동(?)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그 행사가 바로 "아티스트, 녹향을 가다" 이다.

샤르트르와 보브아르가 집필했던 파리의 '까페 드 플로르'가 관광명소가 되어 세계인들이 찾는 것과 비교할 때, 한국의 근대문화 유산인 '녹향'을 살리는 이러한 행사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씨를 비롯하여 피아니스트 강충모, 작곡가 이영조씨 등 유명한 아티스트가 강연자로 초청되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음악 감상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6.25 동란때 피아노와 함께 피난을 떠났다는 에피소드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 첼리스트 정명화씨 6.25 동란때 피아노와 함께 피난을 떠났다는 에피소드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 정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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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에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강연자로 초청되었는데 자신의 음악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의 말문을 열었다.

'정트리오'라 불리는 정명화, 정명훈, 정경화씨가 세계적인 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데 가장 큰 공로는 어머니였다. 정명화씨의 어머니는 자녀들의 반응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뒷받침해주었다고.

정명화씨가 피아노 연습에 흥미를 잃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현악기를 권하셨고 그 이후로 현악기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는 것. 정경화씨가 바이올린 소리에 남다른 흥미를 보인 것을 어머니가 발견하여 재능을 키운 셈이다. 어린시절 정명화씨는 오페라를 보고 와서 무대 장면을 동생(정경화)과 함께 시연해 보는 등 음악적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즐겨했다고 소회했다.

정명화씨는 즉석해서 연주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관객들의 요청에 흔쾌히 실황으로 연주해 주셨다.
▲ 실황 연주 정명화씨는 즉석해서 연주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관객들의 요청에 흔쾌히 실황으로 연주해 주셨다.
ⓒ 정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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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듯 작은 공간에서 관객들이 음악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음악 감상은 40주년 기념 앨범에 수록된 곡 중, 정명화씨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안단티노'를 첫 곡으로 시작하여 정명훈씨의 화려한 반주에 맞춘 '엄마야 누나야', 이영조씨 작곡의 '도드리' 등의 곡으로 이어졌다.

'도드리'는 장구 장단에 맞추어 연주되는 곡으로 불협화음이 많이 나와 다소 생소하기도 하지만 전통악기 반주의 현대 음악으로 독특한 여운을 남겼다. 40주년 기념 앨범의 곡을 몇 곡 더 듣고 나서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 또는 음악 지도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현악기를 하는 학생들이 주로 범하기 쉬운 오류가 급한 마음에 활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현악기는 활로 켤 때 소리가 나기 때문에 학생들은 활을 써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보다 손으로 현을 짚고, 비브라토를 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나온다. 음악적 표현을 할 때 현을 짚는 손에 감정을 싣고 표현하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한다."

연습을 할 때, 기계적으로 "앞으로 두 시간 연습해야지"가 아닌 부분 연습의 중요성 및 마음가짐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제일 잘 하고 싶다"는 의욕이 앞서고, "이렇게, 저렇게 연습하여 다양한 탐색을 통하여 흥미와 재미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음악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학생들의 잘된 점을 찾아 칭찬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의 부족한 점은 누구나 지적할 수 있지만 그 학생의 좋은 점을 보기는 어렵다. "너는 정말 재능이 있는 아이야"라는 인상을 심어준다면 그 학생은 선생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욱 노력할 것이고 학생들의 음악적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악보에는 음악적 해석이 나와 있지 않아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악보를 보고 해석을 하면 좋을까요
"기악연주에 있어서 악보를 보고 표현하기는 노래부르기 보다 어렵다. 악보를 보고 먼저 음정, 박자를 정확히 짚어내야 하며 그것을 선율로 만들어 따라 불러보면 좋다. 그렇게 하다보면 표현할 만한 게 생긴다. 그래도 어렵거든 선생님의 해석을 믿고 따라 해보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해석,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다음 날 부산공연이 있음에도 늦은 시각까지 녹향 살리기 운동의 깊은 뜻을 이해하시어 음악 감상, 즉석 실황 연주, 사인회 및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과 함께 사진까지 촬영해 주신 정명화씨의 순수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에 녹향을 방문한 시민들은 한아름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안고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정명화씨의 헌정 무대와 같은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과 순수함을 바탕으로 클래식 음악 역사가 살아 숨쉬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녹향'을 기대한다. 

음악 감상이 끝나고 사인회를 하시는 모습
▲ 환하게 웃으시는 정명화씨 음악 감상이 끝나고 사인회를 하시는 모습
ⓒ 정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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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녹향, #정명화, #고전음악감상실,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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