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영화칼럼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는 3월 18일 개봉했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자기 자신과 현재를 부정하는 한 남자의 상처 입은 영혼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닫힌 공간을 차갑게 조명하는 <셔터 아일랜드>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자기 자신과 현재를 부정하는 한 남자의 상처 입은 영혼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닫힌 공간을 차갑게 조명하는 <셔터 아일랜드> ⓒ CJ 엔터테인먼트

정신병원을 소재로 한 영화의 백미로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꼽힙니다. 영화의 종반부에서 추장 브롬든이 병원을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맥 머피(잭 니콜슨)에게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머피는 머리 양쪽에 수술자국이 선명한 채 산송장이 되어 돌아오죠. 친구 빌리를 죽게 만든 간호사의 목을 조르는 난폭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들의 전두엽을 잘라내는 전두엽 절제술을 강제로 받은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가 전두엽 때문인데, 전두엽 절제술은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복잡한 기능을 관장하는 전두엽을 거세해 일순간에 사람의 모든 것을 증발시키는 수술입니다. <뻐꾸기>에서는 추장이 바보가 된 머피의 목숨을 거두고 그의 정신을 가슴에 간직한 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 가며 끝납니다.

사실 사람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뇌를 후벼 파는 시술은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하 감옥에 마귀에 쓰인 사람을 가두고 드릴과 망치로 뇌를 무자비하게 파괴했으니까요. 이후 방식은 달랐지만 1930년대부터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쇼크요법과 전두엽 절제술(혹은 대뇌백질 절제술) 등의 생체실험이 줄줄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이런 치료법은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오늘날에는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이라는 이름의 광기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정신병원을 무대로 삼은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자행한 뒤로 폐가처럼 버려진 매사추세츠 주 메드필드 정신병원 건물에서 직접 촬영한 영화 <셔터 아일랜드>입니다.  

66명의 환자가 수용된 병원, 67번째 환자는 누구일까

 고립무원의 정신병원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한 테디와 척이 교도관들의 안내로 배에서 내리고 있다. 병원 입구에는 ‘한때 삶과 웃음을 사랑한 사람들을 기억하라’는 의미심장한 안내판이 그들이 맞이한다.

고립무원의 정신병원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한 테디와 척이 교도관들의 안내로 배에서 내리고 있다. 병원 입구에는 ‘한때 삶과 웃음을 사랑한 사람들을 기억하라’는 의미심장한 안내판이 그들이 맞이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연방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멀미로 '꺽꺽' 거리는 가운데 배는 푸르스름한 안개를 헤치며 바다를 가로질러 정신병 환자들을 격리수용한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에 닿습니다. 여성 환자 레이첼이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사면이 바다이고 전기 와이어로 봉쇄한 섬에서 과연 탈출이 가능할까요?

테디는 동료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의사와 간호사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병원 사람들이 전부 입을 맞춘 듯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탐지합니다. 테디는 레이첼이 묵던 방에서 'Who is 67'이라고 쓴 쪽지를 발견하고, 이 쪽지는 영화의 키워드가 됩니다. 때마침 몰아친 허리케인으로 섬은 고립되고 보안시설마저 마비된 가운데, 극심한 편두통과 환영에 시달리던 테디는 모두 66명의 환자가 수용된 병원에서 67번째 환자가 누구인지 찾아 나섭니다.

살인자와 정신병자들의 섬,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압적으로 솟아오른 핏빛 건물, 길게 이어진 어두운 복도,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수용소, 황량하고 싸늘한 공기가 짓누르는 '셔터 아일랜드'는 인간성의 상실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입니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밀봉한 기억의 창고를 움켜쥐고 발버둥치는 자신의 참혹한 과거와 마주칩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희뿌연 한 안개처럼 무겁게 드리운 자신의 진실과.

영화는 결말에 대한 해석이 까다롭습니다. 영화가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뼈대로 하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관객의 눈높이에 따라 해석이 제각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의 다른 소설 <미스틱 리버> 역시 영화화되었는데 이 영화 역시 끔찍한 과거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 남자들의 황폐한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어, 해석의 단초를 찾게 해 줍니다.

트라우마의 감옥에 갇혀 발버둥치다

 원장 코리 박사의 응접실에서 사건의 진상을 듣던 테디는 “숨기고 있는 사실이 무엇이지 말해 달라”고 하지만…

원장 코리 박사의 응접실에서 사건의 진상을 듣던 테디는 “숨기고 있는 사실이 무엇이지 말해 달라”고 하지만… ⓒ CJ 엔터테인먼트



현대사회에서 점증하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접근은 프로이드식의 정신분석학적인 접근과 대뇌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보는 접근 그리고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으로 보는 접근 등 다양한 갈래로 나뉩니다. 하지만 접근법이야 어떻든 당사자를 중심으로 놓고 본다면 스스로 '미쳤다'고 쉬이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드는 혼돈의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천착됩니다.

