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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다. 부고다. 년 전에 고시원을 나간 뒤로 소식이 끊겼던 후배 하나가 죽음으로 돌아왔단다. 사인은 자살. 그동안 어디 무슨 절간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와서 음독을 했던 모양이다. 집을 비울 형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형편이 된다 해도 불참, 불참 소리가 먼저 나오는 초상이다. 슬픔을, 위로를 함부로 남용할 나이도 이젠 지났다는 독한 마음이 신발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삼 년 전 가을이었다. 들어볼 만한 학술대회가 있다 해서 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나갔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만났다. 그것도 제가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데까지 택시비를 들여가며 찾아가서 만났다. 십 년도 훨씬 넘었다. 고시공부를 한다고 식구들은 물론 친척이며 아는 사람 모두를 난감하게 한 지가, 십 년이 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인 수치까지는 모르겠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그러나 그 형형함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예전의 그것이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영롱했다면, 고시공부에 닳고 닳은 뒤의 그것은 이제 감당 못할 피로와 욕망이 엉켜 붙어 씨름을 하는 형국이었다. 날카롭되 서늘하지가 않고 질척거렸다. 그런 눈빛으로 그는 말하고 있었다. 판, 검사는 이제 어렵고, 로펌 같은 데를 생각한다고, 아직 합격도 하지 않은, 앞으로도 합격이 된다는 보장 또한 그 어디에도 없는 사시를 놓고 그는 그렇게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들어볼 만한 학술대회' 일정이 끝나서 저녁에는 무슨 미국행 사기를 당했다고 하는 다른 후배를 만났다. 미국으로 가서 살고 싶었단다. 그런데 비자가 나오지를 않아서, 미국비자 전문 브로커를 만나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바친 게 물경 칠천 만원이라고, 있는 돈은 알겠는데 없는 돈이란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는 채로 나는 그가 일방적으로 쏟아놓는 비분강개를 머나먼 나라의 얘기처럼 그저 듣고나 있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라도 그나마 든 것은 훨씬 나중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저 얼른 헤어지고만 싶었다. 술도 겨우 소주 세 잔이나 털어 넣었을까 싶은데 엄청 취해 버려서 고개를 들고 있을 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자기 집으로 가서 자자고 했지만 내키지가 않았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그의 손아귀에서 탈출하고자 두 번, 세 번, 달리는 택시의 문을 열어 운전기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등으로 거듭 시도를 한 끝에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

얼마를 걷다가 천변공원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려다 보니 앞에는 지은 지 삼십 년이 다 된 허름한 오층 아파트 단지요, 뒤에는 그냥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휘황찬란한 불빛의 타워팰리스였다. 그것 참, 내가 왜 이런 구도 속으로 들어온 것이지, 어쩌고 혼잣말을 하다가 의자에 앉은 채로 설핏 잠이 들었던가 어쨌던가, 새벽 운동을 나온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뜨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미국행 비자 사기를 당했다는 그 후배와 아침에 다시 만나 어디를 가기로 했지만, 그 약속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전철역을 찾아 새벽 거리를 헤매듯이 걸었다. 원래 이박 삼일 예정이었던 서울 나들이를 나는 그렇게 무박 이일로 끝내자고, 전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그냥 내려가자고 그 순간에 결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헤매듯이 걷고 있노라니 문득 이모할머니 생각이 났다.

 "가슴 좀 쫙 펴라 이놈아. 아무도 가슴 편 사람은 죽이지 못한다."
툭하면 그런 말씀으로 나를 쩔쩔매게 하시던 이모할머니. 그 이모할머니가 내게 일종의 '쥐약'으로 다가온 것은 내 나이 스무 살 즈음이었다. 그 해에 나는 무슨 별다른 생각도 없이 공무원 시험을 보았고, 그리고 합격을 했다. 그 합격은 마치 길에서 주워든 찢어진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 같아서 여기저기 자랑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모할머니에게 걸렸다.

