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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연속 스테디셀러?

혼자서 출판사를 꾸려가는 1인출판이다 보니 직접 매장에 나가 매장 MD를 만나는 영업 활동은 거의 젬병이다.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늘 반성하지만 혼자서 편집, 기획일 하면서 영업까지 하기는 쉽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그래서 신간이 나온 직후 각 서점 MD들 만나고 난 다음에는 온라인에서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책 소개하는 것을 주요 마케팅 활동이라고 생각하며 출판사를 꾸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종종 온라인 서점의 독자 리뷰를 체크하는 정도(쓰고 보니 너무 아마추어 같아 부끄럽다).

그런데 며칠 전 국내 최대 서점의 독자 리뷰를 살펴보러 갔는데 3년 전 출판사를 차리고 처음으로 냈던 책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리디아히비> 소개 밑에 이런 문장이 눈에 띄었다. '3년 연속 스테디셀러' 순간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뭐가 잘못됐나 보다' 생각했다. 스테디셀러, 그거 아무 책에나 붙는 단어가 아니지 않는가. 서점 사이트의 일시적인 시스템 오류인가?

책 제목 밑에 스테디셀러라는 단어가 보인다.
 책 제목 밑에 스테디셀러라는 단어가 보인다.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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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잘못된 것을 확인하러' 클릭하고 들어가니 이런 세상에 진짜로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가 3년 연속 스테디셀러 목록에 올라 있었다. 대체로 스테디셀러는 베스트셀러를 거쳐 만들어진다.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끈 책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온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이 책이 어떻게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도 3년 동안이나.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스테디셀러의 자격이 나와 있었다. 이 서점에서 연간 100권 이상 끊임없이 꾸준히 팔린 도서라고 했다. 스테디셀러의 기준이 '연간 판매량 100권'이라는 게 독서량 부족한 이 나라의 현실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지만 책을 판매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 서점에서만 매년 100권이나 팔렸단 말이야?'하며 스스로 기특했다. 사실 출간된 지 3년이나 된 책이 한 서점에서 1년 동안 100권이나 판매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매일 출판사로 한두 권씩 주문이 들어오는 주문서를 본다면 100권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오류가 아니라 진짜로 우리 출판사의 책이 스테디셀러 목록에 올라있는 것이 사실임이 확인되자 신기하고 기쁜 마음에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갖고 주변의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가 속한 3년 연속 스테디셀러 시, 에세이 부분의 저자들의 면면이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의 법정 스님, <영미시 산책>의 고장영희 선생님, <연탄길2>의 이철환 선생님 등이다. 이야, 이런 분들과 나란히 이름이 올라간 것만도 영광이구나.

출판계도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다

요즘의 사회구조는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고들 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교육 잘 받고 사회에 진출해 부모의 재력과 권력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구조가 정착되어 가고 있으니까. 이변이라고는 없는 참 재미없는 사회 구조가 되어 가고 있는데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크고 부자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로 이어지는 구조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일단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책을 보자. 국내 필자든 국외 필자든 인지도 높은 검증된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몇몇 대형 출판사가 싹쓸이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은 선인세를 줄 수 있으니까 일면 당연한데 특히 최근에는 해외 필자에게 과도한 선인세를 지불해 눈총을 받고 있다.

내가 출판사를 준비할 때만 해도 해외 선인세는 아무리 높아도 1만~2만 달러라고 주워들었다. 그런데 3~4년 사이 최고액은 거의 100배가 되었다. 댄 브라운,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그 주인공인데 도대체 10억이나 저자에게 선인세를 주고 흑자를 내려면 책을 얼마나 팔아야 하는 걸까?

구멍가게 출판사인 나로서는 도저히 계산이 불가능한데 어쨌든 이런 이유로 한국 출판계는 세계 출판계의 봉이 되었고 그 여파인지 최근 계약을 하고 싶어서 연결했던 몇 곳의 해외 출판사에서 우리 출판사가 제시한 선인세를 보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부자들의 추태(이를 추태가 아닌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까?)는 가난한 출판사에도 덩달아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검증된 저자, 검증된 글, 대형 출판사라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은 고급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경력 많은 편집자와 마케터가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으니 사람으로 치면 좋은 집에 태어나 족집게 과외 선생님의 도움으로 특목고를 거쳐 명문대에 진학하는 거랄까? 거기에 비한다면 우리 책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특목고도 자사고도 아닌 공립학교만 줄곧 돌아다닌 격일 것이다.

이런 형국이니 출판계에서도 개천에서 용 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과 공력이 들어갔으니 그 책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일면 옳다. 하지만 올해 기아 타이거즈가 멋진 역전승으로 우승컵을 거머쥐는 이변이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것처럼 어느 분야에서든 이변이 조직을 더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있는 놈이 늘 잘되는 세상은 참 재미없다. 물론 이런 나의 비유가 개성 강한 수많은 출판사를 일반화시켜버린 오류일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적용 가능하니 가난한 출판사의 투정 정도라고 여기고 넘어가 주면 좋겠다.

좋은 독자가 좋은 책을 만든다

다시 돌아가 3년 연속 스테디셀러를 설명하는 문구 중에 '그만큼 독자들의 사랑과 신뢰를 많이 받은 도서'라는 문장이 보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독자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은 책이라고? 뿌듯하다. 출판사를 차리고 첫 책으로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를 준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떠오른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동물이랑 대화를 한다고? 점쟁이야?"
"짐승 좋아하는 사람은 책 안 읽어."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 애니멀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히비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 애니멀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히비
ⓒ 책공장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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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선배들은 걱정이 많았고 너무 앞서지 말고 독자들이 따라갈 수 있는 책을 첫 책으로 내라고 했다. 사실 올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면서 최근에야 익숙한 단어가 되었지 당시에는 굉장히 낯선 단어였다. 점쟁이냐고 물어보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때 내가 믿을 건 독자밖에 없었다. 동물 전문 출판사라는 모토를 내건 만큼 생명에 대한 존중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해 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의 결과가 바로 '3년 연속 스테디셀러'라는 선물 아닐까. 혹자는 굉장한 호들갑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책공장 더불어 같은 가난한 전문 출판사가 1년 동안 한 서점에서 한 종의 책을 100권 이상 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광고, 홍보란 것을 거의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작은 출판사들의 경우 일정 기간 노출하고 적게는 몇 십 만원부터 몇 천 만 원까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온라인 서점이나 포털사이트에 광고를 할 여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책이 나온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홍보가 안 되어서 독자들에게 책이 나온 걸 알리지 못하고 결국 그대로 사장되고, 책 한 권이 실패하고 나면 다음 책을 준비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전해준 이 책이 고맙고 서점의 표현대로 독자들이 없었다면 이 책도 없었을 것이다.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냈던 첫 책이 죽지 않고 살아남자 거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느리지만 다른 곳으로 세지 않고 꾸준히 처음의 생각대로 책을 펴내고 있는 것도 다 독자들 덕이다. 눈 밝은 좋은 독자들 덕.

현재 우리 출판사의 역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가난한 집의 첫째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잘 커서 지 밥벌이를 하자 동생들도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그 길에 좋은 독자들이 지키고 서 있다. 역시 아이들은 부모가 키우는 게 아니고 건강한 공동체가 함께 키우는 거구나.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



태그:#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애니멀커뮤니케이터, #1인출판, #출판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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