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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우리 도서관에 찾아온 손님에는 <월간○○> 기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책을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바깥에 간판이 있고 문간에 알림판이 있어도, 이들은 도서관을 도서관 아닌 '책방'으로 알고 있기에, "도서관입니다" 하고 말씀드렸지만, 알아듣지 못한 듯했습니다. "책을 스케치하고 싶다"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기에, '또 그런 치들이구나' 생각하면서 알아서 찍으라고 했습니다. 제 바쁜 글쓰기를 하면서 얼핏설핏 넘겨 보는데, 이분들이 찍는 '책 스케치 사진'은 무얼까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바라보거나 마주할 만한 사진일는지, 촘촘히 잘 꽂힌 책을 담으려는 사진일는지, 멋있어 보이는 책을 보여주려는 사진일는지, 조금 엉성하거나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그리려는 사진일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딱히 묻지 않습니다. 이들이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지 않고, 이들이 보여주는 매무새만으로도 이들이 잡은 틀거리며 찍는 사진이며 환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도서관 나들이를 오는 손님 가운데 어깨에 큼지막한 가방을 걸치거나 커다랗고 시커먼 사진기를 손에 쥐고 들어오는 분들이 제법 됩니다. 이분들도 도서관 모습을 곧잘 사진기에 담곤 하는데, 몇 분 둘러보지 않은 가운데 '도서관 모습을 담아내는 사진'을 보면서, 그 몇 분 사이에 우리 도서관을 얼마나 잘 알아챘기에 저렇게 사진을 찍겠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을 잘 찍는 이들은 몇 해라는 삶을 녹아내지 않고 몇 날만 있어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니, 몇 날이 아닌 몇 시간만 지내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니, 몇 시간이 아닌 몇 분만 있어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니, 몇 분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쓸쓸하지요? 왜 이리 허전하지요?

 

 

하루아침에 찍어내는 사진이라고 하여 모자라거나 아쉽거나 못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세월을 익어내느냐가 틀림없이 사진에 크게 힘을 뻗치기는 하지만, 하루아침에도 사진책 한 권 일굴 만큼 사진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기 나름이며, 우리가 다리품을 팔기 나름이며, 사진을 찍기 앞서 얼마나 세월과 사람과 삶을 우리 가슴으로 받아안고서 우리 두 손에 실어내어 사진기 단추를 누르느냐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필름 한 통 서른여섯 장으로도 사진책 하나 이룰 수 있습니다. 필름 석 통 백여덟 장으로도 사진책 하나 알뜰히 꾸밀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에 제 모든 넋과 얼을 실어냈으면, 다문 필름 한 통이나 석 통만으로도 찍는이와 보는이 눈가에 눈물웃음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이끄는 사진책을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찍어내는 사진으로 우리 가슴을 적시거나 움직이는 사진을 생각 밖으로 얼마 못 만났다고 느낍니다. 이름이 높은 사진작가들 작품 가운데에서도, 이름이 낮은 여느 사람들 작품 가운데에서도.

 

 

한편, 모임이나 동아리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찍은 '막 사진'에서는 하하 웃을 만한 사진을 자주 봅니다. 사진 찍는 재주는 달리 없지만, 한 모임 사람들과 한 동아리 동무 선후배들 흐름을 잘 잡아채고 놓치지 않으며 서로서로 스스럼없이 모든 모습을 감춤없이 담아내곤 합니다.

 

찍히는 사람도 즐겁고 찍는 사람도 즐거운 사진이라. 그렇구나, 서로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하게 되는 사진이라면, 솜씨가 있든 없든 즐거운 사진이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맞아요, 서로서로 즐겁게 어깨동무하게 되지 않는 사진이라도, 솜씨 있게 찍으면 '솜씨 있게 찍은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솜씨 있게 찍은 사진은, '즐거우면서 솜씨 있게 찍은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사람들한테는 조금 더 '사진찍기 솜씨'를 기르고 다스리려는 매무새가 모자랐구나 싶습니다. 솜씨 있는 사람들한테는 조금 더 '즐겁게 어깨동무하기'를 하려고 다가서고 기다리고 녹아들려는 매무새가 없었구나 싶습니다. 서로서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면, '꼭 작품사진으로서 훌륭하지 않게 되'더라도, 오래오래 흐뭇하게 재미나게 신나고 보람있고 멋있으면서 뜻있는 사진, 이리하여 아름다운 사진으로 빛날 수 있었을 텐데 싶습니다.

