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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밤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발생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건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재소집했다.
 3월 27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밤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발생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건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재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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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쟁영화나 첩보영화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국가에 중대한 사태가 발생해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 자리에 미 야전군의 '대령'이 참가할 뿐만 아니라 그 회의에서 전문성과 정보 판단의 정확성으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국가안보와 관련한 최고위급 회의에 장차관이나 사성장군이 참여하는 한국의 모습과 대비된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의 경우 대령 이상의 고급장교는 단순한 전쟁 기술자가 아니라 세계의 특정 국가 지역에 대해 가장 정통한 군사정치 전문가이다. 미국 군대에서 고급 장교로 진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격 중 하나도 바로 이 군사정치적 전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태가 발생하면 삼성장군이나 사성장군을 부르지 않고 그 사태와 관련된 국가 지역에 대해 군사정치적 전문성을 가진 대령을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군사정치 전문가로서 고급 장교단이 받치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외교적 판단은 정밀하고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군통수권을 갖는다고 하는 의미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군의 고급 장교단이 그 군사정치적 전문성으로 대통령의 외교·안보적 판단을 뒷받침하는 것일 게다. 자주국방에서 무기나 군대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대통령의 외교·안보적 판단이 그 나라 군 고급 장교단의 군사정치적 전문성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느냐 여부이다.

전시작전권 없는 한국에서 군사정치 전문가 탄생 어려워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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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고급 장교단의 성격은 미군 고급 장교단의 성격과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군의 고급 장교단은 전쟁 기술자이지 군사정치 전문가가 아니다. 직업군인들이 중령에서 고급장교인 대령으로 진급하는 데 있어서도 군사정치적 전문성은 중요한 기준이 되지 못 한다.

직업군인에게 있어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는 시기는 인생 최대의 실존적 위기에 부딪치는 시기이다. 대령 진급은 매우 좁은 문이다. 이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40대의 젊은 나이에 제대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는데 사회에 나와 제2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결국 실의에 빠진 연금 생활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군에서 지휘관 생활로 잔뼈가 굳은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과거 한국의 군사 쿠데타의 실질적 주역이 중령들이었던 것도 직업군인들이 대령 진급을 앞두고 겪는 이 실존적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이 한국의 직업군인들이 중령 때 겪는 실존적 위기가 크기 때문에 대령 진급의 결정적 기준이 무엇인가가 한국군 고급 장교단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한국군의 진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급 지휘관의 평가이다. 이 기준 때문에 한국군의 고급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줄을 서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라인에 속하지 않고는 사실상 고급 장교로 진급하기 어렵다. 이러한 인사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과거의 하나회 같은 군부 내 파벌이었다. 하나회는 김영삼 정부에서 해체됐지만 군의 인사시스템은 근본적으로는 개혁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군의 고급 장교단은 왜 군사정치 전문가가 아니라 전쟁 기술자에 머무는 것일까?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다른 원인들도 있겠지만 한국에 전시작전권이 없다는 사실이 결정적일 것이다.

한국군의 고급 장교단은 고도로 정밀한 군사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전시에 판단을 내리는 궁극적 주체가 아니다. 그 판단은 미군이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군의 고급 장교단은 전쟁 기술자이면 되는 것이지 군사정치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이것은 제정신이 박힌 군인이라면 치욕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모독이다. 그런데 한국의 군부는 이것을 치욕으로 여기질 않는다.

