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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윈난성 서북부. 양옆으로 5000m가 넘는 까오리공산(高黎贡山)과 비뤄설산(碧罗雪山)의 거대한 산맥이 만들어낸 깊은 협곡 사이로 한줄기 성난 물줄기가 이어진다. 티베트의 탕구라 고원에서 발원하여 미얀마를 거쳐 안다만해로 흘러드는 3200Km의 국제하천 살윈강의 상류를 중국에서는 노강이라고 부른다.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돌아치는 물줄기의 큰 굽이는 수억년 전 이 땅이 융기되면서 형성된 이 깊은 협곡에  'ㄷ'자도 아닌 'S'자도 아닌 오메가(Ω)형태의 큰 아름다음을 선물한다.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돌아치는 물줄기의 큰 굽이는 수억년 전 이 땅이 융기되면서 형성된 이 깊은 협곡에 'ㄷ'자도 아닌 'S'자도 아닌 오메가(Ω)형태의 큰 아름다음을 선물한다.
ⓒ 변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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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지형과 가파른 물살은 오랜 시간 외부세계와 단절시켜 지금까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생태계와 소수민족들의 원시 공동체 사회와 풍습이 잘 보존시켜 왔다. 동방대협곡(東方大峽谷)으로 불리는 이곳은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한 삼강병류(三江餠流) 세계문화유산의 중심지이자 윈난성 서부와 미얀마의 중요한 젓줄이기도 하며, 푸얼차(普洱茶)의 교역로인 차마고도(茶马古道)가 관통하는 윈난성 가장 깊은 곳이다. 이 곳으로 노강을 거슬러 올라 간다.

협곡사이의 바람은 여전히 상쾌하다

누강대협곡과 정상부근의 큰 구멍이 뚫려있는 석월량
 누강대협곡과 정상부근의 큰 구멍이 뚫려있는 석월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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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전만 해도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외국인들에게 개방이 되지 않은 곳이지만, 노강여행의 관문도시인 륙쿠(六库)에 들어서니 노강줄기를 따라 도로가 정비되고 철제 현수교가 강 양쪽을 이어주며, 현대화된 건물들이 들어선 지도 꽤나 오래 되었음이 느껴진다. '몇 년 사이에 많이 변했군.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가 아마 2006년 10월였었지?

협곡사이로 제법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시간이 흐르고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해도 거친 협곡사이를 넘나든 바람의 상쾌함은 여전했다. 이렇듯 다시 찾아가는 길 위엔 꺼내볼 수 있는 추억거리들이 있어 좋다. 아침의 분주함에 동참해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윈난성 땅 끝 마을 빙중뤄(丙中洛)행 버스를 타기위해 이리저리 둘러보니 여행자들도 제법 보인다. 전에 왔을 땐 여행자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는데.

'이번 여행의 좋은 친구들이 되겠군!'

륙쿠를 출발해 노강을 따라 북상하기 시작한다. 지독한 겨울가뭄 탓일까? 분노한 강이란 이름답지 않게 거친 협곡사이의 물줄기는 유유히 흘러간다. 자연은 사람을 만들어 간다는데 이 곳 사람들은 아닌 듯하다. 거친 환경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지형적 고립이 이들을 외부와 대항하여 싸울 필요는 없게 해줘서일까? 이들에겐 순박하고 평온함이 가득 묻어난다. 그리고 그 느낌은 이곳을 찾은 이방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곳 노강은 시선을 압도할 만한 강렬함은 없지만 이런 평화로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아마도 난 그 느낌에 이끌려 다시 이 길 위에 서 있는 것일 테지.

