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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옳은 것인가.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알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오늘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가서 다이어리를 보았다가 위와 같이 써 놓은 것을 보았다. 평소에 나름 정치적이라고 불리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주 피력하던 친구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현재의 상황들을 보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듯했다.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친구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조차 던지기 힘들다.

내 얘기부터 하면 이렇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성향이고, 그 분의 서거를 계기로 과해진 것이 아니며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이라고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싶지도 않고, 이번 일을 계기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지도 않다. 시위에 나가서 전경들이 나를 때리면 피하거나 막기는 하겠지만 전경들을 죽일 놈이라고 욕하고 싶지도 않고(내 친구들 중 다수가 의경이나 전경에 복무 중이다. 난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비판하겠으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괴로움도 이해하고 싶다), 노 대통령의 서거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더욱 확실한 편가르기를 원하고 있는 듯하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 라고 외치며 여러가지 짤방(자신의 글 밑에 사진이나 플래시 영상을 재미로 넣는 것)을 만들어서 뿌리던 사람들은 어디 가고 인터넷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 한 마디만 해도 죽일 듯이 댓글을 다는 사람들만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도 꽤 높다고 들었는데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지지층의 대다수가 장년층이지만 그들이 인터넷을 못하는 것도 아닐 테고 젊은 층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직까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다. 그들은 그저 숨어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인터넷에서 아주 과한데,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면 꽉 막히거나 멍청이인 사람으로 매도 당하기 일쑤다. 나는 현재 대학생 신분인데, 우리 학교 게시판에서는 현 정권의 지지자들과 비판자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싸움을 일삼는다. 그런데 많은 논의에서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무 이유없이 속된 말로 '까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논리를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나마 대학생 커뮤니티 같은 곳은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라서 그런지 좀 낫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존중하기보다는 까대기에 바쁘다. 내일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6.10일 오늘 시청광장에 가기가 부담스러웠던 나는 인터넷 생중계로 시청광장을 보면서 그 옆에 있는 채팅장으로 다른 시청자들과 채팅을 하고 있었는데, 두 번이나 강퇴를 당했다. 그 이유는 '전경들 너무 욕하지 맙시다, 전경들도 불쌍해요' 라고 말했다는 것과, '이명박 대통령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름 이유가 있겠죠, 너무 그러지 맙시다' 라고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나에게 채팅방 방장은 '전경을 옹호했으니 한나라당 알바'라고 말하며 조용히 할 것을 요구했다. '알바가 진짜 있냐, 무슨 근거냐,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알바를 하는 것이냐'라고 되묻자, '지금 그렇게 되묻는다는 것, 전경이 불쌍하다고 선동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바' 라고 말하며 강퇴를 시켰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미 다 강퇴를 당하고 방에는 전경을 그저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민주주의 만세' 를 외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요즘 하도 노래로 불러제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말을 들었고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 아주 버젓이 명시되어 있는 말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민주공화국이 아닌지, 민주공화국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누구나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어야 하며, 민주시민은 그것이 정말 어이없는 의견일지라도 '일단은' 경청하려는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의견이 내 맘에 들지 않다 하더라도 논리적인 문제가 없고 타당성을 갖추고 있다면 인정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소통의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수도 권력이다. 아무리 정당한 뜻 아래 모였다 하더라도 다수는 그 자체로 권력이 될 수 있고 자칫하면 소수를 억압하는 힘을 휘두를 수가 있다. 이 정권이 휘두르는 폭정에 당하고, 막무가내로 소통의 경로를 단절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를 비난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 역시 우리보다 더 소수인 자들에 대해서 귀를 막고 묵살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지금 내가 주장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선인 것 같고 옳다고 느껴진다고 해도 적어도 내가 왜 이 입장에 서 있는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을수록 그 입장이 옳은 것인지, 왜 다른 주장들이 나오는지 한발짝 옆으로 나와서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소통의 활로를 열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나누지 않고 우리가 옳다는 걸 어찌 주장할 수 있겠는가.


태그:#촛불시위, #다수, #표현의 자유,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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