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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환경안전팀 정상익 과장이 'R/O 시설'에서 직접 채취한 '정수'를 들고 있다. 옆에 보이는 사람은 같은 팀 박성호씨.
 아산환경안전팀 정상익 과장이 'R/O 시설'에서 직접 채취한 '정수'를 들고 있다. 옆에 보이는 사람은 같은 팀 박성호씨.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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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연간 1인당 재생 가능 수자원량은 세계 130위 수준이다. 효율적인 물 관리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폐수 배출을 줄이고, 가능한 물을 재활용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모범사례도 있다.

일찍이 현대자동차가 아산공장에 독자적으로 구축한 '폐수 무방류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정화하여 다시 공업용수로 재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하루에 쓰는 물은 약 2천 톤. 산술적으로만 봤을 때, 1년이면 73만 톤, 또 이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1996년이었으니, 이제까지 적어도 수 백만톤의 폐수를 배출하지 않고 자체 정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지난 21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찾아간 것도 그래서였다. 더러운 물이 어떻게 다시 깨끗한 물로 '살아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름 결론을 얻고 싶었다. '살리기와 죽이지 않기', 무엇이 먼저일까.

번쩍거리는 수많은 자동차들, 그래도 폐수 방류구는 없다

YF 쏘나타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YF 쏘나타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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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산공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신차'가 그야말로 공장 곳곳에 즐비하다. 이미 알고는 왔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햇빛에 '번쩍 번쩍'거리는 저 수많은 차들을 만들면서도 폐수를 공장 바깥으로 배출하지 않는다니. 대단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 대단한 일은 모두 7단계로 나뉜다. 오폐수를 모아 비중이 큰 오염물질을 가라앉히는 물리적 처리가 1단계, 그 다음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학적 처리 단계, 이어 화학적 처리 단계 그리고 숯과 모래를 이용한 여과 처리 단계. 여기까지가 통상적인 '오·폐수 처리' 단계다.

폐수를 바깥으로 배출하려면 법적 허용 배출 기준 이하로 만들어야 하니까, '법을 준수하는' 다른 공장들도 갖춰야 하는 설비다. 그러니 5단계부터 '알맹이'다. 이 단계에서 깨끗한 물이 공업용수로 살아나고, 그래도 더러운 '액체 덩어리'들은 나머지 단계에서 '들들 볶여' 고체 덩어리로 폐기된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는 방류구가 없다. 방류구가 없으니 다른 공장들이 으레 갖추는 '유량계'도 당연히 없다. "오직 빗물을 위한 우수로만 있을 뿐"이란 것이 현장을 안내하는 아산환경안전팀 정상익 과장(40)의 설명이다. 이제 본격적인 견학에 나설 차례다.

도장 과정에서 폐수 가장 많아 … '지금'은 3400∼4000μS/cm

도장공정에서 가장 많은 폐수가 발생한다고 한다
 도장공정에서 가장 많은 폐수가 발생한다고 한다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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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도착하니 '폐수 무방류 시스템'의 실제 이름은 '공업용수 정수장'. 그 '1단계'에 해당하는 '폐수 집수조'를 쳐다보니 시커먼 물이 요동친다. 얼마나 더러운 상태일까. 환경안전팀 박성호(28)씨는 "공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지금 상태의 전기 전도도는 3400∼4000μS/cm"라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수자원공사에서 공급하는 공업용수의 전기 전도도(수질을 측정하는 단위의 하나. 물의 오염도가 심할수록 수치가 상승한다)는 130∼150μS/cm라고 한다. 약 30배정도 더러워진 셈인데, 특히 자동차 공장에서는 도장 과정에서 폐수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박씨와 함께 2, 3, 4 단계를 함께 살펴보고, '무방류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수(재이용)시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척 시끄러운 곳이다. 펌프가 돌아가는 소리란다. 게다가 '푹푹 찐다'. "고온의 스팀을 쓰기 때문"이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42개의 길다란 원통들이다. R/O(Reverse Osmosis Systems : 역삼투압장치) 시설이다. 앞서 4단계를 통과한 폐수를 역삼투압을 이용하여 여과막에 통과시켜, 투과수(처리수)와 농축수(오염수)로 분리하는 장비다. 1차 R/O 다시 2차 R/O를 거쳐, 공업용수 공급탱크로 '돌아간다'.

