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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사고가 나지 않고 두 주인공이 결혼해서 살았다면? 한 눈에 사랑에 빠졌더라도 부부싸움 한 두번쯤 하면서 티격태격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집사람과 가끔 연애기간 중 함께 경험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새삼 애틋해지고는 합니다.

 

결혼하기 전, 저는 봉인사라는 천마산 자락에 위치한 절에 있었습니다. 고시공부하러 들어갔다가 마음공부만 하고 나온 곳인데요. 경기도 금곡 외곽에 있고 마을버스가 있었지만 일찍 끊겨서 걸어서 많이 다녔던 곳입니다.

 

산 속은 도시와는 많이 다릅니다. 특히 해가 짧고 가로등이 없어서 걸을 때는 손전등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달빛에, 달빛도 없으면 별빛(별빛도 밝답니다)에 의존해서 걷고는 했습니다.

 

그때가 8월말 쯤 되어서 아직 더운 때였는데 제가 감기몸살에 걸렸습니다. 집 떠나서 잘 못먹고 거기다 몸까지 아프면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고, 내가 아픈 걸 아무도 모르고 찾아주는 이 하나 없으면 괜실히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렇게 골골대던 저에게 지금의 집사람이 그 산속으로 고맙게도 찾아와주었습니다. "천사가 바로 여기있구나." 감동이었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왜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도착하기도 늦게 도착했지만 시간도 빨리 지나서 밤12시가 넘었고, 늦었지만 택시를 태워보내기 위해서 밤길을 나섰습니다.

아픈데 그냥 있으라고, 혼자 걸어서 읍내까지 가겠다는 뻔한 거짓말을 들으며 옷을 주섬주섬 입었지요.

 

산속생활을 하다보면 두툼한 외투가 필수입니다. 몸도 으실으실하고 해서 외투를 입었고, 집사람도 모기 방지용으로 조금 가벼운 외투를 걸쳐주었죠. 밤에 걷는 산길은 어둡습니다. 불빛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콩깍지의 힘으로 전혀 무서운줄 모르고 읍내를 향해서 타박타박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자동차 전조등이 보였습니다. 겨우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길이었고 한쪽은 계곡이어서 물소리가 콜콜 들리는데 갑자기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선 것입니다. 그러고는 아주 급하게 앞으로 전진, 뒤로 후진하면서 차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있지않습니까? 좁은 길에서 차를 돌리려면 엄청 힘들다는 것.

 

게다가 자칫 잘못해서 뒤로 약간 더 가면 계곡물로 차가 굴러빠질 수도 있어서 위태롭게 보였습니다. 우리는 "저 차 왜 저래?"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산길을 오다보면 흉가가 하나 있습니다. 그 주변에서는 보기 드문 이층집이었는데 여기저기 벽이 뚫려있고, 창문은 깨져있는 집. 거기에 꽤 커다란 음습한 연못이 마당에 자리잡은 집이었고 흉가가 된 지 꽤 오래도록 아무도 찾지 않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서울의 꽤 부잣집이 딸의 요양을 위해서 지었다가 딸이 자살한 집이라고 합니다. 그 흉가를 조금 지나면 영락동산이라는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택시기사들도 밤 10시 좀 넘으면 가기를 꺼려했던, 그런 곳이었죠.

 

거기에 가로등 하나없는 캄캄한 산길! 밤 12시가 넘은 시간! 한 여름인데도 겨울용 외투를 입고 어둠 속 저 편에 조용히 서있는 우리!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치는 범위 끝자락에 있던 우리가 그 차 운전자에게는 아주 희미하게 보였을 것이고.

 

차가 너무 위태롭게 전진, 후진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차에 다가갈 때는 괜히 명랑한 목소리를 크게 냈죠. 차 바로 옆을 지날 때 운전석 유리창이 열렸습니다. 한 5cm정도.

 

아저씨가 길을 묻더군요. 목소리가 많이 떨렸습니다. 순간 "으~~~워~~~웩~~" 할까하는 장난기가 일어났지만 억지로 참고는 아주 별일 아니라는 듯이 친절하게 답해주었습니다.

결국 산길을 잘못 들어서 차 돌릴 곳을 찾아 계속 깜깜한 산길을 들어왔던 그 차는 무사히 차를 돌려서 갔습니다.

 

지금도 아주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집사람하고 웃습니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어둠도 연인에게는 안식인 것 같습니다.


태그:#산길, #밤길, #연인, #귀신,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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