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김제동과의 인연은 복잡하다. 그는 내 수업을 듣는 제자이며, 한 살 아래 동생이며,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YB(윤도현밴드)의 전국투어를 연출하고 있던 지난 2003년. 그 시절 김제동은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분위기 메이커, 뭐 우리끼리 하는 말로 바람잡이 역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객들 중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가 무대에 등장하면 여지없이 "잰 또 뭐야?"라는 시선과 냉랭한 분위기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김제동이 일단 입을 열기 시작하면 모든 관객들이 자신들이 YB의 공연을 보러온 것인지 김제동을 보러 온 것인지 잊어버리게 만들곤 했다. 결국 어느 공연에서인가는 윤도현과 스태프들이 그의 입담에 빠져 공연시작 시간도 잊어버리는 황당한 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제동은 대구에서 좀 알 만한 레크레이션 진행자였을 뿐 방송이나 큰 무대의 진행을 볼만큼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윤도현도, 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도, 나도,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재능이 아까웠지만 적잖은 나이와 평범한 외모, 그리고 아무런 연줄도 없는 그가 방송진행자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 자리가 얼마나 오르기 힘든 나무인지 대략은 알고들 있었기에, 쉽사리 그에게 방송으로의 진출을 권하지도 못했었다.
그러한 차에 윤도현은 러브레터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MC가 되었다. 윤도현이 프로그램 MC를 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김제동에게 프로그램의 사전MC를 맡긴 일이었다. 물론 음악방송에 무슨 사전 MC냐며 내켜하지 않는 작가와 피디들을 설득한 것은 윤도현이었고 행여 자존심 상할까 김제동에게는 출연료도 나오는 정식 섭외라 일러두고 매주 출연료를 챙겨 주었던 것은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였다.
김제동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방송프로그램의 MC로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가 바빠지면서 그리고 그가 자신의 소속사를 찾아가면서 비록 그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는 나의 공연에 몇 번씩이나 출연해 주었다. 사실 그 공연들이란 게 대부분 인권콘서트라든지, 시민단체 행사라든지 하는 형편없는 개런티에 이런저런 부담만 있는 것들이었기에 나는 늘 미안해 했다. 하지만 그는, 잘나가는 동생 등쳐먹는 기분 같아 쭈삣거리는 나에게 "전 이런 행사들이 좋아요,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인데 그걸 제가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라고 말해 주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 사회자로 나섰던 까닭에 지난 6월 추모공연 때도 이번 노무현 재단 출범 공연 때도 김제동은 나의 섭외 리스트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섭외하지 못했다. 그를 섭외하지 못했던 이유는 윤도현 때문이었다. 윤도현은 자신은 그 모든 행사에 출연하면서도 그가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보게 하고 싶지 않다며 공연에 나오겠다는 그를 정말 억지로 주저앉혔다. 아마도 방송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하는 김제동이 방송이 아니어도 버틸 수 있는 자신의 처지보다 훨씬 위험해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에게 참으로 할 말이 없다. 그때 나는 그의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당장 그에게서 위안만을 얻고자 했었다. 그가 겪게 될 고생 따위는 생각도 않고 그저 그의 헌신만을 바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김제동은 기어이 공연장까지 찾아와 시키지도 않은 자원봉사를 하면서 공연장을 지켰고 그날 KBS로부터 퇴출되었다.
오늘 그의 소속사 사장인 김영준 다음기획 대표의 글을 읽으며 나 역시 김제동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는 비록 담담하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고 이제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공부도 하겠다지만, 그가 방송과 프로그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리고 그 일을 얼마나 잘 하는 친구인지 너무나 잘 아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그래, 나는 김제동을 보호했어야 했다. 아니 우리들은 김제동을 보호해 주었어야 했다. 이는 그의 사회적 발언을 자제시켰어야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이유로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을 빼앗겼다는 것에 함께 분노하고 그가 그의 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이제 더 이상의 김제동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그의 퇴출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저들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만 김제동뿐 아니라, 김민선과 윤도현과, 신해철을 위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우리의 마음을 다잡으면서 이제껏 그들을 위해 한 것은 없다.
그들의 역할이 아무리 위로를 주는 존재라 해도 우리가 이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들과 함께 하겠다면 저들의 후안무치를 탓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도현이 앨범을 내면 그의 앨범을 사고, 신해철이 공연을 하면 그의 공연에 가고, 김제동이 책을 쓰면 그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분명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어야만, 그래야만, 우리는 그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그의 소속사 대표와 이야기하다가 그의 토크가 주는 감칠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라이브 쇼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것이 공연 형식이 될지, 또 언제부터 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오늘 김제동에 대한 이 뜨거운 관심이 김제동 개인과 우리 모두에게 분명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제 방송이 아닌 현장에서 그를 만나야 할 것이다. 만나되 방송보다 더 뜨거운 반응으로, 스타골든벨 시청률 정도는 너끈하게 제쳐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