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석비빔밥
 보석비빔밥
ⓒ imbc

관련사진보기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인어아가씨> 등 막장 논란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을 주로 써왔던 임성한 작가가 출생의 비밀이나 폐륜, 불륜, 복수와 같은 막장 공식을 쏙 뺀(뺐다고 주장하는) 가족드라마 <보석비빔밥>을 선보이고 있다.

<보석비빔밥>에는 임작가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어진 막장코드 즉, 배신, 복수, 불륜, 폐륜, 출생의 비밀과 같은 독한 양념이 빠져 있다. 물론 막장 요인이 사라졌을 뿐 착한 가족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신의 능력보다는 배우자의 능력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루는 수동적 여주인공 궁비취(고나은), 궁루비(소이현)자매와 엄마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마마보이 병훈(윤종화), 지나치게 속물적인 비취의 부모 궁상식(한진희)과 피혜자(한혜숙) 등 막장의 향기가 느껴지는 인물들의 등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격을 무기로 내세웠던 전작들에 비해본다면 불륜과 배신이 등장하지 않는 <보석비빔밥>은 임성한 작품세계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막장=시청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드라마 세계에서 성공이 보장된 막장을 버린다는 것은 시청률 역시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시청률에 따라 울고 웃어야하는 작가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막장코드를 버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그만큼 작가 임성한이 느낀 부담도 적지 않았을 듯싶다.

저조한 시청률에 대한 팬들의 우려를 의식한 때문인지 임성한 작가는 "시청률에 대해 마음을 비웠다"는 솔직한 심정을 <보석비빔밥> 공식 홈페이지에 남기기도 했다. 일부시청자들은 <보석비빔밥>의 부진을 두고 막장 없는 임성한은 앙꼬 없는 찐빵이며 고무줄 없는 팬티라는 비유를 하기도 한다. 막장이 빠지니 임성한 특유의 맛도, 멋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리웠던 임성한의 힘은 막장에서 나왔던 것일까? 임성한에게 막장 없는 성공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유보적이다.

실제로 막장이라는 이유로 사랑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던 그녀의 전작들이 전반적으로 30%대 이상의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해 왔던 것에 비하면 종방을 몇 회 앞둔 최근에 와서야 20%대를 힘겹게 넘어서고 있는 <보석비빔밥>의 성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실패를 운운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다. 서영국(이태곤)의 엄마 이태리(홍유진)가 치매증상을 보이면서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시청률이 지난 2월 7일 방송분인 47회(총 52부작)에서 23.8% 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임성한 특유의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부진 후반대박의 시청률 성향을 보였던 대부분의 전작들을 떠올려보면 이런 추측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보석비빔밥>의 경우 이전과는 달리 이슈를 생산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어 마지막까지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우세한 편인 건 사실이다. 

초반 10%대 후반에 머물던 <보석비빔밥>의 시청률을 20% 대까지 올려놓은 것은 영국 엄마 태리의 치매(알츠하이머) 증상이다. 철없는 막내 딸 하나가 말썽을 부릴 뿐 부러울 것 없었던 부유층 사모님 이태리에게 닥친 치매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치매에 걸린 영국이 엄마 이태리(홍유진)
 치매에 걸린 영국이 엄마 이태리(홍유진)
ⓒ imbc

관련사진보기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을 알고 남편에게 "내 상태가 나빠져 식구들을 괴롭히고 힘들어하면 굶어 죽이거나 춥게해서 저 체온증으로 편하게 죽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태리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에게 "그동안 속 많이 썩혀서 정말 미안하다"며 오열하는 막내딸 끝순은 그동안 큰 감동코드가 없었던 <보석비빔밥>을 눈물로 적시기에 충분했다.

또한 중년치매라는 소재는 드라마 주 시청층인 중년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도 성공했다.

"치매 걸린 끝순이 엄마(이태리) 보니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더라. 나도 자주 깜빡 깜빡하는데 이러다 태리처럼 중년 치매 오는 거 아닌가 걱정돼."
"우리 남편도 드라마 보다가 걱정이 되는지 나보고 검사 한번 해보라더라. 내가 자주 깜빡하잖아. 솔직히 나이 들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다 나도 어느 날 남편 보고 "아저씨 누구세요?", 딸 보고 "언니는 누구야?" 그러는 거 아닌지 겁난다니까."

<보석비빔밥>을 보고 자신에게도 혹시 치매증상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는 중년 아줌마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휴대폰이나 열쇠, 지갑 등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은 너무도 흔해 놀랄 일도 아니거니와 평소에는 잘 기억했던 전화번호나 생일, 기념일 등을 잊는 일은 다반사. 거기다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 답답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보니 이태리 중년치매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보석비빔밥>의 이태리의 경우는 큰 말썽부리지 않는 착한(?) 치매환자에 속한다. 남편과 자식들은 물론 가정부, 간병인에 착한 며느리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보살핌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귀여운(?) 치매환자 태리. 심지어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때문에 딸의 결혼을 반대 했던 피혜자(한혜숙)까지 시집간 딸을 도와주기 위해 안사돈을 돌보겠다고 나서는 판이니 치매환자와 그  주변을 바라보는 임성한 작가의 시선이 이보다 훈훈할 순 없다.

사실 임성한의 착한(?) 변신은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심지어 몇몇 임성한식 막장 코드에 중독된 시청자들은 지금까지도 숨겨둔 불륜이나 배반, 패륜이 꼭 있을 거라며 의심 섞인 기대를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기대(?)처럼 남겨진 몇 회 분량 속에 그런 독한 장면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들게 이루어낸 변신에 오점을 찍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했던 드라마 <보석비빔밥>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는 소위 막장드라마로 성공한 작가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쓰고 있는 임성한 작가가 자신의 주 무기인 막장을 뺀 드라마에서도 전작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작용한 때문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유쾌하고 훈훈한 임성한 식 가족드라마의 탄생은 큰 변신이며 그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시청자 입장에서 임성한의 색다른 작품세계가 될 <보석비빔밥>에 큰 기대를 건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 마니아의 입장에서 임성한과 같은 재능 있는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는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인기작가라는 그녀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시중에 공공연하게 떠도는 '임성한=막장'이라는 한계 안에 스스로 갇히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보석비빔밥>은 비록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언정 작가 개인에게는 절반의 성공을 가져다 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때문에 <보석비빔밥>을 통해 일정한 변신을 맛 본 임성한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태그:#보석비빔밥, #임성한, #막장드라마, #가족드라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