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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촛불 집회 사건과 관련해 이메일을 보낸 것이 재판에 관여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게 신영철 대법관 파문의 관건이다. 그러나 작금에 일어나는 논쟁을 보면 그것과는 하등의 상관없는 논쟁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신영철 파문은 지금까지 15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잇따른 가운데, 지난 2003년 4차 사법파동을 주도했던 박시환 대법관이 재판 개입은 '유신시대의 산물'이라며 지금을 '5차 사법파동'으로 규정하면서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박 대법관은 "신 대법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이번에 재판 개입의 원인을 찾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이 거세지자 박 대법관은 법원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려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라며 진화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신영철 이메일 파문

 

신영철 대법관 파문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을 '몰아주기로 배당'했다는 불만이 터지면서부터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당시 신 대법관이 8건의 촛불집회 사건을 기존의 전산배당 방식이 아닌 한 명의 부장판사에게 몰아주었던 것.

 

신 대법관은 경험이 풍부한 판사에게 맡긴 것이어서 적절한 배당이었다고 했지만 배당을 받지 못한 형사단독 평판사들은 민감한 시국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신 대법관에게 전했고, 신 대법관은 '양형토론회'를 갖고 촛불집회 사건을 무작위 배당하기로 약속했다.

 

이런 와중에 박재영 형사7단독 판사가 지난해 10월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고 피고인을 보석으로 풀어주었다. 이 판결 이후 다른 판사들은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기다리며 잇따라 재판을 연기했다.

 

그러자 신 대법관은 단독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보석을 신중히 결정하라"고 했고, 같은 해 10월14일부터 11월24일까지 판사들에게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 "통상의 방법으로 재판을 진행하라"고 당부하여 재판을 속히 진행하도록 권면했다.

 

헌재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판사들에게 현행법에 따라 유죄 선고를 내리라는 것은 지시나 마찬가지의 뜻이라며 판사들이 반발하면서 파문은 확산되었다. 이후 골고루 사건을 맡기겠다던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신영철 대법관의 버티기

 

전국에서 판사회의가 잇따르는 가운데 급기야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파동과 관련, "재판의 내용이나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을 한 데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고 밝혔다.

 

박찬종 변호사는 지난 3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용퇴하고, 신영철 대법관은 사임하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파동의 정점에 이 대법원장이 있는 것이 명백하다"며 "스스로 변명에 급급한 모습은 사법부 수장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보라"고 말했다.

 

이어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임 시 이른바 촛불시위사건의 불공정 배당과 이번의 이메일 사태에서 개별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사임을 촉구했다. 잇따른 판사회의의 결론도 신영철 대법관의 용퇴를 언급하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고는 한갓 경고일 뿐, 신 대법관은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신 대법관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신 대법관 사건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박시환 대법관의 언급대로 '5차 사법파동'으로 가는 듯 보인다.

 

한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0일 박시환 대법관의 '5차 사법파동' 발언에 대해, "스스로 물러날 사람은 신 대법관이 아니라 뒤에 앉아서 부채질하고 있는 박 대법관"이라며 "그는 이념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가진 이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뒤에 앉아서 젊은 법관들을 선동하는 것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며 박 대법관의 이념을 들고 나왔다.

 

박시환이 신영철 파문의 중심?

 

이에 질세라, <조선일보>는 20일자 사설을 통해, 박시환 대법관이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면서, "박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라는 법원 내 이념조직 비슷한 모임을 만든 사람"이라며 "그 모임 회원들이 소장판사 집단행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그러니까 박 대법관이 이념조직을 만들어 소장판사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설은 "재판 독립이란 명분을 내세운 소장판사들의 집단행동은 법원 내부를 찢어놓고 정치권의 탄핵 움직임을 불러들여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독립이 위협받는 사태를 만들었다"고 했다.

 

<동아일보>도 "민감한 시점에 (박) 대법관이 '사법파동'이라고 규정하면서 논란을 촉발할만한 언급을 한 것은 대법관으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며, "박시환 대법관은 '지금은 절차와 규정을 지킬 수 없는 혁명적 상황'이라고 주장해 판사들의 집단행동을 선동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해, 판사들의 잇따른 집단행동의 중심에 박시환 대법관이 있는 것처럼 쓰고 있다.

 

 

대표적 보수논객인 조갑제씨는 <조갑제닷컴>에서 박시환 대법관을 더욱 신랄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다. "이회창, 조순형, 자유선진당이 용감하게 촛불판사들을 비판하고 있다"며 "법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법치를 부정하는 박시환 대법관을 탄핵할 것을 국회에 요구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소동의 출발부터가 촛불난동 재판이었고, 소장판사들의 집단행동을 지원한 것도 촛불세력이었다"며 "촛불난동 주모 및 지원 세력은 골수 친북좌익 세력"이고 "KBS, MBC, 오마이뉴스, 아고라, 기타 좌경인터넷 매체 등 범좌파세력"이라고 말했다.

 

지금 정말로 사법부를 찢어놓고 있는 게 소장판사들인가. 박시환 대법관인가. 아니면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신영철 대법관인가. 신영철 대법관보다는 박시환 대법관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소위 극우세력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신영철 파문은 극우매체들이 말하듯 박시환을 비롯한 좌파들의 난동이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이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소장판사들의 잇단 회동에서는 훼손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렇다면 '촛불'이나 '색깔논쟁'이 아니고 재판개입 여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종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영철, #박시환, #대법관, #사법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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