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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은 여행자에게 산중의 암자 같은 존재이다. 이름난 산사들이 몰려든 사람들로 고요함을 잃은 지 오래되었고 관광자원이 된 제주도는 그 특유의 신비를 잃어가고 있다. 깊은 산중의 암자처럼 그나마 제주의 오름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을 덜 타고 있다. 우리 국토에 제주도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겠느냐는 누군가의 말처럼 제주도에 오름이 없었다면 제주도는 진정 제주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제주는 독특한 자연을 바탕으로 곳곳이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사람의 손길을 덜 타고 있는 곳이 바로 오름이다. 물론 올레길이 더 확장되면 오름도 예전의 신비를 점점 잃어가겠지만 말이다.

 

여행자는 제주 오름을 호령하는 '오름의 여왕'으로 우아한 다랑쉬오름을 꼽았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곳 아부오름은 '제주 오름의 꽃'일 것이다. 아부오름을 중심으로 주위 오름들이 꽃잎처럼 산개해 있다.

 

동쪽으로는 높은오름,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동거문오름, 손자봉, 멀리 우도의 소머리오름과 성산 일출봉까지 보인다. 남쪽으로는 좌보미, 동거문오름, 영주산, 개오름, 비치미, 성불오름이 있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샘이오름, 거문오름, 안돌오름, 체오름, 당오름, 돛오름이 있다. 이 수많은 오름 가운데에 아부오름이 있다.

 

아부오름의 분화구 안에는 마치 꽃술처럼 삼나무가 원형을 이루고 있다. 꽃 속에 다시 꽃을 피운 모양인 아부오름은 거대한 꽃잎에 둘러싸인 한 떨기 꽃과 같은 오름이다.

 

 

아부오름은 일찍부터 <압오름>이라 불렸다. 송당마을과 당오름 남쪽에 있어 <앞오름>이라 하며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 <전악前岳>이다. 산모양이 움푹 파여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믿음직스럽게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아부오름亞父岳>이라고도 한다. 아부는 제주방언으로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부오름은 완만하고 단순한 형태로 원형 분화구의 대표적인 오름이다. 오름 정상에는 분화구인 굼부리가 파여 있다. 굼부리 안으로는 비탈이 완만하여 내려갈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굼부리 안의 삼나무 숲이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같이 둥근 원형을 하고 있는 삼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아부오름은 1999년에 만들어진 영화 <이재수의 난>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영화는 1901년 일어난 제주민란을 소재로 하였다. 제주도에서 실제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들 간의 충돌사건을 다룬 것이다.

 

당시 제주도의 천주교인은 프랑스인 신부의 힘을 업고 민초들을 억압하였다. 이에 대정읍의 통인 이재수가 민초들과 함께 제주성에 있던 천주교인과 관군을 공격했고 제주성을 함락해 교인 등 700여 명을 죽이나 끝내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박해를 받았던 이들이 역설적이게도 세월이 흘러 핍박의 가해자가 된 천주교의 폐단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종교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분화구 내의 삼나무숲은 영화 촬영 당시에 심었다고 한다.

 

분화구 둘레는 1,400미터 정도이다. 잘 다듬어진 분화구 언덕을 따라 주변 오름을 감상하며 느릿하게 산책하기에 좋다. 연인이나 가족과 동행하여 가만히 걷기만 해도 좋다. 깊은 고요와 광활한 오름 군락 속에 서로의 존재가 소중함을 절로 알게 되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4월 17일 여행


태그:#아부오름, #앞오름, #다랑쉬오름, #제주도, #제주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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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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