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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그 날 부터 몇 번이나 글을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 결국 나는 신뢰하는 몇 몇 타인의 논리와 감정에 편승해 대리만족으로 애도의 기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종교적인 신념과 뒤죽박죽 섞인 내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기도 하거니와, 자격도 없으면서 감정에 취해 별 가치없는 말을 쏟아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한 대통령, 아니 정열적인 투사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 문장가들은 저마다의 필력을 뽐냈고, 가끔은 그 애절한 명문에 감탄해 그 죽음의 엄중함을 잊어버리기도 했었다. 내로라하는 명필들이 그렇게 그의 죽음에 아파하고 숨겨둔 사랑을 드러내는데, 정작 그는 그런 사랑을 체험하고 가지는 못한 듯하다.

지식인뿐이겠는가. 자신들이 직장에서, 학교에서, 커피 전문점에서, 술자리에서 별 생각없이 내뱉었던 침이 큰 빙산 조각이 되어 그의 가슴을 찌를 수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사란 것은 원래 그런 것인가. 굳이 그의 죽음에 책임을 묻는다면, 사실 그것은 특정 권력과 대중이 공동으로 져야 할 짐이다. "국민이 죽였으면서 무슨 국민장"이냐는 명계남씨의 절규도 그래서 일리가 있다.

그래서, 현재 봉하마을에, 덕수궁 대한문 앞에 퍼진 분노의 근거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촘촘한 논리에서 나오지는 못한 듯하다. 다만, 흥분하지 않으면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 가난하고 약해서, 그래서 절망했던 사람들의 눈물만은 진실이라고 본다. 대통령, 거물급 정치인을 통틀어 유일하게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었던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경계선에 서 있던 나같은 사람은 누구를 비난할 자격조차 없다.

긴 고민 끝에 내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영문잡지 NOVAsia (3호)의 편집자 주(Editor's Note)와 커버 스토리에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철학적 함의와 그 현실적 배경을 외국인들의 제3자적 반응을 곁들여 적어 보기로 하였다. 영문으로 되도록 간략하고 건조하게 정리함으로써,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로 했다. 며칠째 컴퓨터 앞에 붙어 있었지만, 도통 균형감 있게 정리하지 못한 것은 아직 내게 여러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도 그와의 작은 추억이 있다. 한 번은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수화기를 들었다가 "노무현입니다. 00계십니까?"라고 짧은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 이후 별다른 대화의 진전은 없었지만, 그저 한 번 말을 섞었다는 인연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끌렸고, 그의 정치 행보를 알고 나서는 소위 지지자가 되었던 것 같다. 2002년 선거 당시 군 복무 중 동료들을 설득하며 그의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었고, 탄핵 당시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그를 위해 분노했고, 대통령 취임 후 권위주의 배격과 파격적인 인사에도 감동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그는 천상 서민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감내하고, 부정의한 현실을 목도한 후에는, 기득권에 대한 태산과 같은 분노를 가슴 깊이 품고 살았다. 세속 최고의 위치에 오른 후에도 여전히 그는 갈급했고, 끊임없이 자신과 사회를 질책했다. 그에게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었고, 정의롭기만 하다면 아프지만 역사의 흐름 앞에 자유로울 것이라 믿었다.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고, 서민에게는 방어 기구가, 기득권에게는 공격성 무기가 되는 양날의 검을 죽는 그 날까지 차고 살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 직전, 단일화에 합의하고 국민 경선에서 그에게 패배한 정몽준 후보는 경선 후 그에게 정치적 약속을 받아내려 했다. 당선이 되면 자신과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주겠다는 약속을 문서화하려 했던 것이다. 3당합당, DJP연합, 권력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일단 권력을 잡는 것이 최우선과제인 한국 정치판에서, 그리고 약속을 하고도 또 쉽게 어기는 그 진흙탕에서, 그는 그 쉬운(?) 약속 하나 해 주지 못했다. 그 지독하게 결벽스러운 원칙주의는 대통령 선거 이틀 전 정몽준 후보의 지지 철회를 이끌어 내고 만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

