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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종말을 예감하는 코스틀러

지구종말을 예감하는 코스틀러 ⓒ 마스엔터테인먼트


<크로우>(1994), <아이로봇>(2004)등으로 잘 알려진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의 신작
<노잉>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그린 SF 스릴러물입니다.

2009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 50년 전 타임캡슐에 봉헌된 미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재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행사에서 대학교수 존 코스틀러(니콜라스 케이지)의 아들 케일럽(챈들러 캔터버리)이 받은 그림은 복잡한 숫자가 일정하게 적힌 그림입니다.

케일럽이 받은 그림속 숫자를 우연히 재난 사건과 대조해 본 코스틀러는 이 숫자들이 50년 동안 실제로 일어난 재난의 사망자 숫자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 케일럽을 살리기 위해 숫자의 비밀을 추적해 들어갑니다.

<딥 임팩트>(1998), <아마겟돈>(1998), <지구가 멈추는 날>(2008) 등과 같이 지구의 재난과 인류종말을 그린 영화는 과거에도 많았습니다. 과거의 재난영화들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결국 종말론적 영화와 구원론적 영화의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듯합니다.

전반적으로 알렉스 프로야스의 <노잉>은 종말론적 시각과 구원론적 시각이 혼재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론으로 이르는 과정을 꼼꼼히 지켜 본다면 <노잉>은 구원론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잉>이 '열린 결말'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며 이 영화가 어느 방향인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은채 관객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합니다.

지적생명체에 의한 구원론에 가까워

 항공기의 예견된 추락사고

항공기의 예견된 추락사고 ⓒ 마스엔터테인먼트


50년 전 예언과 일치하는 사망자 숫자,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 막을수 없는 대재앙으로 인한 종말이란 극단적 시각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케일럽과 애비(라라 로빈슨)의 조합을 통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구원론으로 방향을 잡아 갑니다.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에 의한 대재앙과 이를 감지한 지적생명체의 보이지 않는 선의의 움직임이 구원론에 가깝다는 견해를 간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듯 합니다.

결국 <노잉>에서 논점이 되는 문제는 구원의 주체가 될듯합니다. 과거 재난영화에서 봐온 인류 구원의 주체는 인류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 혹은 주인공과 관계된 사람이 주로 구원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노잉>은 구원의 주체를 인류에서 찾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은하계를 통틀어 지구에만 인간과 같은 고등 생명체가 존재할 거라는 통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잉>의 주장은 다소 역설적입니다.

인류의 과학기술을 능가하는 고등생명체가 존재하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류를 구원하는 주체가 외계 생명체가 된다는 논리의 흐름은 결국 외계 생명체가 없이는 인류는 영속할 수 없다는 논리로 귀착될 수 있습니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열린 결말을 주장하지만 결국 구원의 주체에서 소외된 인간의 한계를 <노잉>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노잉>은 원신으로 만들어진 항공기 추락 장면, 도시를 덮쳐오는 거대 해일과 미국 도시의 파괴 장면 등 광대한 컴퓨터 그래픽(CG) 영상이 압권이지만, 항공기 추락 장면을 제외하곤 기시감이 많은 장면들입니다. CG감상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영화 속 메시지에 주목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종말론으로 시작해 구원론으로 방향을 틀어잡은 <노잉>은 SF물이자 <X파일>류의 미스테리물에 가깝습니다. 감독의 전작 <아이로봇>에서 그려진 디스토피아가 <노잉>속에서 어떤 결말을 맺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듯 합니다.

노잉 니콜라스케이지 한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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