뤄숴(洛索)라 부르는 긴 쇠줄을 강 양쪽에 걸어두고 도르래를 끼워서 강을 건너다니는 노강의 전통적인 도강방법이다.
 뤄숴(洛索)라 부르는 긴 쇠줄을 강 양쪽에 걸어두고 도르래를 끼워서 강을 건너다니는 노강의 전통적인 도강방법이다.
ⓒ 변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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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긴 쇠줄이 강의 양쪽으로 교차하며 걸려있다. 뤄숴(洛索)라 부르는 이 긴 쇠줄을 이용해 도르래를 끼워서 강을 건너다니는 노강의 살아있는 볼거리이다. 이곳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철제 현수교가 설치되었지만 강 건너편의 작은 마을을 잇는 이 줄을 모두 대신하진 못한 듯하다. 어쩌면 이곳은 현재와 과거가 함께 공존하는 문화적 이중성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매달려 강을 건너야 했지만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아무런 안전장치, 건너편에서 잡아줄 사람도 없이 혼자서 속도를 제어해서 반대편에 안착한다는 것이 경험 없이는 힘들겠지만 군복무 때의 유격훈련을 경험삼아 자신 있게 몸을 던져본다. 도르래와 쇠줄이 일으키는 마찰음이 커져가며 어느새 내 몸은 강의 한복판을 날고 있다. 조급한 마음에 브레이크를 자주 걸다보니 착지점 훨씬 전에 멈춰버려 힘겨운 외줄타기로 마지막을 장식했지만 첫 경험으론 성공이었다.

한참을 앉아서 지켜보니 비단 사람만 건너다니는 게 아니었다. 지난번 기이한 체험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이 함께 건너가는 물론, 자전거, 돼지도 함께 건너다닌다. 그 뿐만 아니라 공사자재로 쓰일 벽돌과 시멘트도 이 줄 하나를 의지한 채 넓은 강 위를 날아 다닌다.

"소는 무거워서 힘들고 그 빼고는 다 건너다닐 수 있어요."

호기심 많았던 꼬마친구가 길을 나서려 일어서는 나에게 박장대소할 한마디를 선물한다.

"소 빼고는 다 건널 수 있어요"

주변 풍경과 지난 기억들을 끼워 맞추는 나만의 놀이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차는 어느새 푸공(福贡)을 거쳐 윈난성의 마지막 도시 공산(贡山)에 도착한다. 이곳은 윈난성 최고의 오지이자 원시산림속에 아직도 수렵과 농경으로 살아가는 두롱족(独龙族)이 사는 두롱강(独龙江)과 윈난성 마지막 마을인 빙중뤄로 가는 관문이다. 본래 계획했던 두롱강(独龙江)은 깊은 협곡을 따라 험준 산맥을 넘어야하기 때문에 일 년 중 절반은 눈 때문에 통행이 불가능하다. 지난번 발걸음에는 산사태가 발목을 잡더니……. 이래저래 두롱강과의 인연은 쉽사리 맺어지지 않는다. 아쉬움을 접고 노강 상류의 차마고도 흔적을 따라 이번 여행을 이어가 보기로 했다.

빙중뤄에 가까워지며 협곡을 가로지르며 강변을 따라 달리던 길이 갑자기 거친 비탈을 향해간다. 비탈진 굽이를 돌아서니 발밑으로 천길 낭떠러지와 함께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돌아치는 물줄기의 큰 굽이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삼강병류를 대표하는 노강 제1만이다. 수억년 전 이 땅이 융기되면서 형성된 이 깊은 협곡에  'ㄷ'자도 아닌 'S'자도 아닌 오메가(Ω)형태의 큰 굽이는 바로 자연이 만들어 낸 걸작이자 지구의 아름다운 상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거대한 산에 둘러쌓여 외부세계에선 보이지 않는 세외도원과도 같다. 이 땅이 품은 평온함이 유혹하고 있다.
 거대한 산에 둘러쌓여 외부세계에선 보이지 않는 세외도원과도 같다. 이 땅이 품은 평온함이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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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을 출발한지 무려 20시간이 흘러서 도착한 윈난성 서북단 땅 끝 마을 빙중뤄. 좌측으론 티베트 고원을 가로질러 내려 온 노강의 청량함과 뒤쪽으론 만년설로 덥힌 까오리공산의 정기, 우측으론 미얀마와 100K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신비스러움을 가득 안고 있는 전원마을이다. 실제로 이곳은 세계2차 대전 당시 미얀마에서의 일본군과의 전투를 위해 군수품을 실어 나르는 항로였는데 고산준령을 미처 넘지 못한 비행기들이 거대한 협곡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의 비행루트였습니다. 실제로 그 때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가 근처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하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탐험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알렉산드라 다비드넬'. 그녀는 1923년 윈난성에서 출발해 두 달여에 걸친 장도 끝에 당시
금단의 땅이던 티베트를 여행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5년 뒤 영국인 탐험가 '루커'가
등장하며 동티베트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들 유명한 대탐험가들의 길을 따라 나의
갈증도 계속되겠지…….

