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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재건'
'아이티를 위한 마셜 플랜'

갑자기 언론에 이런 문구들이 일제히 등장한다. 20만 명이 사망한 엄청난 대지진으로 국가가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아이티를 위해서 국제 사회가 재건 계획에 나섰다는 소식이 지난 1월 20일 전후로 주요 매체들에 등장했다. 언뜻 보기에는 지구촌에 아직도 양심은 살아있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훈훈한 소식일 테다. 그런데 필자, 무척이나 불편하다.

'또 주요 외신들의 보도를 번역했겠군.'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강진으로 커다란 피해가 발생되자 아이티 주민들이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강진으로 커다란 피해가 발생되자 아이티 주민들이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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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 국내 언론사의 국제 소식은 연합뉴스를 인용하거나 외신을 번역하고 재구성하는 것들이다. 간혹 해당 언론사의 특파원이 직접 취재를 통해 소식을 전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도 주로 미국이나 일본, 중국과 같은 경우에나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번역하고 인용하는 외신들이 대부분 미국이나 서방의 주요 언론에 국한되다보니 국내 언론사들의 국제 뉴스는 천편일률이다. 아이티 재건이니, 마셜 플랜이니 하는 얘기가 일제히 국내 언론사의 국제 뉴스로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 때문에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했던 것은 아이티 재건이라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이나 서방의 외신에서 동시에 떠들어대는 '아이티 재건', '아이티를 위한 마셜 플랜'의 속셈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속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오미 클라인의 저서 <쇼크 독트린>의 내용을 좀 빌려와야 할 것 같다.

미국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예

"우리는 마침내 뉴올리언스의 공공구역을 깨끗이 정화했습니다. 우리는 못 해냈던 일을 신이 해내셨지요." - 미국 공화당원 리처드 베이커

"우리는 백지상태에서 새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큰 기회를 잡았고요."
- 개발업자 조셉 카니자로

"루이지애나의 교육 개혁가들이 수년 동안 못 했던 것을 카트리나가 단 하루 만에 해냈다."
- 미국기업연구소

2005년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눈물을 쏟고 있을 때, 미친놈도 감히 하기 힘든 발언을 용감하게 한 사람들은 저명한 미국의 보수 정치인, 자본가, 보수 싱크탱크 들이다. 왜 이들은 카트리나를 찬양하는가?

<쇼크 독트린>에 의하면 뉴올리언스는 다음과 같이 '재건'되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전에 123개였던 공립학교는 이제는 고작 4개뿐이다. 반면에 교육 민영화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차터 스쿨은 7개에서 31개로 늘어났다. 뉴올리언스 지역의 교사들은 막강한 노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노조계약은 사라지고 노조원 4700명은 모두 해고되었다.

케니언(Kenyon)이라는 회사가 집이나 거리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 때문에 일반 구호직원이나 장의사들은 시체를 건드릴 수 없었다. 케니언의 상업적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국가에 희생자 1명당 1만 2500달러를 청구했다. 그러나 많은 시체들이 신원파악도 안 된 상태로 방치되었고, 수해 후 일 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부패한 시체들이 다락방 같은 데서 발견되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일으킨 재난은, 그리고 소위 뉴올리언스의 '재건'은 어떤 사람에게는 돈벌이의 기회가 되었다. 교육이 민영화되고 구호자금이 눈먼 돈처럼 민간 기업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뉴올리언스 주의 공공기반은 파괴되고 많은 것들이 민영화라는 명목으로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카트리나다. 그들이 카트리나를 좋아할 수밖에.

스리랑카 쓰나미의 예

2004년 12월 26일, 파괴적인 쓰나미는 25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250만 명의 재해민을 낳았다.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국가인 스리랑카의 '재건'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해안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하던 어민들은 '재건'을 이유로 전부 강제로 이주되었다. 어민들이 살던 곳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고급 호텔과 리조트들이 들어섰다. 물론 외국, 특히 미국 자본의 힘으로 말이다. 사실 원래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주민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다가 쓰나미 한 방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된 것이다.

해일이 몰려온 지 4일 만에 스리랑카 정부는 국민들이 반대했던 상수도 민영화 관련 법안을 추진했다. '그들'이 쓰나미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스리랑카 전국어민연대운동 회장인 허먼 쿠마라는 '재건'을 두 번째 쓰나미라고 칭하며 기업들을 위한 세계화라고 표현한다.

