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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얼마만 일까요? 그게 무슨 대수일까요? 대충 10년쯤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곳 월령도 그새 많이 바뀌었네요. 10년 세월이 고스란히 멈추어 있길 바란다면 욕심이겠지요.

그런데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아무래도 기억 못 하실 거예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렴 어떤가요? 짝사랑하듯이 가슴에 품고만 있어도 저는 가슴이 떨리는 걸요.

집에 들어서 보니 조금 바뀐 것 말고는 옛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요. 바뀐 것은 대문을 없애고 그 자리에 정낭을 걸쳐두었고, 한켠에 쉼터를 만들어 놓은 것 정도네요. 아, 그리고 떡하니 이름이 적힌 문패도 새로 생겼네요.

그 아래 놓인 슬리퍼는 할머니 전용 신발이었어요. 그래요. 무더운 여름이었지요. 진나영인지, 진아영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로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촬영을 하던 그때는 바닷바람이 시원했댔지요. 요새 저는 바닷바람이 두렵답니다. 겨울 바람이 매섭기 떄문이지요. 방바닥이 시리네요. 그때도 이런 냉방에서 지내셨나요?

죽게 될 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잊고 가시라고 합니다. 궂은 일, 서룬 일, 기쁜 일 모두 다 내려 놓고 가시라고들 말합니다. 당신의 물건들을 봅니다. 꼬깃꼬깃하게 모아놓았던 것들이 여느 할머니와 다름없습니다. 그 많던 열쇠와 자물쇠도 고스란히 남겨 두셨네요. 이젠 고생스러이 자꾸 잠그고, 확인하고, 다시 뒤돌아보며 확인하는 그런 일은 안하시겠네요. 섣불리 말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상처'를 보았을 거예요.

잔인한 시대에 나서 잔인한 고통을 안기는 총알이 지나갔던, 그 생각하기도 싫었을 공포의 장소에 왜 갔을까요? 한동안 멈추어 머리를 감싸고 숨도 제대로 못쉬던 그 모습을, 함께 했던 누님을 부여잡고 함께 울던 그 모습을 왜 보여주고 말았던가요?

그렇게 해서 오늘, 남은 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누님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할머니께 말했지요.

"할머니, 이제 우린 여기 자주 못 와 마씀."
"경허난, 잘 살아야되어, 알았지 예?"

그리고, 당신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 덕으로 어느젠가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무심히 흘러 오늘에사 겨우 누추한 몸을 이끌고 들러보았습니다.

변하여야겠지요.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끊임없이 변해야 겠지요. 하지만, 왜 그 때도 이 곳에 앉았던 새는 날아 가지 않는 거지요? 할머니를 대신해 이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또 언제 이 곳에 올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풍경처럼 남은 기억은 자주 떠올리렵니다. 부디, 늦었지만 행복하소서.

새
▲ 진아영 댁 새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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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영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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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진

덧붙이는 글 | 제주 월령리에 할머니 생전 사시던 집이 있습니다. 4.3 당시 토벌대가 쏜 총에 턱을 맞아 소통도 힘들고 생활도 힘들게 하신 걸로 압니다.



태그:#제주도, #4.3, #진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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