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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전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만어산 어산불영(魚山佛影).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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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연이 빚어내는 색깔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초록색만으로도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지난달 25일, 가까운 친구들과 만어사(萬魚寺,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로 가는 길에서도 짙고 옅은 초록색들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어린아이처럼 환호성을 질러댔다.

우리는 창원에서 만나 오전 8시 40분께 만어사를 향해 출발했다. 감물저수지(밀양시 단장면 감물리)를 지나 한참 올라가다 길이 험하고 좁은 탓에 차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30분 정도 갔을까, 돌덩이들이 많은 너덜겅이 나왔다. 거기에서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만어사가 있었다.

만어사 경내로 들어서자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역시 미륵전(彌勒殿) 아래로 펼쳐진 거대한 돌너덜 지대인 어산불영(魚山佛影, 경남기념물 제152호)이었다. 얼마나 많은 돌덩이들이 깔려 있던지 놀람, 경이로움, 신비함이 뒤섞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만어산 어산불영 위로 만어사 대웅전이 아스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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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밀양시 만어사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보물 제466호)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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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466호)을 감상했다.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석탑으로 고려 명종 11년(1181)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인데 지붕돌이 약간 파손된 상태였다.

절집 만어사에는 흥미로운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하나는 창건 설화로 지금 양산 지역의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사람을 잡아 먹는 만어산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내려 농민들이 애써 지어 놓은 농사를 4년 동안이나 계속 망쳐 왔다 한다.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이 주술로 그들의 악행을 막아 보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여섯 비구(比丘)와 1만의 천인(天人)들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를 항복시키고 가르침을 내림으로써 모든 재앙을 물리쳤는데, 이에 수로왕이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여 만어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다.

 
▲ 미륵전 아래 거대한 돌너덜을 바라보면 경이로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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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불 소리와 함께 종석(鐘石)을 두드리던 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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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미륵전(彌勒殿) 아래로 첩첩이 깔려 있는 돌너덜의 어산불영(魚山佛影)에 관한 전설로 사실 우리가 만어사를 찾은 이유도 물고기들이 변해서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萬魚石)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전설인즉슨 이렇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 무척산의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일러준 스님의 말씀대로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게 되자 수많은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가 머문 곳이 바로 만어사였다. 그 후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바위로 변했고 수많은 고기들도 크고 작은 돌로 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만어사 미륵전 안에는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되었다는 5m 정도의 뾰족한 미륵바위를 모셔 놓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고래처럼 생긴 미륵바위의 형상은 신비하다.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잉어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한다.

 
▲ 물고기들이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만어석(萬魚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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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어사의 만돌이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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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떼가 수면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듯한 만어석은 두드리면 종처럼 맑은 소리가 난다고 하여 종석(鐘石)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로 모든 돌에서 맑은 쇳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가볍게 얹힌 돌들에서 그런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보기도 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어쨌든 거대한 돌너덜을 더듬어 내려가며 정말로 맑은 쇳소리가 나는지 돌을 직접 두드려 보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어쩌면 만어사가 있는 곳이 아주 먼 옛날에는 바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의 만어석, 그리고 만어사의 귀염둥이 만돌이를 뒤로 하고 우리는 위양못(경남문화재자료 제167호,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으로 향했다.

위양못 이팝나무 길에서 마냥 걷고 싶었다

 
▲ 아름다운 위양못에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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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못은 신라 시대에 농사를 짓기 위해 만들어졌던 저수지이다. 이곳의 물로 아래쪽 넓은 들판에 물을 대었고, 둑 위에는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풍치를 가꾼 것 같았다. 본디 못 가운데 다섯 개의 섬이 있었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점차로 축소되어 왔다고 한다.

못가에 덩치 큰 이팝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한가한 풍경에 불현듯 따스한 봄을 한껏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바람에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못가를 따라 나는 마냥 걷고 싶어졌다.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는 5월이 되면 위양못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저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나무에 열린 꽃이 쌀밥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이팝나무. 그 이팝나무 꽃그늘 아래 잠긴 고요한 위양못을 바라보며 마음이 따뜻한 친구와 함께 그 길을 걷고 싶다.

 
▲ 경남 밀양시 부북면에 있는 위양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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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히 걷고 싶었던 위양못 이팝나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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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무너진 둑을 인조 12년(1634)에 부사 이유달이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다. 안동 권씨 일문에서 세운 완재정(宛在亭)도 있는데 평상시에는 출입할 수 없게 문을 잠가 두어 못내 아쉬웠다. 요즘 부쩍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잦다는 위양못.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밀양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위양못에서 나와 창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리저리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우연히 그 영화를 촬영했다는 노래연습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영화배우 전도연씨도 와서 식사를 했다는 그곳에서 우리는 청국장 버섯전골을 맛있게 먹고 창원을 향해 또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경주, 울산 방면)언양 I.C→석남터널(국도 24호선)→산내면 남명삼거리→산내면사무소→금곡삼거리→긴늪사거리→밀양시청→밀양역→삼랑진역→삼랑진읍 우곡리→만어사
*(경주,울산 방면)언양 I.C→석남터널(국도 24호선)→남명삼거리→산내면사무소→금곡삼거리→긴늪사거리→밀양시청→춘화삼거리→위양못
*(대구 방면)삼랑진 I.C→ 삼랑진역→삼랑진읍 우곡리→만어사
*(대구 방면)밀양 I.C→긴늪사거리→밀양시청→신촌오거리→춘화삼거리→위양못



태그:#만어석, #위양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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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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