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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 글ㆍ사진 : 저문강(조영대)

- 펴낸곳 : 천권의 책 (2009.5.1.)

- 책값 : 15000원

 

 (1) 노래와 춤과 잔치와 삶과

 

 저문강(조영대) 님은 1999년부터 꾸준하게 '안데스 음악 여행'을 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집식구가 있으면서도 안데스 노래에 빠져 홀로 비행기를 타고 중남미를 떠돌며 노래를 듣고 시디를 장만하고 악기를 배우는 당신은, 그동안 안데스 노래를 들으면서, "안데스 음악은 잠들어 있던 감성을 새롭게 일깨워 준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안데스 음악에 대해 물을 때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라고 답하곤 한다(311쪽)"는 말처럼 당신 넋을 빗질해 주는 노래와 늘 가까이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참에 펴낸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라는 책 하나에는, 당신 넋을 빗질해 준 고마운 노래를 찾아나선 발자취를 그러모은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습니다.

 

.. 사실 그들과 내 관심사는 전혀 다르다. 알렉스와 아기는 스페인 식민지 영향으로 세워진 성당이며 수녀원 등 식민지풍 건축물에 관심이 많다. 내 관심 밖의 일이지만, 삼사백 년 된 건물들이 여전히 아름답고 훌륭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는 게 감탄스러운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 알다시피 볼리비아는 경제적 수준이 매우 낮은 나라이다. 개개인은 물론이고 국가 자체가 돈이 많지 않다. 따라서 당연히 사회 간접자본의 축적도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 경제적 측면으로 보자면 사람들도 매우 낙후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삶의 행복이 단지 경제적인 측면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볼리비아 사람들은 언제, 어떤 곳에서, 어떤 종류의 행복을 찾으며 삶을 즐길까 ..   (41, 112쪽)

 

 책을 펼쳐드는 저는 '안데스 노래'를 잘 모릅니다. 텔레비전도 안 보고 라디오도 안 들으니 다른 노래를 들을 길이 없기도 하지만, 엘피나 테이프를 장만해서 틈틈이 노래를 듣는다 하여도, 나라안에 널리 알려지거나 들을 만한 '안데스 노래'란 거의 없거든요. 보름쯤 앞서인가, 동네에 있는 오랜 술집에 잠깐 들렀을 때에 에프엠 라디오에서 '빅토르 하라' 노래 둘을 잇달아 틀어 주어 고맙게 들었습니다만, 하라 노래이건 중남미 노래이건, 또 안데스 노래이건 우리들 여느 사람으로서 만나거나 마주하기란 몹시 힘듭니다.

 

 생각해 보면 안데스 노래 만나기만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라고 하는 '굿'을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무형문화재이니 민속문화재이니 뭐니 하고들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신 김수남 님은 굿 사진을 부지런히 찍어 놓기는 하였어도, 정작 굿소리를 들을 마땅한 자리가 없고, 엘피도 테이프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굿뿐 아니라 여느 일노래와 놀이노래도 듣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저는 국민학생이던 1982∼1987년에 동네 골목길에서 동네 동무들하고 숱한 놀이노래를 부르며 술래잡기와 숨바꼭질 들을 하며 놀기는 했으나, 오늘날 동네 골목길 이웃집 아이들한테서 놀이노래를 들을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집 둘레에 있는 골목집 아이들이 아침저녁으로 골목에서 뛰놀기는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않습니다. 줄넘기를 하고 손전화 놀이를 하고 유행노래를 부를지라도 '언니 오빠 형 누나'한테서 물려받거나 배운 놀이노래는 한 가지도 모릅니다.

 

.. 나는 오따발로 시내에서 직선으로 난 길로 다니는 파란 버스보다는, 시간은 좀더 걸리더라도 가는 길에 있는 모든 동네를 거쳐 가는 빨간 버스를 더 좋아한다. 파란 버스보다 2배 이상 걸리지만, 온통 푸른 색으로 내 눈을 꽉 채우는 오따발로의 자연이 그대로 펼쳐진 길을 마음껏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  (154∼155쪽)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 탓이 있습니다. 가르칠 사람이 없는 탓이 있습니다.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수 없는 탓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저런 탓보다도 어른인 우리 스스로 우리 노래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대중가요도 노래이며 뽕짝도 노래이며 팝도 노래입니다. 락도 노래이고 민중가요도 노래이며 판소리도 노래입니다. 그런데 '우리 노래'는 무엇이지요? '한겨레 노래'는 무엇이지요? 안데스사람들도 안데스 노래를 차츰 잊어 가거나 멀리하고 있다고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에 나와 있는데, 백두산 넋을 받건 태백산 얼을 받건 한라산 마음을 받건, 우리들은 어떤 넋과 얼과 마음으로 어떤 노래를 즐기고 부르고 나누고 있는가요.