 

찍히는 사람도 즐겁고, 찍는 사람도 즐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곰곰이 되씹어 봅니다. 사진찍기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즐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즐거움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합니다. 즐거움과 함께 글을 여미고 매만지는 솜씨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글을 다루고 보듬는 땀방울이 같이 있어야 합니다. 글을 붙잡고 다스리는 세월이 나란히 있어야 합니다. 한낱 재미만으로는 모자라고, 한낱 솜씨만으로는 어리숙합니다. 한낱 땀방울로는 이룰 수 없으며, 한낱 세월 곰삭임으로는 빛나지 않습니다. 모두 조금씩 모여야 하고, 모두 꾸준히 영글어야 하며, 모두 차근차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림그리기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림만 잘 그린다고 좋은 그림이 아닙니다. 그림감만 잘 뽑아내어 그린다고 좋은 그림이 될까요? 손재주만으로 그릴 수 없는 그림입니다. 생각이 뛰어나고 줄거리 엮는 재주가 남다르다고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아니에요.

 

 

비싸고 값나가는 장비로 찍을 수 없는 사진임은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오래도록 다리품을 많이 팔았다고 한결 낫게 찍을 수 없는 사진이라고도 말씀드린 적이 있나 모르겠네요. 손재주 훌륭하다 하여 남다르거나 알뜰살뜰 도란도란한 느낌을 담아낼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도 한 적 있든가요? 사진이란, 우리 세상 모든 일과 놀이하고 한 흐름이라고 봅니다. 어느 하나만 잘 되어 있다고 잘 되는 사진이 아닙니다. 어느 하나만 모자람이 없다고 모자라지 않은 사진이 아닙니다. 어느 하나가 훌륭하다고 훌륭한 사진이 아닙니다. 어느 하나가 가슴을 적실 만하다 하여 가슴을 적시는 사진이지는 않아요.

 

거침없이 찍고 스스럼없이 찍되, 찍는 사람한테만 즐거울 사진이 아니라 찍히는 사람한테도 즐거울 사진이 되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거침없이 찍고 스스럼없이 찍되, 이제까지 익힌 모든 솜씨와 재주를 바쳐야 합니다. 거침없이 찍고 스스럼없이 찍되, 한때 한곳을 놓치지 않는 한편 놓쳤더라도 아쉬움을 털고 다른 한때 한곳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침 일찍 인천집을 나서는 길입니다. 옆지기 심부름을 하면서 전철역으로 가다가, 살짝 길을 벗어나 골목 안쪽으로 접어듭니다. 신포시장 옆 내동 언덕길을 끙끙 오르면서 왕만두와 찐빵을 한 점씩 꾸역꾸역 먹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끝나가는 겨울 자락 앞에서 봄을 기다리는 골목집 텃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사진을 몇 장 담고, 우리 나라에 맨 처음 세워진 내동 성공회성당 담장을 따라 거닐며 오래된 집들을 하나하나 담아 봅니다. 오늘은 어느 골목으로 빠지며 전철역 쪽으로 갈까 헤매다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걷는 계단골목을 뒤따라 보기로 합니다. 문패와 사자문고리 들을 가까이에서 한 장 두 장 찍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립니다. 헛. 나무전봇대가 서 있습니다. 오, 여기에 나무전봇대가 또 있었나? 인천 중구 내동 5번지 안쪽 골목집 사이에. 인천 동구 송림동 안쪽 골목에서 나무전봇대를 하나 보고, 이번이 두 번째 나무전봇대입니다. 골목길 거닐면서 목아지 잘려 자국만 남은 나무전봇대를 곧잘 보기는 했어도, 이렇게 튼튼하게 선 채로 골목집마다 전깃줄을 보내고 있는 나무전봇대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어쩌면, 아직 나무전봇대 볼 수 있는 골목길이 더 있는지 모릅니다. 나무전봇대는 수많은 골목길 골목집과 마찬가지로 '돈이 안 되는 시설물' 가운데 하나이므로, 하루 빨리 허물어서 아파트로 바꾸려는 정부와 지자체 정책하고는 어긋나 있습니다. 아니, 지나체 정책을 거스릅니다. 틀림없이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 소담스럽고 멋스러운 나무전봇대가 남아 있는 줄 알면 얼른 뽑아버리려 할는지 모릅니다. 어차피 다 허물 테니까 굳이 돈 들여 뽑아내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질 테지,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고요.