내가 그를 더 이상 온몸으로 지지하지 못했던 것은 그렇게 지독한 원칙주의 때문이었다. 동경은 하지만, 입장을 바꿔 그 위치에 서면 내가 하지 못할 일들을 그는 서슴없이 해냈다. 바람직하지만, 그를 따르기에는 나약하기만 한 보통 사람들. 그는 보통사람들을 대변했지만, 정작 보통사람들은 그렇게 살기 쉽지 않은 데서 나오는 아이러니.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 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대통령의 위치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없어 괴로워했다. 그러나 본질적인 역설을 몸에 끌어 안고, 눈물을 쏟으면서도 그는 한 발짝 씩 전진하려 했고, 동시에 그 이상적인 위대함에 부족하기만한 정책, 위대함 때문에 독선적이어야 했던 그의 행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계속됐다. 끊임없이 적을 만나야 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분노를 곱씹어야 했던 그 길은 사실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모든 비난의 중심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가 만들어 낸 혼란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반드시 옳은 길도 아니었다.

우리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자. 당신은 과연 노무현스러운가. 그는 서민들의 영웅이었지만, 모두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통령보다는 진보의 대부로 멋지게 늙어갔었으면 더 좋았을 사람. 얼마 전보다 더 희끗한 머리로, 강단에서 달변을 늘어놓고 후학을 키웠으면 더 아름다웠을 사람이 그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니체의 책 제목이다. "신은 죽었다"라고 회자되는 니체의 이야기는 신의 존재 자체를 비하하는 발언은 아니다. 궁극적인 실재로서의 신은 있을 수 있어도,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적이고 선별적인 구원을 하는 편협한 신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적인 신"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신실한 신자라고 볼 수 없었던 그는 신의 경지에 다다르려고 했던 것일까. 신념을 위해서는 지독하게 만큼이나 철저했던 사람. 서민처럼 한없이 낮았던 사람. 그는 정치에 관해서 만큼은 신(神)의 경지까지 다다른 서민의 영웅일까. 아님 지독한 자기애(愛)의 결벽증을 견디지 못한 허상일까. 그는 바위로 사라졌고, 이제 그 판단은 인간의 몫은 아닌 듯하다.

미국의 작가 허만 멜빌의 소설 "선원 빌리버드"를 보면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립 구도를 형상화 하고 있다.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 싸우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악은 절대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선을 없애려 할 것이고, 선은 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악을 없애려 할 것이다. 절대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상대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소설에서는 절대적인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 악을 상징하는 인물을 제압하고 만다. 그러나, 선을 상징하는 인물에게 세속 영역은 사형을 구형한다. 그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선의 현실 적용은 정치적인 악행을 유발할 수 있다."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 세속의 영역에서는 악행을 부를 수 있다. 선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 성격을 띠는 순간 세상의 타협이란 말은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극단적인 세속적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가 이룬 극단적인 성공처럼, 그보다 더 극단적인 죽음으로 끝난 실패처럼.

그는 바위가 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가 절대 선에 가까이 가려 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해도, 그는 죽음으로서 그 한계를 말한 것과 다름없다. 절대 선이라 할지라도 세속에 그 가치를 그대로 적용하려고 했을 때는 극단적이고 아픈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본래 인간은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절대적으로 악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지칭해 죽도록 분노할 필요도, 그의 죽음에 넋놓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신념에 있어서만은 신의 경지에 가까이 갔던 그는 (본인 스스로도 정치에 있어서는 자신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부했다고 한다), 자신 역시 한없이 여린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떠났다. 그의 정의를 향한 고견은 높이어 받들되, 절대적이려고 했던 그의 마지막 선택은 아프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대결을 떠나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그 존재만으로 큰 감동으로 남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더 살았어야 했다. 그의 영전에 이 부족한 글을 놓는다.


태그:#노무현,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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