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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변화의 가능성을 보다

 

<촛불항쟁과 저항정신>을 쓴 김광일은 광우병대책회의 행진팀장으로 현재 수배중이다. 2008년 5월 2일부터 100여 일간 뜨겁게 불타올랐던 촛불집회 현장 한가운데서 온몸으로 뛰었던 그는 촛불항쟁의 득과 실, 앞으로 촛불항쟁이 나가야 할 방향 등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통해 비교적 객관적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항쟁의 주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오늘날 촛불 봉기의 전국적 전 세계적 신문이 있다면 그것은 아고라이다. 아고라는 그러나 선전과 선동의 매체가 아니라 정보의 취합과 토론 그리고 결정의 생산 공간으로 기능한다."

 

아다시피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항쟁은 촛불소녀로 상징되는 여고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촛불 항쟁의 진짜 주체는 조직적 체계를 갖춘 지도부가 아니라 '아고라'로 대표되는 아래로부터 자의적으로 구성된 대중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촛불 항쟁이 서서히 불타올라 정점을 이룬 6월 10일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 말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광우병대책회의'가 구성된 것 자체도 촛불 소녀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한 뒤였으며, 주말마다 광장을 약속 장소로 삼아 모여들던 사람들이 촛불집회에서 보자고 서로 약속을 하던 곳도 인터넷 카페나 '아고라'를 통해서였다. 사실 촛불의 가장 큰 성과를 든다면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아래로부터의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을 꼽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변혁이야말로 진정 다수의 민중이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물론 강력하게 힘을 모을 수 있는 집행부나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약하다는 면에서 자발적이고 민주적이며 아래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운동의 한계를 꼽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각에 의해 자발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꿈꾸고 실행해봤다는 점은 촛불 항쟁이 가져다 준 손꼽을 성과임은 확실하다. 이제 민중들은 자기들 안에 숨겨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 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얼마나 효과적으로 우리가  꿈꾸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라는 과제만 남아 있다.

 

운동의 생명, '민주주의'가 살아나려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나 변화가 성공하려면 조직 체계를 갖춘 기존 운동권과 단체의 머리된 사람들의 경직된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

 

운동에서 민주주의는 생명이다. 운동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국민 변화가 순식간에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어제의 지도부가 오늘의 후진적 부분이 될 수 있다. 기존 사회운동 단체에 속하지 않아 운동 경험이 없더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격변하는 운동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주기도 훨씬 빨라져야 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운동이 발전할 수 있다.

 

바람직한 발전의 방향이나 정책은 지도부가 누가 되든지 이어가야 진정한 사회발전과 변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늘 상명하복 구조에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당하며 살아온 세월 속에서  바람직한 대의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탓에 운동권에서조차 진정한 대의 체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 변혁을 꿈꾼다는 운동권에서조차 민주적인 절차로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여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내기보다는 머리 선에서 결정된 사항을 아래에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이 체계적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마다 지도부를 바꿔야만  부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촛불 항쟁과 저항의 미래>를 쓴 김광일의 지적처럼 100만 명이나 모였던 민중의 힘을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저항정신으로 이어가지  못한 원인이 소수 의견이나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데 있다면, 투쟁 참가자들 의견이 전체 운동 방향에 반영되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촛불 소녀들이 불붙인 촛불은 새로운 사회, 진정으로 변화된 세상이 올 때까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저항정신으로 불타올라 행동하는 양심들을 일깨울 것이다. 실천이 없이 사회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고 있는 모든 낡은 사회의 산파며 사회적 운동이 자신을 관철하며 굳고 마비된 정치적 형태들을 파괴하는 '도구' 이다" - 마르크스 -

덧붙이는 글 | 시사 포커스에도 보냅니다. .


촛불 항쟁과 저항의 미래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 수배 중인 광우병대책회의 행진팀장이 쓴

김광일 지음, 책갈피(2009)


태그:#촛불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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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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