양쪽으론 수천m가 넘는 험준산맥들이 가로막고 있는 깊은 협곡이 만들어내는 웅장하고 거친 그 속에는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 이들은 깊은 협곡사이로 아슬아슬 길을 내며 험준산맥 너머의 외부 세계와의 길을 만들었다. 바로 이 길이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마음속으로 그리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이다. 흔히 알려진 따리-리장-샹그릴라-더친(메리설산)으로 이어지는 차마고도는 이미 현대화된 도로가 옛 길 위를 덮고 마방의 역할을 대형트럭이 대신하고 있는 역사속의 길이지만, 이 곳 노강 차마고도는 여전히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주는 살아 숨 쉬는 윈난성에 현존하는 최후의 차마고도라 볼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사이로 난 길을 걷다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 깊은 협곡사이로 아슬아슬 길을 내며 험준산맥 너머의 외부 세계와의 길을 만들었다. 거친 물살이 삼킬 듯 위협하며 협소한 길에 변변한 안전장치 하나 없지만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가 전해져온 길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하다.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 깊은 협곡사이로 아슬아슬 길을 내며 험준산맥 너머의 외부 세계와의 길을 만들었다. 거친 물살이 삼킬 듯 위협하며 협소한 길에 변변한 안전장치 하나 없지만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가 전해져온 길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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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을 따라 깎아지른 절벽사이로 난 길은 걸어본다. 발 밑으론 거친 물살이 삼킬 듯 위협하며 협소한 길에 변변한 안전장치 하나 없는 그 길은 두렵기도 하지만, 그 길에 묻어 있는 내음이 그 험한 길을 부드럽게 덮어주고 있는 듯하다. 시간에 자리를 내어준 추억이 아닌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 내일의 희망까지 가지고 있기에…….

빙중뤄에서 노강줄기를 따라 10여Km를 가다보니 윈난성의 끝 마을 츄나통(秋那通)이란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몇 Km만 더 올라가면 티베트의 땅이다. 바로 다비드넬이 86년 전 아슬아슬하게 걸었던 그 길이다. 협곡 속에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는 이 마을은 41가구에 160여명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지만 노족, 리수족, 장족, 두롱족이 함께 어울려 문화적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전원마을이다.

일반상식이라면 다양한 민족들이 비슷하게 살아가더라도 그들끼리의 집단촌이 형성되어 분리된 공간으로 살아가는 게 정상인데, 무엇이 이들이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었을까? 서로 다른 민족 간에 전혀 느낄 수 없는 벽! 바로 1940년대 서양 선교사에 의해 전래된 천주교와 기독교의 영향인 듯하다. 다양한 민족들만큼 다양했던 언어와 문화를 아우르며 이들의 공통적 문화가 되어버린 '종교'. 태어나면서부터 윤회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티베트인들마저도 이곳에선 일요일이면 교회를 찾고, 식사 때면 기도를 하는 모습이 2006년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당시 내겐 꽤나 큰 문화적 충격이였다.

돌 너와로 된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다움과 초록 보리밭의 상큼함이 협곡속에 묻혀있다.
 돌 너와로 된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다움과 초록 보리밭의 상큼함이 협곡속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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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처음만 난후 거의 2년 반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촉촉한 봄비를 머금은 푸른 보리밭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온화한 기후 탓인지 노강지역의 가옥은 나무로 지어져있고 지붕은 놀 너와로 덮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뒤편 언덕에 올라 아름다운 전원마을을 내려다본다. 돌 너와로 된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다움을 느끼며 눈을 감고 그 옛날 노강 차마고도를 따라 윈난-티베트를 오가던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떠올려본다. 험준협곡을 관통하는 탐험가들의 길이였던 노강 차마고도의 흔적과 독특한 돌 너와집, 싱그러움 가득 머금고 있는 협곡의 내음까지 느껴지던 소중한 발걸음이 된 듯하다.


태그:#누강, #차마고도, #동방대협곡, #윈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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