 

 하긴,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한테는 노래도 없고 춤도 없고 잔치도 없습니다. 관청에서 수 억이나 수십 억을 들이는 '축제'나 '이벤트'는 있어도, 동네사람 마을사람 어깨동무하면서 들썩들썩 신이 나는 잔치판이란 없습니다. 품앗이와 두레가 없으니 잔치판 또한 없겠습니다만, 어우르는 일, 울력이 없으니 일노래가 없을 테고, 어깨동무 씨동무 할 또래가 없으니 놀이노래가 없을 테지만, 어쩐지 쓸쓸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노래를 즐기는 매무새로 우리 노래도 함께 부르면서 '안데스 노래'를 찾아나설 만한 노래그릇이 못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몹시 허전합니다.

 

.. 한 인디헤나가 께추아어로 지은 아이의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한다. 그러자 담당자는 께추아어로 이름을 지을 수 없다며 그 자리에서 후안이라고 정해 준다. 그때부터 그 아이의 이름은 후안이 된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꽈도르에서는 께추아어로 이름을 짓는 것이 금지사항이었다고 한다 … 은행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그렇다. TV를 보다 보면 스페인 방송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거의 백인들이 브라운관을 차지하고 있다 … 실제로 스페인에는 지금도 중남미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 인디헤나는 말 그대로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다. 인디헤나가 상층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차별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175∼177쪽)

 

 그렇지만, 우리는 중남미 인디헤나처럼 '우리 이름을 우리 나름대로 짓는 권리를 빼앗기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우리 이름을 우리 나름대로 지을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해 8월 17일에 우리 아이(사름벼리) 출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에 가니까, "아이 이름을 한자로 어떻게 적지요?" 하고 묻더군요. "우리 아이 이름은 한자가 아닌 토박이말로 지은 이름입니다." 하고 한마디 해 주니, "그래도 한자로 적어야 하는데요?" 하고 되묻기에 귀고 귓구멍이고 기고 콧방귀고 다 막혔어요. 동사무소(따지고 보면 동사무소가 아닌 동주민센터입니다) 일꾼한테 다시금 따졌습니다. "아니, 왜 아이한테 한자 이름만 지어야 합니까? 우리 말 이름을 지어 주면 안 됩니까?" "주민등록증에 한자를 꼭 입력하도록 되어 있어요."  "나원참, 그러면, 아이한테 이름을 지어 줄 때에는 반드시 한자로만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한다는 소리이네요?"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우리 아이 이름은 토박이말이니까, 그 토박이말에 한자를 넣고 싶으시면 알아서 넣으셔요. 우리 아이는 한자 이름이 없습니다."

 

 (2) 우리 가슴에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란

 

 1999년으로 떠오릅니다. 그때 김종필 국무총리께서는, 우리 주민등록증에 모조리 '한자를 넣도록' 법을 바꾸었습니다. 그무렵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 님은, 김종필 님과 어깨동무하면서 대통령이 되는 가운데 몇 가지를 김종필 님한테 들어 주기로 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관공서 문서나 주민증 따위에 한자 함께쓰기 또는 밝혀쓰기'를 하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자 없는 주민증'을 만들었지만, 그때 국무총리 되신 분이 아주 굳세게 밀어붙여서 나라돈 몇 조를 쓴 줄 알고 있습니다. 그때 길알림판 또한 한자를 넣어 새로 만드는 정책을 억지로 밀어붙였고, 애꿎은 길알림판 또한 모조리 갈아치웠습니다. 이와 같은 정책에 찬반이 4:6이나 3:7쯤 되었으나, 이 정책대로 일이 풀렸고, 아무래도 이때 일 때문에 우리 아이한테까지 불똥이 튀는구나 싶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잊은 옛일이겠지만, 그때에 주민증에 '손그림 넣기'를 억지로 시켜서 이 일을 놓고도 '주민증 안 받기'를 하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라는 숫자란 1968년에 박정희 독재자가 나라사람을 억누르고 휘어잡으려고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일이 왜 있었는지를 떠올릴 줄 아는 사람도 얼마 없지 싶은데, 우리가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지만, 정작 세계 어느 나라에도 주민등록번호란 없고 주민등록증이란 없습니다. 더욱이, 나라사람을 범죄자로 여기며 지문을 받는 끔찍한 일을 하는 나라는 한국을 빼고 일본뿐인데, 일본은 제 나라 사람한테는 지문을 안 받고, '제 나라 사람 아닌 사람'한테만 지문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끌려갔거나 넘어가야 했던 재일조선인한테만 지문을 받는 셈이고, 이 일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골칫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인권을 끔찍하게 짓밟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새 주민증을 만든다고 하던 1999년 그때는, 오랜 군사독재정권을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로 뒤집었던 때입니다. 그렇지만,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정권마저도 '주민증에 지문 찍기' 같은 끔찍한 일을 똑같이 되풀이했습니다.

