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발생한 병사의 사망사건을 실화로 한 <어 퓨 굿 맨>은 군의 명예와 진실 사이의 숨 막히는 대결을 법정 드라마로 재현해 냈다.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발생한 병사의 사망사건을 실화로 한 <어 퓨 굿 맨>은 군의 명예와 진실 사이의 숨 막히는 대결을 법정 드라마로 재현해 냈다. ⓒ 콜럼비아 픽쳐스

군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대표적 집단이라고들 합니다. '천안함 침몰'로 수장되어 있는 군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당시 교신일지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공개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사건의 핵심인 사고 원인과 정부와 군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진상규명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바람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군이 사고 원인과 대응에서 갈지자 걸음으로 일관하면서 보수언론 '조중동'은 연일 대북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고, 갖가지 상상력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런 사태를 자초한 청와대와 군에 대한 원성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미스터리는 미군의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발생한 미 해병대의 실제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어 퓨 굿 맨>(1992년작, 롭 라이너 감독)을 떠올리게 합니다. 'A Few Good Men' 즉, 소수정예를 뜻하는 제목이 명예를 생명처럼 여긴다는 군에 제격이니까요.

미 해군기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은?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의 전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이 막사에서 잠자고 있던 산티아고 일병을 폭행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일명 '코드 레드'(Code Red, 군대 내부의 규율을 어긴 병사에게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가해지는 불법 가혹행위)로 인해 죽은 것인데, '코드 레드'는 이 영화에서 키워드가 됩니다.

사건은 즉시 워싱턴 해군 법무감실로 보고되고 두 사병의 변호사로 군법무관인 데니얼 캐피 중위(톰 크루즈)와 갤로웨이 소령(데미 무어)이 임명됩니다. 사사건건 충돌하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던 둘은 관련 군인들을 차례대로 군사법정에 세웁니다. 그리고 영화는 법정 드라마로 전환합니다. 두 사병은 코드 레드와 관련해 입을 굳게 다물고, 소대장 켄드릭과 부대 사령관 제셉 대령(잭 니콜슨)은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며 한사코 부인합니다. 

 산티아고 일병을 ‘코드 레드’로 숨지게 한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이 군법무관 캐피 중위로부터 사건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산티아고 일병을 ‘코드 레드’로 숨지게 한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이 군법무관 캐피 중위로부터 사건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 콜럼비아 픽쳐스


사건의 배후를 숨 가쁘게 추적하던 캐피와 갤로웨이는 진실에 접근해 가면 갈수록 군의 명예와 진실이라는 쉽사리 화해할 수 없는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더욱이 제셉 대령이 코드레드를 발동했는지 여부를 증언해줄 수 있는 유일한 증인 마킨슨 중령마저 의문의 권총 자살을 하면서 진실 캐기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 듭니다. 가장 폐쇄적인 조직인 군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군인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군인정신과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완고한 제셉 대령입니다. 그는 미 해병대는 일반 군대와 달리 특별하다는 신념하에 'A Few Good Men'을 부대 구호로 사용케 할 정도입니다. 그런 제셉 대령에게 있어서 군인의 명예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이자 덕목입니다. 한마디로 군인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도슨과 다우니는 물론 제셉 대령 휘하의 부대원들 역시 'A Few Good Men'을 군대 생활의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부대 이름까지 'A Few Good Men'입니다. 영화는 두 법무관의 조사를 통해 상명하달의 일사불란한 지휘계통으로 전 부대원을 쥐락펴락해 온 제셉 대령의 명예의식과 가치의 속살을 하나, 둘씩 들춰냅니다.

문제는 제셉 대령이 금과옥조로 받드는 명예의식이 국민의 군대로서의 '명예와 가치'냐는 점입니다. 집요한 조사 끝에 제셉 대령을 증언대에 세운 캐피와 치열한 설전을 벌이며 내뱉는 그의 말은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군 내부의 의식과 가치관의 일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군인 정신과 명예의 화신임을 자임하는 제셉 대령이 증언대에서 캐피를 향해 지독한 독설을 쏟아 부으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군인 정신과 명예의 화신임을 자임하는 제셉 대령이 증언대에서 캐피를 향해 지독한 독설을 쏟아 부으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 콜럼비아 픽쳐스


"내가 있기에 당신들은 사는 거야. 나를 필요로 한다고! 당신들은 명예, 신조, 충성 같은 말들을 장난할 때나 쓰지만 우린 그게 생명이야. 내가 지켜준 자유의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에게, 내 임무수행에 대해 길게 얘기할 필요를 못 느끼네. 감사나 표하고 물러가게. 아님 총들고 보초를 서든지. 네 잘나빠진 진실엔 관심 없어!"

