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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예술계열 대학생들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말할 권리를 막아 나선데 이어 문화예술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문화예술을 정권의 도구화하려 하고 있다"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예술계열 대학생들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말할 권리를 막아 나선데 이어 문화예술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문화예술을 정권의 도구화하려 하고 있다"며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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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학생입니다. 그리고 서사창작과 복수전공자입니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모으면서 복학을 준비하던 중에 학교와 관련하여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한예종이 두 번째 대학입니다. 이전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문화미래포럼의 교수님들이 계신 학교 중 하나입니다. 공대생이었지만 더 다양한 것을 배우고 싶어서 그 학교에서 전공보다는 타과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인문대에서 철학과 수업도 듣고 미술이론과에서 미술사 수업도 듣고 미대 드로잉수업과 문예창작과 수업도 들었습니다.

그 학교는 타과 학생에게 수업개방이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께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듣는 수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이론수업 같은 경우, 저는 공대생이다 보니 아무래도 인문학 소양이 부족하고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발표수업을 할 때 제가 타과에서 배우는 것만큼 타과생들한테도 가능한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눠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실기 수업은 더욱 쉽지가 않았습니다. "왜 너는 다른 애들처럼 하지 않니"라는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오기 전에 몇 년간 준비하며 테크닉을 쌓은 친구들과 물론 실력이 비슷할 순 없겠죠. 그렇지만 과제마다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한 것에 비해서 성적은 저만 유일하게 C를 받았습니다. 상대평가제인 학교에서 아무래도 자기 과 학생들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었을 심정 이해하지만, 그 권위주의와 폐쇄성에 전과나 편입 생각이 싹 달아났습니다. 결국, 졸업하고 한예종에 학부 1학년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이런 걸 써도 소설이 될까' 하는 바로 그걸 소설로 써라"

다양하게 배우고 싶어서 영화과에 지원했지만, 막상 입학하고 보니 종합적으로 배우기보다는 가장 근원적인 것을 먼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서사창작과를 복수 전공했습니다. 1학년 때, 처음 듣는 서사창작과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책꽂이를 먼저 둘러보고 거기에 없는 바로 그것을 쓰라. 이런 걸 써도 소설이 될까, 하는 바로 그것을 소설로 써야 한다."

전 학교에서 4년간 쌓인 갑갑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예술학교에서 그 한 가지를 배운다면 50%를 배운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렇게 말씀해주셨던 교수님은 유명 소설가지만 전공은 경영학과였습니다. 문화부의 논리대로라면 서사창작과 교수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만, 그 한마디로 젊은 예술학교 입학생의 마음에 시작점을 찍어주시고 예술가로 나아가는 길을 터주셨습니다. 여기에 자격이란 단어는 무의미합니다.

지난 학기에는 시 창작 수업을 들었습니다. 시를 가르치셨던 교수님은 철학을 전공하셨지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젊은 시인이었습니다. 그 수업엔 다른 서사창작과 수업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의도치 않게 전공이 작품에 드러나게 되어 서로 흥미로웠습니다. 미술원 학생이 써온 시엔 한 가지 이미지에 집중한 것이 느껴지고, 묘사가 그림을 그리듯 세밀했습니다. 무용원 학생이 써온 시는 글자가 춤추는 것같이 리드미컬했고, 영화과 학생들은 컷구성 하듯이 시퀀스 단위로 시를 써왔습니다.

이같이 다양한 학생들을 한데 가르치느라 교수님은 조금 힘드셨을 테지만 학생들은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것이 당장엔 드러나지 않더라도 인생을 통해 작품에 조금씩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서사창작과와 통섭수업의 최대 장점입니다.

서사창작과와 통섭수업의 최대 장점 '다양성'

이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건,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게 시적인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언어의 최전방에서 한계를 넘어가면서 시의 영역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비단 시뿐만이 아니라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인촌 장관님과 문화미래포럼에서 불온하다고 못 박은 서사창작과에서 배운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예술의 정치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미학이란 몸이 세계를 느끼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고, 정치란 몸이 세계를 느끼는 방식들이 충돌하는 것, 그러니까 특정한 감각의 방식에 따라 세계 안에 각자의 자리가 부여되는 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낯선 감각을 제시하여 사람들의 감각을 바꾸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삶 자체를 변화시키는 예술행동은 결국엔 사회를 변화시키니 정치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배운 건 좌파-우파보다 근원적인 것

우리는 한예종에서 감각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 고민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온하다면 불온하고 정치적이었다면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좌파와 우파로 나눌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운 건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한예종의 예술교육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서사창작과는 생긴 지 5년이 채 안 되었고, 한예종은 15년이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실패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우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과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건 오직 우리 학생들뿐이고, 수업을 평가할 수 있는 이들도 우리 학생들뿐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고치는 게 당연합니다. 서사창작과와 이론과와 한예종을 폄하하시는 저분들이 무슨 논리를 갖고 있는지 저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낯선 감각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 더 넓고 깊게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숭고한 의지보다 강력한 논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의지를 훼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예종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태그:#한예종, #유인촌, #문화미래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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