 "시험이 뭐더냐?"
 "예?"
 "무슨 문제를 어떻게 풀었냐고 이놈아."

이모할머니께서는 참으로 뜻밖의 질문을 하고 있었다. 농담 같지도 않았다. 그 위엄이 어찌나 진지한지 나는 벌써 주눅이 들어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법학개론 중에서 몇 개, 국사 과목에서 몇 개, 그렇게 주섬주섬 우물쭈물 주워섬기고 있었을 것이다.

 "겨우 고따위 것을 문제라고 풀어놓고 지금 그렇게 세상이라도 얻은 듯이 헤헤거리고 다닌단 말이냐?"
 "예?"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가슴에 품고 다니며 풀어야 할 문제는 세 가지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왜 안 되는지, 사람이 사람의 것을 훔쳐서는 왜 또 안 되는 것인지, 사람이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이 세 가지 문제만 풀면 되는 거야."

이모할머니의 그 말씀이야말로 사실은 완전히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무지 억울했다.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 단 한 마디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순식간에 엄청 작아져 버렸다는 느낌이었고, 초라해져 버렸다는 느낌이었고, 지은 죄도 없건만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 나이에 이놈아. 네 손으로 네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해야지.  남이 지어놓은 집으로 꾸물꾸물 기어 들어갈 생각이나 해서야 쓰겠느냐. 네가 그런 비굴한 생각이나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은 네 등을 칠 것이다. 개를 봐라. 씩씩하고 당당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짖으면서도 꼬리를 내리고 뒤로 물러서면서 짖지 않더냐. 반면에 겁을 먹고 눈치를 보는 어린애나 꼬부랑 노인에게는 금방 물어뜯을 듯 달려들면서 짖지. 어떠냐. 내 말이 틀렸냐? 야속한 거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더라고, 서울의 새벽 거리에서 문득, 불현듯 떠올린 이모할머니의 그 말씀이 그렇게도 고맙고, 반갑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도 고맙고 반갑고 따뜻한 그 말씀을 고시원의 그 후배에게 선물로 전해야겠다 생각하고 공중전화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 공중전화, 그러자 애초의 생각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아, 다행이다. 내가 만일 공중전화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고시원의 후배에게 전화를 해서 이모할머니의 오래된 그 말씀을 선물이랍시고 주절거렸다면, 그는 몹시 기분이 나빠서 그날 하루 내내 공부를 못했을 것 같았다. 근거는 없지만,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말을 못한 것이 못내 섭섭했다.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한 채로 어디를 어떻게 걸어서 버스에 몸을 실었는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집에 와 있었고, 그리고 배가 고팠다. 오래 전, 통일호 기차를 타고 내려올 때는 보통 열세 시간이 걸리던 고향이,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 이후 네 시간여로 줄었다. 이 줄어듦 만큼의 시간이 어떤 때는 인간 생명의 연장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생명이 그만큼 줄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어쨌든 하나의 생각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는, 그런 생각을 삼 년 전의 그 괴로운 가을날에 잠깐 했었더랬다.

그런데 그는 왜 죽음을 결심했을까. 아니다. 이런 질문은 내가 어느 날 죽고 싶어진다면, 그때나 새겨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한 가지만은 알겠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기보다, 거품 같은 욕망에 휩싸여서 허우적거리느라 사랑을 실천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나처럼 고마운 이모할머니 같은 분을 갖지도 못했다.

어쨌든 그는 이제 갔다. 가 버렸다. 그가 만일 악령이 된다면, 내게 복수를 하러 오겠지. 반면에 죽어서나마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어느 날 꿈에서라도 내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직접 참여 형식의 조문보다는 이 한 편의 부적 같은 '글나부랭이'로 그가 사랑했던 헛된 권력에의 의지를, 그 욕망을 추모한다.


태그:#헛된욕망, #자기사랑, #헛된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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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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