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을 5점차(15-20)로 뒤진 상태에서 출발한 우리 선수들은 그래도 여느 때처럼 훌륭한 뒷심을 발휘하며 멋진 뒤집기 작품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주전 선수들의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고 새내기들의 몸놀림은 기존 선수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재영(대구시청)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17일 밤 중국 쑤저우 스포츠센터에서 벌어진 2009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덴마크와의 5, 6위 결정전에서 31-33으로 아쉽게 패하며 지난 대회(2007년)와 마찬가지로 6위로 끝내고 말았다.

후반전의 그녀들

우리 선수들은 이번 대회 예선 라운드부터 마지막 순위 결정전까지 모두 아홉 경기를 뛰며 291골을 터뜨렸다. 카자흐스탄이나 아르헨티나라는 약체와의 경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도 높은 자료는 아니지만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그 득점 분포를 나누어보면 후반전에 터뜨린 골이 아홉 개나 더 많다.

이것은 여자 선수들의 일반적인 체력을 감안할 때 결코 가볍게 덮어둘 수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까다로운 개최국 중국과의 경기를 포함하여 유럽의 강팀 다섯 나라와 맞대결을 펼친 것을 감안할 때 후반전에만 150골(경기당 평균 16.66골)을 터뜨린 것은 그것만으로도 고무적인 결과다.

특히, 우리 선수들은 에스파냐와의 예선 라운드 마지막 경기부터 덴마크와의 마지막 순위 결정전까지 모두 다섯 경기를 유럽의 강팀들과 붙었는데 모든 경기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접전을 펼쳤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승 2무 2패라는 결과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매 경기 후반전마다 끈질긴 뒷심을 발휘한 것은 분명히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두 골(13-15) 뒤진 상태에서 후반전을 시작하여 28-27이라는 짜릿한 승리를 거둔 바 있는 노르웨이와의 메인 라운드 첫 경기(12월 12일)도 인상적이었지만 여섯 골 차이(11-17)를 후반전에 따라붙어서 28-28로 경기를 끝낸 헝가리와의 두 번째 경기(12월 13일)는 정말로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전반전의 점수 관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충분히 대등한 경기를 벌이고도 어이없는 패스 실수나 무리한 경기 운영(공격자 반칙, 오버 스탭 반칙 등)으로 공격권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후반전 아홉 골의 차이, 너무 멀어져

이러한 흐름은 덴마크와의 마지막 5, 6위 결정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우리 선수들은 피벗 플레이어 김차연의 1-1 동점골 이후 7분이 흘러가는 동안 추가골을 터뜨리지 못했다.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이동하는 덴마크 선수들의 조직력이 훌륭했지만 수비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덴마크는 점수차를 무려 7-1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힘겹게 5점차(15-20)로 전반전을 끝낸 이재영 감독은 후반전 대반전을 꾀하기 위해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르더라도 수비에 모험을 걸 수밖에 없었다. 결코 쉽지 않은 1:1 대인 방어 지시를 내린 것.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수비 전술이었다.

하지만 공격에서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노련한 우선희가 서 있는 오른쪽 날개가 시원스럽게 열리지 않았고 믿었던 피벗 김차연의 노마크 바운드 슛도 어이없게 골문을 넘어가고 말았다.

이 때문에 우리 선수들은 39분경에 18-27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점수차를 경험해야 했다. 후반전도 벌써 중반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9점이라는 점수는 결코 쉽게 좁힐 수 없는 격차였다. '역부족'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래도 믿을 선수는 부동의 센터백으로 자리를 잡은 김온아였다. 우리 팀으로서는 5연속 득점까지 올리며 23-29로 따라붙기 시작한 것. 이 장면과 동시에 덴마크 선수들은 두 선수가 20초 간격을 두고 연거푸 2분 퇴장의 징계를 받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이 절호의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김온아의 7m 던지기 골 하나만 나왔을 뿐 오히려 실점까지 하는 바람에 따라붙기가 더 어려워지고 말았다.

마지막 7분 정도를 남겨놓고 베테랑 우선희의 속공과 김온아의 재치있는 스텝슛이 덴마크의 그물을 흔들며 2점차(29-31)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덴마크의 조직력 뛰어난 패스 플레이 앞에서는 우리 선수들의 강철 체력도 소용이 없었다. 체력 말고도 우리 선수들이 넘어야 할 산이 바로 '팀 플레이'와 '기술적인 우위'였던 것이다.

90초를 남겨놓고 김온아가 급하게 던진 공이 상대 문지기에게 막히자 우리 선수들도 더이상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깨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유럽 팀과의 맞대결에서 두 차례의 무승부와 짜릿한 1점차 결과를 냈던 지난 경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뿐이었다. 그래도 지난 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쉽게 패했던 노르웨이를 메인 라운드 첫 경기에서 28-27로 이길 때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덧붙이는 글 ※ 2009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5,6위전 결과, 17일 쑤저우

★ 한국 31-33(전반 15-20) 덴마크

◎ 한국 선수들 주요 기록
문지기 이민희 선방 10개/슛 34개(방어율 29%), 주희 선방 2개/슛 11개(방어율 18%)

이은비 2득점, 문필희 3득점, 김온아 9득점, 정지해 5득점, 남현화 1득점, 김차연 5득점, 우선희 3득점, 권한나 2득점, 이선미 1득점

◇ 순위결정전 결과
★ 11, 12위전 앙골라 26-25 중국
★ 9, 10위전 헝가리 41-25 오스트리아
★ 7, 8위전 독일 35-25 루마니아

◇ 준결승 일정(18일 / 장소 : 난징)
☆ 19:30 프랑스 - 에스파냐
☆ 22:15 노르웨이 - 러시아

◇ 3, 4위전 / 결승전(20일 / 장소 : 난징)

◆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역대 한국 성적 정리
1982년 6위
1986년 11위
1990년 11위
1993년 11위
1995년 금메달
1997년 5위
1999년 9위
2001년 15위
2003년 동메달
2005년 8위
2007년 6위
2009년 6위
김온아 문필희 우선희 여자핸드볼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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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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