 

 

나무전봇대 님 앞에서 꾸벅 절을 하고 사진을 열 장쯤 찍습니다. 마침 오늘은 날이 아주 뿌얘 한낮에도 빛이 고루 섞이면서 어려움 없이 찍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누런 모래바람이 아니었다면 빛느낌이 고른 사진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천처럼 중화학공장이 살림집 둘레에 빼곡하니 자리잡고 어마어마하게 매연을 내뿜지 않았다면, 이런 한낮에 빛살이 고르게 내리쬐게 되는 고마움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후후.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스모그가, 사진찍는 사람한테는 때때로 고마운 노릇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그리 홀가분한 마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누런 모래바람이요 스모그라 하더라도, 감도를 400으로 놓고 찍어야 겨우 찍을 수 있었으니까요. 최첨단 기계장비 가운데 하나인 사진기는 오늘 같은 날씨에도 저절로 감도를 맞추어 주기도 하여 1600까지 맞추도록 해 주는데, 이렇게 하여 사진 작품은 흔들림 없이 나오게 하고, 여러 가지 셈틀 풀그림을 만지작거리면 티끌도 덜어내기는 하는데, 사진에서는 말끔하고 깨끗할지라도 우리가 숨쉬는 하늘은 말끔하거나 깨끗하지 못합니다. 조금이 아니라 꽤 많이 슬프지만, 이 슬픔을 함께 나눌 만한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옆지기한테는 말할 수 있는데, 옆지기는 일찌감치 뻔히 알고 느끼던 이야기라 '그러니까, 우린 얼른 도시를 떠나야 해'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휴, 시골에 간다고 나아지려나? 내가 느끼기로는 시골에도 논밭 한복판에 아파트가 솟고, 값싼 논밭을 사들이고 산을 깎아 공장 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쓰며 농사짓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면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고달프고 괴로워지려는지.

 

골목마실을 마치고 전철에 오릅니다. 사진기는 무릎에 얌전히 올려놓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습니다. 부천역을 지날 무렵 몹시 졸음이 밀려 책을 덮습니다. 사진기끈을 두 번 오른팔목에 휘감은 다음 눈을 감습니다. 용산역에서 내려 갈아탄 다음부터 다시 책을 펼칩니다. 종로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대화역에 내릴 때까지 눈자위 둘레를 주무르면서 책읽기를 잇습니다. 일산집에 닿습니다. 아기와 옆지기와 처제하고 인사를 하고 밥 한 술을 드니 또다시 졸음이 밀려듭니다. 아기도 이내 잠이 들어 줍니다. 아기와 함께 드러누워 단잠에 들었다가 먼저 깨어났는데, 아기도 아빠가 깨어난 흐름에 맞추어 일어나 주십니다. 이런이런.

 

저녁 무렵이 되니 일산집 식구들이 한 사람씩 집으로 돌아와 아기랑 놀아 줍니다. 그 결에 저는 슬그머니 노트북을 켜 밀린 글을 쓰고, 슬쩍슬쩍 아기(하고 아기랑 노는 처가 식구들)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아기는 저도 먹고 싶은지 입을 오물거리기도 해, 빈 숟가락을 쥐어 주곤 합니다. 그러면 아기는 두 손으로 힘껏 붙잡아 입에 넣으려고 애씁니다. 아기는 곧 일어서려는지 엎드려뻗쳐를 하기도 합니다. 아기랑 노는 한편, 아기 모습을 바지런히 사진으로 담으면서, 아빠며 엄마며 늘 아기하고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먼 앞날 아기한테나 아빠 엄마한테나 서로 즐겁고 흐뭇한 사진이야기 하나 엮이게 되리라 믿습니다. 하루아침에는 엮을 수 없고, 기나긴 세월에 걸쳐, 적어도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묵히고 이어가는 동안 시나브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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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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