돌려주겠다는 전시작전권을 한국의 군부가 굳이 안 받겠다고 애걸복걸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난센스다. 그것은 한국 군부가 '우리는 고도의 군사정치적 판단을 할 능력도 없고, 그런 능력을 기르고 싶지도 않고, 그런 판단을 하고 싶지도 않다'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고 고백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번 천안함 사태에서 이러한 한계는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안보 외교상 중요 기구를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수경례로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계훈 공군참모총장, 한민구 육군참모총장, 김태영 국방부 장관, 이명박 대통령.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수경례로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계훈 공군참모총장, 한민구 육군참모총장, 김태영 국방부 장관,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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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고급 장교단이 군사정치적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책임을 위임받은 대통령으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힘의 우열에 의해 움직이는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한 나라의 주권행사를 위임받은 대통령이 외국 군대의 군사정치적 판단에 의지해서 중대한 안보 외교 문제를 결정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제정신이 박힌 대통령이라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자주국방에 대한 문제의식이 안보 외교 정책 속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개인이 정치가로서 가지고 있는 안보 외교에 대한 탁월한 전략적 인식과 국내 국외에 걸쳐 있는 정보 네트워크로 한국 군부의 한계를 보완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것을 시스템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청와대 내에 안보 외교를 총괄하는 일종의 안보 정책 상황실을 구축하고 정보를 집중 관리함으로써 한국 군부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한편, 전시작전권 회수를 중심으로 한국 군대를 그에 걸맞게 질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개혁이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군과 안보 외교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인식이 있었다면 정권인수위를 꾸렸을 때 안보 국방과 관련해 전 정권에서 어떤 것이 진행되어 왔는지 꼼꼼하게 점검하여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군과 안보 외교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은 그것을 대신할 만한 시스템의 마련 없이 노무현 정부 시절의 청와대 내 안보 외교 통제 시스템을 해체한 점, 전시작전권의 반환을 굳이 거부하고 있는 점 등에서 잘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한 안보 외교상 필요한 기구들을 작은 정부로 가기 위해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안보 외교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과거에 고정되어 있는 낡은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1980년까지 한국의 경제발전은 별 어려움 없이 이루어져 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사회주의 진영과 대립하는 냉전체제 속에서 한국을 하나의 성공 사례로 키우려 한 데 있었다. 냉전시대 로스토우의 경제발전 이론은 거칠게 말하면 후진국들이 미국을 모델로 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일정한 단계를 거쳐 미국처럼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을 이 경제발전 이론의 성공모델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 우산 아래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별 어려움 없이 고도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한국의 군부, 보수언론,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세력의 현실인식은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머물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커다란 안보 외교 문제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커다란 안보 외교는 미국이 알아서 해주는 거니까 우리는 북한에만 신경 쓰고 있으면 된다. 전시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은 미국이 보장하던 안정적 안보 우산이 해체되는 것이기 때문에 '큰일 나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경제는 미국의 든든한 후원이 있기 때문에 아파트 짓고 4대강 파헤치고 열심히 땀 흘리고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이것은 아버지의 보호 속에 있는 어린아이의 사고이지, 스스로 책임지는 어른의 사고가 아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권과 제3세계를 향한 선전용으로서 한국이라는 성공사례는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또 로스토우의 경제발전이론은 이미 1970년대를 지나면서 깨졌다. 게다가 지금은 미국경제 자체가 위태로운 판이다. 그러니 이제 미국이 경제적으로 한국을 보호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다른 나라와 똑같이 기회가 된다면 양털깎이라도 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고, 실제로 1997~1998년 한국은 IMF 관리체제로 넘어가 양털깎이를 당했다.

군사적으로도 지금은 미-소를 양극으로 하는 냉전시대와는 다르다. 미국과 중국은 같은 자본주의 경제관계 속에서 깊이 얽혀 있기 때문에 과거의 군사적 대립관계와 같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이 북한 문제를 군사대립 일변도로만 풀 수도 없다. 미국이 과거와 같이 한국의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담이 된다. 그래서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반환하려 하고 있고, 시간이 연장될지는 몰라도 결국은 반환할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현실은 당연히 한국이 어른으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어린아이로 남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 냉엄한 국제현실 속에서 이러한 떼쓰기가 통할 리 만무하다. 시대착오적 현실인식은 파탄을 불러올 뿐이다. 그 적나라한 예가 바로 천안함 사태이다.