구구절절 사례를 들어서 설명할 필요는 없기에 <쇼크 독트린>에 나온 다양한 예 중에 두 가지만을 언급한 것이다.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스리랑카의 쓰나미, 그리고 지금 아이티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났다. 미국과 서방의 제국주의 독점자본 입장에서는 지진이라고 하는 '고마운' 재난 덕분에 또 하나의 급매물이 나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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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목의 국제 뉴스들이 연이어 쏟아진다. 지진 덕분에 사회의 모든 분야가 파괴되었고, 상하수도, 전력, 건물신축, 정부청사건축, 통신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급매물로 나왔다. 게다가 아이티의 정부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이렇게 공공부문들이 기업들, 그것도 외국 기업들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다름 아닌 대지진이다.

뉴올리언스에서 카트리나 이후 공교육이 무너지고 교육을 돈벌이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학교가 넘어간 것처럼, 스리랑카에서 쓰나미 이후 현지의 어민들이 강제로 쫓겨나고 외국인을 위한 호화 관광시설이 들어서는 것처럼 아이티에서 대지진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쉽게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 곳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도 많지 않을까? 미국을 비롯한 소위 공여국 국가들은 자신들의 먹을 것을 지키기 위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너도나도 군대를 파견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미국은 항공모함을 동원해서 공수부대, 해병대 포함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파견했고, 최근에 추가로 수천 명을 증파하기도 했다. 브라질도 아이티 주둔 병력을 현재의 2배인 2600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란다. 이런 인원들은 분명 단순히 구호활동에 필요한 적정 수준의 병력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미국의 대규모 파병에 중남미 국가들은 하나같이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아이티에 필요한 것은 총이 아니라 의사라며 미국이 지진 참사를 이용해 아이티를 점령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쿠바의 카스트로 의장과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도 하나같이 미국의 파병이 아이티를 점령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원래 먹을 것이 많은 곳에는 파리가 많이 꼬이기 마련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도 아이티 파병을 추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티 파병과 재건 특수라는 단어가 하나로 겹쳐져 보이는 것이 필자만의 착시현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가 아이티를 지원하는 방식은 그래서 돋보인다. 베네수엘라는 아이티의 부채 2억9500만 달러를 탕감해 주기로 했다. 이는 아이티의 대외부채 10억 달러의 30%에 달하는 금액이다. 또한 베네수엘라는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티에 아무런 단서도 없이 석유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오히려 차베스는 "아이티는 베네수엘라에 빚이 없지만 베네수엘라는 아이티에 역사적으로 빚이 있다"면서 19세기 베네수엘라의 독립운동에 도움을 줬던 아이티에 감사의 마음을 표명했다.

한편, 대지진으로 급하게 나온 모든 매물을 공평하게(?) 나눠먹기 위한 국제회의가 지난 1월 25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아이티 재건을 위한 국제 공여국 회의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열렸다. 주요 공여국이면서도 미국 병력 배치에 대해 비난한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 볼리비아가 이 회의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눠 먹는 데에 방해가 되는 세력은 미리 차단하겠다는 것 외에는 어떤 다른 의도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아이티에게 필요한 것은 '재건'을 빙자한 군사적 경제적 침략 행위가 아니다. 참담한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아이티가 진정으로 재건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이티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두 발로 서고 두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도움이라도 것도 결국에는 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지원처럼 말이다.

아이티의 지독한 가난은 외세의 지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지배 하에서 엄청난 수탈을 당했던 아이티는 독립을 하면서도, 프랑스의 아이티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엄청난 거금을 빚졌다. 프랑스가 보상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말이다. 한편 미국은 1957년부터 1986년까지 아이티를 지배한 뒤발리에 가문의 독재 정권을 지원했다. 이 기간에 아이티의 부채는 17.5배 증가했으며, 뒤발리에 가문은 엄청난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아이티의 외채를 일부 탕감해 준다는 조건으로 농업 보조금 철폐, 무료 급식 중단 등을 포함한 신자유주의식 경제를 강요했다. 그리고 아이티 농업은 붕괴했다. 이전에는 식량을 자급하던 아이티는 순식간에 쌀 생산량의 75%를 미국쌀에 의존하는 국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외세들은 대지진을 빌미로 '재건'이라는 명목 하에 아이티를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로 만들려 하고 있다.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다면 묻고 싶다. 아이티 국민들은 도대체 어떤 원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고통스럽고 기구한 운명에 놓였냐고 말이다. 재난마저도 돈벌이와 침략의 기회로 삼는 이놈의 자본주의 세상,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태그:#아이티, #대지진,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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