7단계 거치고 나니, 일반 공업용수보다 더 깨끗

무방류 시스템의 '백미', 아산공장 'R/O 시설'
 무방류 시스템의 '백미', 아산공장 'R/O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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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못한 걸쭉한 상태의 폐수는 6단계 '증발 농축기'에서 고온의 스팀을 얻어맞고, 다시 7단계 '진공건조기'에서 공기에 얻어맞아 '슬러지(하수처리 또는 정수 과정에서 생긴 농축물)'로 변신을 완료한다. 이를 폐기물 처리업체가 외부로 실어감으로써 '공업용수 정수과정'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확인이 필요했다. 과연 얼마나 깨끗해졌을까. 놀라운 일이었다. R/O 시설에 찍혀 있는 전기 전도도는 106.8μS/cm. R/O 시설에서 직접 물을 채취해 휴대용 계측기로 재봐도 108μS/cm란 결과가 나타났다. 일반 공업용수보다 훨씬 깨끗한 물로 돌아온 셈이다.

물론 전기 전도도가 수질을 측정하는 절대 단위는 아니다. 박씨는 "공업용수로 재활용하기 위한 물이라, COD(화학적 산소 요구량)나 BOD(생물학적 산소 요구량)보다는 전기 전도도를 중점 지표로 삼고 있다"면서도 "식수용 정수 과정을 거치면, 먹을 수도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깨끗한 수돗물 전기 전도도가 50μS/cm이니, 괜한 '공언'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아산환경안전관리팀이 관리하고 있는 연못, 역시 '공업용수 정수장'을 거친 물이 공급된다. 물만큼 신비로운 물질도 없다 했던가. 잉어들이 무척이나 통통했다.

주민과 갈등 없어… 브랜드 가치 상승, 잠재적 리스크까지 털어

아산공장 무방류시스템 'R/O 시설', 전기 전도도 106.8μS/cm을 가리키고 있다
 아산공장 무방류시스템 'R/O 시설', 전기 전도도 106.8μS/cm을 가리키고 있다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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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붙은 살'은 아니다. 이제까지 무방류 시스템을 위해 투자한 돈은 환경설비 매립장과 소각장까지 포함하면 3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연간 유지비도 만만한 편은 아니다. 정상익 과장은 "감가상각비를 제외한 순수경비만 작년에 16억 원 정도"라며 "그것도 각종 시설을 전력을 덜 소모하는 형태로 개선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성호씨는 "통상적인 오·폐수 처리 시스템을 기본적으로 운영하는데 4억 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가며, 공업용수를 재사용하지 않으면 1년에 8억 원에서 10억 원 정도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를 감안하면 연간 2억 원에서 4억 원 정도를 더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까지 계산에 포함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 과장 말처럼 "주민들이나 공무원과 갈등이 없고, 환경친화기업이란 브랜드 가치 상승"도 보너스로 따라 붙는다. '페놀 사태'와 같은 잠재적인 리스크에 대한 부담까지 털 수 있다.

그래서인지 환경공학 전공자로서 두 사람에게는 남다른 자부심이 엿보였다. 정 과장은 "벌써 14년 째 무방류를 실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박씨도 "학교 다닐 때 무방류 시스템을 배웠지만, 실제 우리나라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행운"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기업의 환경보호 노력은 당연한 것"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공업용수 정수장 바로 옆에 있는 '잉어 연못'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공업용수 정수장 바로 옆에 있는 '잉어 연못'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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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 우선이냐, 보호가 우선이냐는 패러다임 구분은 이제 끝났다고 본다. 환경보호를 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 자체가 블루 오션이 되는 세상이 됐다. 이제 기업의 환경보호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답을 얻었다. 당연한 기업의 환경보호 노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이다. 수자원공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연간 공업용수 이용량은 28억㎥에 이른다. 지하수를 포함한 총가용하천 수량이 252억㎥이다. 이제는 묻고 싶다. '살리기와 죽이지 않기', 무엇이 먼저일까.


태그:#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소나타, #환경, #수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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