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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케이블방송을 돌려보면 재난이나 재앙을 다룬 영화가 자주 보인다. 아무래도 2012 지구 종말이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기에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는 지구 종말이나 '휴거'에도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인간이란 재밌는 동물이다. 구태여 '지구 종말'을 상상하려고 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트라우마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탄생을 모르니 종말을 불안해하는 것이리라.

인류의 두려움은 '종말'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인류를 두렵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오랫동안 회자되는 소설들을 보면 어떤 것이 공포를 조장하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대표적인 책이 바로 조지 오웰의 <1984>가 아닐까?

<1984>겉표지지
 <1984>겉표지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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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는 독재의 화신 '빅 브라더'를 다루고 있다. 빅 브라더는 무엇인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모든 것을 감시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는 절대적인 존재다. 누가 빅 브라더를 상대할 수 있는가? 없다. 역사를 지배하는 빅 브라더는 역사를 입맛에 맞게 요리하고 자료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왜곡해서 써먹을 수 있다.

<1984>는 빅 브라더에 대항해 인간 정신을 지키려는 '지구 최후의 남자'의 분투가 주요 줄거리인데 어찌된 일인지 '남자'보다 '빅 브라더'가 더 자주, 오랫동안 회자된다. 왜 그럴까? 빅 브라더가 인간의 두려움을 상징하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조지 오웰이 당초 이 소설을 썼던 배경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알려졌다시피 구소련에 대한 비판의식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소설은 '절대권력'의 두려움을 상기시켜주는 소설로 상징된다.

오늘날, <1984>는 고전 중에 고전으로 불리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글을 잘 썼기 때문일까. 그런 이유로 사랑받는 책은 너무나도 많다. <1984>가 유독 그렇게 사랑받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권력의 비대화, 사람들은 그것을 그리 두려워했기에 책을 보며 안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빅>겉표지
 <유빅>겉표지
ⓒ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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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을 사로잡고 있다. SF소설로 <1984>와 함께 'TIME'이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에 뽑힌 필립 K. 딕의 <유빅>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빅>은 미래 세계를 다룬다. 우주를 다녀올 수 있는, 죽음마저 연장할 수 있는, 과거까지 넘나들 수 있는 첨단 미래가 배경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기계의 주인으로 행세하며 행복해하고 있을까?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아니다. '실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유빅>은 상상력이 뛰어난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묻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긴 인간은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것인가?, 사생활마저 지배당하는 때에 '나'는 무엇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가?,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는 '나'는 진정 살아 있는 것인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데 그 질문들은 인간의 또 다른 두려움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문명을 첨단으로 만들지만, 그것이 어떻게 폭주될지 몰라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면서도 그것이 곧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예컨대, 핵폭탄이 그렇다. 핵폭탄뿐만 아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문명은 문명을 한순간에 파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두려워한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로드>겉표지
 <로드>겉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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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문명이 어떻게 파괴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맥 매카시는 그것에 대해 침묵한다. 알아서 상상하라는 것 같다. <로드>는 그저 보여줄 뿐이다. 문명이 파괴됐을 때,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로드>는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여정을 그린 소설인데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참혹하다. 문명이 파괴되자 '정의'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가 실종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법자가 됐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을 먹기까지 한다. 심지어 먹을 것을 저장하는 것처럼 사람을 사육하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소설은 아들을 '메시아'적으로 그리며 희망의 가능성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소설이 그리는 인간의 두려움은 유난히 어둡다. 사람들이 우려하듯, 어느 전쟁광 정치인들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설이다>겉표지
 <나는 전설이다>겉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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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두려움은 돌연변이나 질병적인 것을 향해서도 만만치 않게 뻗어있다. 예컨대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가 그것을 보여준다.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 사람들이 흡혈귀로 변해 동족을 공격한다는 <나는 전설이다>는 '돌연변이'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뱀파이어'를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왜 그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난쟁이나 기형아 등 인간은 자신과 같지 않은 것을 혐오한다. 동시에 그것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백인이 흑인을 바라볼 때의 심리와 비슷하다. 백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흑인이 백인 여자를 공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돌연변이도 그런 의미로 두려움의 대상이 된 건 아닐까?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소설들이 '희망'을 준다는 사실이다. 아직 실현되는 않은 디스토피아나 두려움을 보여주기에, 그래서 경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보고 또 보고, 이야기하고 또 논하는 것일 게다. '예언이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키득키득 거리며 이야기를 한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서점의 어느 곳에서 두려움과 맞서고 있는 셈이다.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2005)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2008)


1984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2003)


유빅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폴라북스(현대문학)(2012)


태그:#재앙소설, #1984, #유빅, #로드, #나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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