천안함 사태 통해 드러난 이명박 정부와 한국군의 한계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9일 오전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TV·라디오 생방송 연설을 하던 중, 희생장병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9일 오전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TV·라디오 생방송 연설을 하던 중, 희생장병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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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같이 남북을 매개로 열강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지역에서 군사적 긴급 상황은 항시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의 고급장교는 군사정치적 전문성을 가지고 긴급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필요성은 육군보다 해군의 경우가 더 크다. 육상에서의 군사적 긴급 상황은 남북 간의 긴장이란 매개를 거쳐서 국제 문제화되지만 해상에서 발생하는 군사적 긴급 상황은 남북 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문제이다.

한국은 바다를 통해서는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과 경계를 마주보고 있고 또 한국의 수역은 곧 미국 해군의 작전구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군의 고급 장교는 육군과 다르게 함정을 책임지는 소령부터라고 할 수 있다. 또 진급의 기회가 육군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번 천안함 사태에서 과연 천안함 함장부터 해군의 고급 장교들은 군사정치적 전문성에 입각하여 사태를 판단하고 행동했는가? 사건의 진위가 무엇인가를 떠나서 그 과정을 보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천안함의 긴급 상황은 더구나 한국 해군과 미 해군의 합동 군사훈련 기간 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국제문제의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사건의 처리 과정에는 신속성, 투명성, 객관성, 신중성이 필요했다. 이것은 처음부터 국제적 문제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객관적인 처리를 통해 국제적 신뢰를 얻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신중함을 필요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적인 신뢰를 잃어 위상이 실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안보 문제의 성격상 최대한의 신속성이 요구됐다. 무기가 발달한 현대전의 성격상 전쟁은 일주일 만에도 승패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해군을 비롯한 군의 대응은 그 어느 기준 하나 충족시키지 못했다.

우선 투명성에서 군은 가장 기초적인 자료들조차도 군사기밀이라는 허울 좋은 방패막으로 가렸다. 객관성에서 사건의 조사를 사고 당사자인 해군이 맡은 데다가 60명이 넘는 민군 합동조사단에서 실질적인 민간인은 3명뿐이었다. 거기에다 조사위원들은 비밀유지 각서와 핸드폰 압수로 입에 재갈이 물렸다. 민감한 국제문제로 떠올라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을 확실한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실상 북한의 행위로 예단하는 인상을 강하게 주어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했다. 그리고 철저하지도 신중하지도 못하면서 한 달 이상 시간을 끌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여러 차례 끝났을 시간이다.

이것은 한국의 군부가 군사정치적 안목과 책임성이 없는 집단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있어야 할 안목과 책임성은 없고 사고의 책임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이 속한 라인을 보호하려는 거의 본능적인 욕구만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한계를 전혀 모르고 있고, 그러한 군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 사태를 컨트롤해 갈 시스템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러한 인식이나 시스템이 있었다면 최소한 사건의 조사를 사고 당사자에게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횡설수설하며 책임회피에 여념이 없는 군의 발언과 그것을 과대포장하여 재생산하는 보수언론에 의존하여 천안함 사태를 국내정치의 핵심적 문제로 비화시켰고, 급기야는 국제문제로 비화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조사를 통해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기 전에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 UN 제소 운운하다가 미국으로부터 우회적인 면박을 여러 차례 당했다. 역시 조사 결론이 나기도 전에 한중 정상회담에서 천안함 사태를 북한과 연관지어 거론했다가 적지 않은 후폭풍을 겪고 있다. 그 국가 위상의 실추는 누가 책임질 것이며, 또 신중하지 못한 발언과 행보로 국민의 의식을 유아적 상태로 후퇴시킨 책임은 또 누가 질 것인가?

덧붙이는 글 | 김진경 기자는 교사이자 시인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을 역임했습니다.



태그:#천안함, #이명박, #안보,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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