 

 어느덧 열 해가 흐른 일이니 아득한 일이라고 느낍니다만, 그때에나 이때에나 느끼기로는, 우리들 한겨레는 '생각힘이 너무 없'구나 싶습니다. 상상력이 없습니다. 애써 이룬 자유를 자유로 누리지 못하고, 힘써 이룬 민주를 민주로 펼치지 못했습니다.

 

.. 식사고 뭐고 없다. 넋을 빼놓고 그들의 연주에 빠져든다. 게다가 내가 신청하는 곡을 빠짐없이 하나씩 연주해 주는 것이 아닌가.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암, 안 되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 폴클로레에 대한, 아니 저 연주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나가 선율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번엔 연주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그만 동양인 하나가 자기네들의 음악을 신청하고 거기에 춤까지 추자 신기하고 반가웠는지 더욱 신나게 연주해 준다 ..  (44쪽)

 

 안데스를 밑돌 삼아 안데스 문화를 꽃피웠고 안데스 노래를 조촐히 지켜 나가는 안데스 토박이들은 안타깝게도 제 말과 글을 잃었고 제 삶터에서도 2등이나 3등 자리로 밀려나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이곳 안데스사람들도 우리들처럼 생각힘이 없을까요? 아직까지 '넋과 얼을 빗질하는 노래'를 부르고 즐기기는 하지만, 구석자리로 밀려난 채, 뒷골목으로 쫓겨난 채, 그저 숨죽이는 가운데 부르거나 즐기고 있을까요?

 

 <영혼을 빗질하는 노래>를 쓴 분이 안데스 나들이를 하면서도 '참다운' 안데스 노래를 찾기가 만만하지 않았다고 밝히는데, 이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중남미 삶터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지 않을까요?

 

.. 여기도 서양 팝 음악이 흘러나오는 디스꼬떼가 많이 있지만, 볼리비아노들은 안데스 폴클로레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자기들의 기분을 발산할 수 있다 ..  (114쪽)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땅에서 참다운 우리 노래를 잃은 지 몹시 오래되었기 때문에 우리 삶터에서는 우리 노래로는 우리 넋과 얼을 빗질할 수 없을밖에 없다고. 그렇다고 안데스땅 곳곳에 안데스 노래가 넘실넘실 넘쳐나면서 안데스 삶터를 어루만지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으나, 군데군데 듬성듬성 안데스 삶자락 어딘가에는 '넋과 얼을 빗질하는 노래가 남아' 있다고. 이 조그마한 실마리를 잡아채어 우리들이 스스로 놓거나 내버린 넋과 얼을 새롭게 추스르고, 다시 태어나는 한 사람이 되자고 조용히 말걸기를 하고 있다고.

 

.. 힘들기야 하겠지만 한국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님에도 다시 여권을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한국엔 한국의 바람이 불듯, 안데스엔 안데스의 바람이 불 테니까. 안데스 악기는 안데스의 바람 속에서 본연의 소리를 낼 테니까 ..  (191쪽)

 

 덮었던 책을 다시금 훑습니다. 339쪽에 이르는 책에는 글과 사진이 골고루 섞여 있고, 책끝에는 '추천하는 노래'와 '안데스 악기 소개'가 붙어 있습니다. 야무지게 잘 엮었다는 생각이 들고, 감칠맛나는 글은 제법 잘 썼다고 느낍니다.

 

 다만, 좀더 느긋하게 노래로 스며들고, 더욱 부드러이 노래와 함께했다는 느낌은 옅습니다. 글쓴이 발자취를 바지런히 알려주면서 다른 이들한테도 이 길을 함께 걷도록 이끌려는 마음이었는지 모르나, 이 책이 '여행기'나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한다면, 글쓴이 나름대로 가슴속 깊이 파고든 '넋을 흔든 노래와 삶'이 무엇인지에 더 많은 자리를 나누어 주어야 했다고 느낍니다. '얼을 달랜 노래와 사람'은 어떠했는가를 다루는 글에 좀더 길게 이야기를 모두어야 했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나라안에 '안데스 노래'를 맛보도록 이끌거나 일러 주는 이야기책은 몇 가지 없다고 느끼기에, 이만큼 엮고 쓴 책이라도 반갑습니다. 아직은 서툴 수밖에 없다고도 봅니다. 왜냐하면, 글쓴이는 아직 '안데스 노래' 맛보기만 한 분이지, '안데스 노래'를 안데스 악기로 신나게 뜯고 퉁기면서 춤판을 벌여 줄 수 있을 만큼 무르익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마무리로 낸 책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첫 걸음마를 데듯 써낸 책이니까요. 이제, 이 첫 걸음마를 발판 삼아, 앞으로는 무르익은 이야기를 한결 곰삭이고 달래면서 펼쳐 줄 수 있기를 바라고 기다리고 꿈꾸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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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저문강 지음, 천권의책(2009)


태그:#책읽기, #안데스노래, #음악문화, #안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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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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