테디에게는 의식의 경계를 넘어 무의식의 뼛속까지 각인된 트라우마가 요동칩니다. 지울 수 없는 악몽으로 작동해 테디의 삶 전체를 통제합니다. 트라우마의 그리스어 어원이 '상처'라는 점은 이 영화가 혹독한 트라우마의 감옥에 갇힌 테디의 상처 입은 영혼에서 비롯되었다는 힌트를 꺼내 놓습니다.

영화의 시대배경은 1954년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2차 대전이 남긴 후유증과 광신적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때입니다. 퇴역군인 테디가 전쟁의 한복판에서 목격한 것은 유대인 생체실험과 홀로코스트였습니다. 이때의 트라우마는 셔터 아일랜드를 바라보는 테디의 눈과 의식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전쟁이 어떻게 한 인간을 폭력과 공포로 지배하는지를 집요하게 뒤쫓습니다.

또 다른 트라우마는 테디의 무의식까지 통제합니다. 수사가 난관에 부딪칠 때면 환영처럼 나타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지독히 사랑했던 그의 아내입니다. 사실 테디는 자신의 아내를 방화로 질식사시킨  방화범 앤드류 레이디스를 잡기 위해 셔터 아일랜드행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엄청난 비밀이 밀봉되어 있습니다. 밀봉된 비밀 속에는 아내와 세 자식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라진 레이첼이나 방화범 레이디스는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닌 허구의 인물일 뿐입니다. 이것은 삶 전체를 통제하는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과거의 얼굴'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테디의 원죄의식이자 이 영화의 반전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셔터 아일랜드>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차이

 정신병원을 강타한 허리케인으로 꼼짝없이 갇힌 테디와 척은 폭풍우가 걷히면서 사건의 진실에 한 발자국 다가서게 된다. 하지만 폭풍우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테디의 삶을 의미하는 혼돈의 상징으로 읽힌다.

정신병원을 강타한 허리케인으로 꼼짝없이 갇힌 테디와 척은 폭풍우가 걷히면서 사건의 진실에 한 발자국 다가서게 된다. 하지만 폭풍우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테디의 삶을 의미하는 혼돈의 상징으로 읽힌다. ⓒ CJ 엔터테인먼트



<셔터 아일랜드>는 미스터리 스릴러다운 공식을 따릅니다. 다만, 고통스런 과거로 현재를 부정하는 한 남자의 영혼을 깊숙하게 성찰한다는 점에서 한 권의 정신분석 텍스트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반면 <뻐꾸기>는 억압된 자유와 강요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머피를 통해 미국 사회의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저항할 것을 촉발하는 히피 영화에 가깝습니다.

두 영화가 정신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단절과 통제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지만 출발과 종착은 다릅니다. 앞서 봤듯이 <뻐꾸기>는 머피가 저항 의지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추장에게 심어주고 추장이 정신병원을 탈출함으로써 시스템에 의해 희생된 이들에게 희망의 진혼곡을 울립니다. 폭력과 공포 그리고 세뇌와 회유로 지배하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은 비로소 시작된 셈입니다.

반면 <셔터 아일랜드>는 테디로 출발해 테디로 귀착됩니다. 자신을 가둔 트라우마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섬으로 온 그는 그러나 그 어떤 트라우마로부터도 탈출하지 못합니다. 섬의 외진 등대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기 위해 반미(反美)조사위원회의 지시로 전두엽 절제술이 시행되고 있으며, 자신을 비롯해 척까지도 생체실험의 희생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테디에게 있어서 과거는 현재이고, 현재는 과거라는 사실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환상적인 장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것은 테디의 오늘을 규정하는 지울 수 없는 악몽인 반면 과거로부터 벗어나고픈 그의 욕망이 충돌하는 혼돈의 공간입니다. 테디가 그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은 등대에서 관객들은 67번째 인물의 정체에 아연실색하는 한편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주저앉고야 맙니다.

현대 사회의 닫힌 공간 <셔터 아일랜드>
  
영화 말미에 테디가 모든 이를 속이고 전두엽 절제술을 자청하는 장면은 여러 해석을 낳습니다. 분명한 점은 결코 떠날 수 없는 <셔터 아일랜드>가 사실은 트라우마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는 테디 자신을 가리킨다는 점입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마치 테이프를 돌리듯 처음과 끝을 반복하던 테디에게 셔터 아일랜드는 잃어버린 아내이고 자식이자 그 모든 사랑의 결정체니까요.

비록 그 사랑이 원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간직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수술실로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고통으로부터 구원이 아니라 고통과 완전한 일치를 위한 테디의 속죄의식이자 자유의지입니다.

고립된 섬에서 펼쳐진 한 편의 집단치료기는 통제와 단절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뒤편에서 소외된 인간 군상의 집단적 광기와 욕망의 축소판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셔터 아일랜드>는 테디의 영혼을 가둔 닫힌 공간이자, 살인자들의 섬으로 초대한 관객들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도 언제든지 셔터 아일랜드처럼 닫힌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셔터 아일랜드 살인자들의 섬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마틴 스콜세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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