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신지옥> 포스터

영화 <불신지옥> 포스터 ⓒ (주)영화사 아침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죽기 시작한다.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익사된 채 발견되는 친구들. 그리고 그 죽음의 공포는 점차 커진다.

 

익사, 그 공포의 중심에 서있는 여자. 공포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여자가 있으니, 바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 받던 남상미다.

 

이번에는 공포 판타지의 세계다.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묘한 집 한 채가 숲 속에 있다. 길 잃은 한 청년은 그 숲 속의 집을 방문한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세 명의 남매. 착하고 귀여운 이 아이들이 무서운 비밀을 쥐고 있다. 그 중에 어딘지 모를 묘한 구석을 지닌 심은경이 있다.

 

<령>과 <헨젤과 그레텔>을 통해 이미 공포를 체험한 바 있는 남상미와 심은경이 만났다. 공포의 비밀을 쥐고 있는 두 자매 역할이다. 바로 이용주 감독의 영화 <불신지옥>이다.

 

실종된 신들린 소녀, 그 소녀를 아는 사람들의 잇따른 죽음

 

하루하루 힘겹게 자취하는 희진(남상미)은 어느 날, 동생 소진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미친듯이 하느님만 믿고 기도만 하는 엄마(김보연)는 기도를 하면 동생이 돌아올 것이라며 교회만 다닌다.

 

희진은 답답한 마음에 형사(류승룡)를 부르지만, 그는 어린 소진의 실종을 가출로만 보고 형식적인 수사만 진행한다. 결국 희진은 스스로 소진을 찾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결심도 잠시, 희진은 충격적인 이웃 주민의 자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이 죽기 시작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공포를 느끼는 희진. 그리고 형사 또한 소진의 실종이 단순한 가출이 아님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희진은 이웃 주민들에게 소진이 신들린 아이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영화 <불신지옥>은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무엇'은 종교가 될 수도 있으나, 영화는 종교에 국한되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힘겨운 사회에서 각자 믿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 속에서 공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 무엇은 일종의 미신이다. 종교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 누구나 일종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막연한 믿음은 자신이 믿는대로 긍정적인 효과가 일어나게 되면,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불신지옥>은 그 막연한 믿음이 이기심과 욕망으로 인해 변질될 경우, 즉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 가슴 속 깊이 있는 믿음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안겨줄 것이라고 믿을 때, 생기는 이기심. 그것에서부터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한국형 공포 : 접신, 그 새로운 소재

 

영화 <불신지옥>에 대한 평가를 우선적으로 내리자면, 썩 괜찮은 한국형 공포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게임형 공포를 선보였던 작년의 <고사 : 피의 중간고사>를 제외하고, 최근 실망스러웠던 한국 공포영화들과 비교해 볼 때, <불신지옥>은 신선한 공포를 선보인다.

 

<불신지옥>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야기의 참신함이다. 신들린 소녀라는 소재는 사실상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그 형태가 다를 뿐, <엑소시스트> 종류의 영화 자체도 신들린 소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형태의 차이다. 공중 부양을 하고, 온 몸을 비틀고, 그것도 모자라 온갖 더러운 것을 토해내는 서양형 접신과는 다른 것이다. 작두를 타고, 예언을 하고, 부적을 쓰는 동양형 접신을 <불신지옥>은 다루고 있다.

 

<불신지옥>은 이러한 미신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종교와의 공존 및 대립을 함께 그리고 있다. 종교에 대한 믿음과 미신에 대한 믿음, 어느 것에 더 초점을 둘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추리형 미스테리 공포를 선보이는 <불신지옥>

 

 영화 <불신지옥>의 한 장면

영화 <불신지옥>의 한 장면 ⓒ (주)영화사 아침

 

<불신지옥>은 장르의 선택 또한 영리하다. 크게 장르를 구분하자면 공포에 속하지만 일반적인 공포라기보다는 추리형 미스테리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인 남상미가 동생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그 과정 속에 공포가 드러나는 형식이다.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들이 대부분 일본식 혼령을 보여주는 데에 급급했다면 <불신지옥>은 이러한 혼령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생을 찾는 과정 중에 남상미는 수많은 과거 목격담을 듣게 되고, 그 속에서 동생의 실종을 추리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증언들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이웃 주민들이 하나 둘씩 죽음을 맞이하는데, 여기서 <불신지옥>의 공포가 돋보이는 것이다. 이웃 주민들이 왜 죽는가? 동생 소진의 실종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추리 속의 공포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호흡이 짧은 공포는 아쉬워

 

그러나 <불신지옥>이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이 추리 속의 공포에서다. 이웃 주민들의 목격담 및 증언을 모아 추리를 하는 과정이 툭툭 끊기는 인상을 준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과 죽음이 맞물려 들어가야 호흡이 이어지는데,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의 전개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증언과 죽음의 과정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보니 초반의 공포가 중반부터는 떨어진다. 이미 공포의 패턴을 눈치챈 관객들은 공포가 다가올 타이밍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공포가 반감이 되는 것이다. 남상미가 연기한 희진이 동생 소진을 찾는 과정이 다소 단조로웠던 것이 이야기를 쉽게 만들면서도 공포를 반감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게다가 <불신지옥>이 더욱 더 아쉬운 것은 애매모호한 결말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모든 관객들이 똑같은 결말을 내릴 수 없는, 애매한 마침표를 찍고 있다. 그렇다고 열린 결말도 아닌, 해석하기 나름의 모호한 결말을 <불신지옥>은 선보인다.

 

추리형 미스테리 공포를 선보였던 영화가 갑자기 묘한 결말을 선보이는 것은 크나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갑작스레 결말에서 전의 한국 공포영화식의 결말을 내리는 것은 <불신지옥>의 한계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믿을 수 있는 공포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지옥>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믿을만한 공포영화다. 신선한 소재에, 신선한 이야기 그리고 적절한 공포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에는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을 한다.

 

연기 면에서 남상미의 연기는 전작들에 비해 훌륭한 편이다.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주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동생 소진의 역할로 나오는 심은경의 경우도 강인한 인상을 선보인다. MBC 시트콤 <태희 혜교 지현이>에서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영화 <헨젤과 그레텔>에서의 모습에서는 더 성장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엄마 역할의 김보연, 형사 역할의 류승룡도 말할 것 없이 조연으로써의 역할을 잘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불신지옥>에서 돋보이는 것은 미스테리한 이웃 주민들을 연기한 이들이다. 문희경, 장영남, 이창직, 오지은의 연기도 강한 인상이 남는다.

 

영화 <불신지옥>은 제작되기 전부터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시나리오로 유명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신인 감독이라고는 믿기 힘든, 꽤 괜찮은 첫 작품을 내놓은 이용주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

2009.08.24 11:13 ⓒ 2009 OhmyNews
불신지옥 남상미 심은경 김보연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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