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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바위 아래 조용히 숨어있는 에르미타.
▲ tella 커다란 바위 아래 조용히 숨어있는 에르미타.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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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수도자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들을 꼼꼼하게 관찰하곤 한다. 왜 그들은 고행의 수도자의 길을 택해야만 했을까? 어쩌면 그들에겐 그것이 고행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차원 높은 쾌락과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일반 사람들이 내는 욕심이나 과시욕, 허영들은 그들에겐 그저 차원 낮은 아둔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미타(은둔지)를 지었던 수도자들을 나는 막대한 야심을 품었던 자들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세상의 밖으로 행하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 홀로 사색을 즐기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본성을 욕심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그들이 지어놓은 에르미타들이 너무도 야심 차기 때문이다.

 가파른 절벽을 기둥 삼아 서 있는 에르미타.
▲ san pantaleon de losa 가파른 절벽을 기둥 삼아 서 있는 에르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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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케니언 사이에 서있는 작은 에르미타.
▲ Frutos de Duraton 거대한 케니언 사이에 서있는 작은 에르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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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하늘과 구름이 손에 잡히는 절벽의 작은 에르미타, 깊은 산 속 동굴을 파헤쳐가며 지은 에르미타, 강물을 관조하는 계곡의 에르미타 등 수많은 에르미타들이 아찔한 절경을 바탕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수월치 않으며 어떤 때는 예상치 못한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데 하물며 자동차조차 없었던 중세시대의 길은 오죽했을까? 더구나 그들은 그 험하고 먼 길에 돌을 나르고 집을 지어 지붕을 얹고 로마네스크 풍의 조각까지 소박하게 새겨 넣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급할 것이 없었겠지, 지금 시대의 신속함이란 당시 그들에겐 유토피아의 경지였거나 아니면 상상조차 못한 일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약간의 불편함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들을 먼 미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견딜 수가 있었을까?'라고 의아해할지도 몰라. 에르미타를 지은 중세인들에게 그것은 한 삶의 패턴이며 문명이었을 거야."

아름다운 자연을 독점하고자 했던 야심의 흔적

산속 동굴을 파서 만든 에르미타.
▲ ermitario de san pedro arges 산속 동굴을 파서 만든 에르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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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의 구름들을 기다리며.
 에르미타의 구름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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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에게도 에르미타를 짓고 또 찾아가는 일은 고역 중 고역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지울 수가 없었다. 그 고역을 견뎌가며 이 아찔한 절경을 향해 자재들을 운반했을 그들을 생각하니 상당한 야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야심들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신의 고행으로 인해 성취감을 얻었을 것이며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도 스스로 행복했을 것이다. 그들에겐 무한한 자유와 아무도 갖지 않은 특별한 삶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독점하고자 했던 야심은 지금 시대에조차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에르미타의 구름들을 기다리며.
 에르미타의 구름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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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에르미타.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에르미타.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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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건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에르미타의 재료들은 그 지방의 흙과 돌로 지어져 자연경관을 해침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경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빨간 흙이 많은 산속의 에르미타는 빨갛고, 검은 돌이 많은 산속의 에르미타는 검은 돌로 지어져 있었다.

자연을 향한 야심을 부려가며 에르미타를 지었던 수도자들은 자연이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을 포기해도 자연만큼은 그들이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호사스러움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계곡과 절벽 위에 보일 듯 말 듯 지어진 작고 초라한 에르미타의 모습들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떤 때는 가장 좋은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는 한 광고 카피 문구가 갑자기 떠오른다.

우리는 어떤 유토피아를 또다시 꿈꾸는가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에르미타들.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에르미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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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에르미타 들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에르미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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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시대 때의 문헌들과 그림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와 인터넷, 전화기, 항공기 그리고 우주선 등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매우 근접하게 묘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것들을 가리켜 유토피아라고 불렀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이 세대가 그들에겐 유토피아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유토피아를 또다시 꿈꾸고 있는가? 우리는 마음 속에 유토피아를 간직하고 있기는 한가?라는 의문을 제시해 본다. 지금 우리 세대는 또다시 자연으로 귀속하고 자연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정신적인 유토피아로 다시 먼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향해 경배하고 그 자연의 품 속에 완전히 파묻히려 하던 에르미타의 야심 찬 수도자들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자연의 섭리를 마음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꼭 필요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은경 기자는 지난 2000~2005년 프랑스 파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최근 경상남도 외도 전시 기획을 마치고 유럽을 여행 중입니다. 현재 스페인에 머물고 있으며, 미술, 건축, 여행 등 유럽 문화와 관련된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태그:#에르미타, #수도사, #유토피아, #야심,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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