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스틸컷

▲ 허트 로커 스틸컷 ⓒ 케이앤 엔터테인먼트

 

<허트 로커>가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바타>를 누르고 주요부분 수상을 했을 때만해도, 미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바타>를 물리치고 주요부분 수상을 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허트 로커>는 <아바타>를 누르고 결국 미국아카데미에서도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총 제작비가 1500만 달러인 이 작품의 북미 흥행수입은 현재까지도 1640만 달러(전세계 흥행은 4001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 수치로 볼때 미국아카데미에서 수상을 하기 전까진 흥행수입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북미에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다.

 

그런데도 <허트 로커>는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요부분을 휩쓸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흥행에 실패한 좋은 작품이 수상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미국아카데미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흑인들에게 그 문을 개방하지 않았고, 미국아카데미위원회가 좋아하는 영화 스타일이 따로 있단 이야기도 돌았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아카데미가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공정함'을 잃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주요부분 수상을 했는지는 영화를 보면 바로 납득할 수 있다. 비록 흥행에서 큰 재미를 못 봤을지 모르지만 영화 완성도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알차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전쟁영화를 전쟁영화가 아닌 인간의 영화로 탈바꿈 시켰다. 이 작품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분명 전쟁에 관련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숨어 있다.

 

액션이 동반된 전쟁영화가 아니다

 

허트 로커 스틸컷

▲ 허트 로커 스틸컷 ⓒ 케이앤 엔터테인먼트

 

이 작품이 이라크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사전 정보를 접한 관객들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할리우드 전쟁영화를 떠올리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엔 정말 대규모 전투 장면도, 박진감 넘치는 액션도 없다. 혹시나 이 영화가 전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불평을 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이 영화가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지 우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허트 로커>는 폭발물 제거를 주 임무로 하는 팀의 이야기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일선의 전장에 깔려 있는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폭발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만큼 항상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다. 분명 긴박한 전투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관객들의 호흡을 거칠게 만든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폭발물 제거 과정이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폭발물 제거반 EOD 대원들은 사고로 팀장을 잃는다. 이후 얼마지 않아 새로운 팀장 윌리엄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가 온다. 그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원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겉돈다는 것이다. 폭발물 제거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인 만큼 팀원끼리 믿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긴장감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다.

 

미군에게 적대적인 이라크에서 목숨을 내놓고 폭발물 제거를 해야 하는 EOD팀은 항상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란 괴물 앞에 마주서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괴물과의 마주섬은 또 다른 문제를 던져준다. '과연 실제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하는 것이다. <허트 로커>에 등장하는 EOD팀들의 한 가지 소원은 전역이다. 이들이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이유는 전역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허트 로커>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정영화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전쟁에 투입된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왜 인간에게 전쟁이란 것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한다.

 

전쟁이란 괴물에 먹힌 윌리엄 제임스 중사

 

허트 로커 스틸컷

▲ 허트 로커 스틸컷 ⓒ 케이앤 엔터테인먼트

 

<허트 로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란 괴물에게 먹힌 월리엄 제임스 중사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기다리던 전역을 해서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가족들과 만난다. 하지만 이미 전쟁이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생활했던 그에게 일상생활은 따분함 그 자체다. 더 이상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한 곳 밖에 없다.

 

다시 죽음과 증오의 괴물이 득실거리는 전쟁터로 향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항상 죽음과 마주서야하는 월리엄 제임스 중사에게 이미 전쟁은 하나의 여흥거리가 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전쟁이란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이지만 결국 전쟁이란 괴물 앞에 다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란 점에서 이 영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우리는 괴물과 실제 마주하기 전까지 그 괴물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아카데미가 이 영화를 주요부분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만큼 짜임새 있고 진중하게 그려내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장면이 없어도 얼마나 진지한 전쟁영화인지 보고나면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린 존>이 1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이 영화와 같은 긴박감을 제공해주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허트 로커>가 얼마나 잘 만든 이라크 전쟁영화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4.24 10:30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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