불꽃 튀는 설전을 통해 영화는 제셉 대령의 명예는 국민의 군대가 갖춰야 할 명예가 아니라 제셉과 해군 지휘부의 명예임을 보여줍니다. 그가 그토록 강조해 온 군인 정신과 명예가 사실은 오만과 허위로 포장된 도그마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국민의 군대가 지향해야 할 '국민의 존엄성과 명예'를 무시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군의 명예는 진정한 명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감과 소통이라는 국민의 합의를 배제한 명예는 아집과 독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안보의 막중한 임무 앞에 인권은 없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 제셉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명예의 허상을 파헤치는 캐피 간의 법정 공방은 군에게 있어서 국가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합니다. 해군 상층부는 군의 명예와 사기를 고려해 시종일관 원만하게 합의하도록 조정하고 압력을 가합니다. 제셉 대령과 군 지휘부에게 산티아고 일병의 죽음은 애초부터 '병참물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두고 있는 쿠바의 관타나모 해병부대는 엄정한 군기와 사명감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병사들은 그 첨병이고 관타나모는 미국의 안위를 수호하는 국가권력의 최전방입니다. 그리고 '코드 레드'는 그것들을 지탱하는 국가권력의 주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중요한 점은 '코드 레드'의 불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한 병사에 불과했던 산티아고의 인권이나 죽음은 이들에게 관심 밖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국가안보라는 막중한 임무 앞에 일개 병사의 죽음을 놓고 진실 운운하는 캐피는 제셉 대령에게 반역 행위자로 비칩니다. 하지만 제셉 대령과 해군 지휘부의 이런 진실 감추기는 두 병사와 캐피에 의해 무너집니다.

 두 법무관 캐피와 갤로웨이 그리고 도슨과 다우니가 군법회의에서 기립한 채 최종 평결을 듣고 있다.

두 법무관 캐피와 갤로웨이 그리고 도슨과 다우니가 군법회의에서 기립한 채 최종 평결을 듣고 있다. ⓒ 콜럼비아 픽쳐스


특히 'A Few Good Men'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두 병사가 결국 명예보다는 양심을 선택하고 법정에서 진실을 증언함으로써 영화는 다이내믹하게 전개됩니다. 그러나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군법회의에서 두 병사는 무죄를 받지만 불명예제대를 당합니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항변하는 다우니에게 도슨은 나직히 응답합니다.

"우린 유죄야. 산티아고 같은 약자를 보호했어야 했어…."

'A Few Good Army'를 기대하며... 

산티아고 일병의 죽음의 실체와 책임 소재를 놓고 팽팽하게 신경 줄을 잡아당기던 영화는 캐피와 제셉 대령과의 마지막 법정공방을 통해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애국과 군의 명예란 무엇인지,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5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섣부른 예단과 막연한 예측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종합적으로 엄정한 사실과 확실한 증거에 의해 원인이 밝혀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최소한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결과 발표와 같은 경악스러운 진실 감추기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은 눈을 가린 채 검과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를 떠올리게 합니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고, 두 개의 저울로 엄정한 조사를 하며, 사실과 진실을 향해 단호하게 검을 휘두르는 디케처럼 '천안함 침몰' 사건의 진실은 명명백백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영화의 제목 'A Few Good Men'이 해병대나 제셉 대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도슨과 캐피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A Few Good Men'의 중의적 표현인 '아주 드물게 좋은 사람'이란, 막강한 권력을 상대로 온갖 회유와 압력을 이겨내며 양심과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을 뜻하니까요.

'천안함 침몰' 사건에서도 우리는 'A Few Good Men'을 기대합니다. 아니 사실과 진실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명예로운 국민의 군대, 'A Few Good Army'를 기대합니다. <어 퓨 굿 맨>의 제셉 대령이나 해군 지휘부처럼 국가안보가 곧 군의 명예라는 오도된 가치에 '천안함'의 진실을 끼워 맞춰서는 결코 안 되니까요.

어 퓨 굿 맨 톰 크루즈 잭 니콜슨 천안함 침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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