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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되는 해주의 겨울방학은 지루합니다. 과천에 있는 대안학교 다니는데 저희 집은 학교에서 좀 떨어진 서초구입니다.친구들에게 버스를 세 번이나 타고 놀러가는 것도 한두 번이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이틀입니다.

"엄마, 뭐하지? 방학이 너무 심심해."

초등학교 3학년때 한글을 깨우친 해주

해주는 한글을 초등학교 3학년때 돼서야 뗐습니다. 해주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친한 엄마들이 "야, 일부러 시킬 것 없어. 학교 가기 전에 어깨너머 다 떼더라"라고 한 말을 전 순진하게 믿었습니다. 그래, 침튀기며 말을 더듬거리던 시영이도 뗀 한글을 야물딱진 해주가 안 떼리라고 생각도 안했습니다. 그렇게 전 정말 어깨너머로 누구나 다 떼는 게 한글인 줄 알았고, 대안학교 샘들도 제게 천천히 하면 된다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런데,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지나도 해주는 한글 뗄 생각을 안합니다.

어깨너머로 남들이 보는 책에 관심을 둘 법도 한데 안 둡니다. 아니 관심은 있었을지 모르는데 이미 남들이 다 한글을 뗀 것에 해주는 주눅이 들어서 성질만 냈습니다. 샘들도 수업할 때 해주만 한글을 모르니 당황해 합니다. 그래서 결국 가르쳐서 3학년때 한글을 뗐습니다. 물론 맞춤법은 아직도 틀립니다. 받침을 몰라 숙제를 할 때면.

"엄마, 꽃에 받침이 'ㅈ' 이야, 'ㅊ' 이야?, 엄마? 괜찮아 할 때, '괜차나야? 괜찬아야?'" 때론 이렇게 둘다 틀린 질문을 합니다.

'초보운전'이라 써붙인 차를 보고 "엄마 저거 나 읽을 줄 알아. 안전운전. 맞지?"라고 자신있게 말했던 그 딸이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됐습니다. 방학이 길어 좋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한 딸이 제가 가져다 놓은 빈박스를 보고 눈을 반짝입니다.

박스로 자기 집을 만드는 딸
 박스로 자기 집을 만드는 딸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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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할려고?"
"내 집 만들 거야."
"니 집? 박스로?"
"응. 오늘 춥잖아. 그래서 내가 추위를 피할 내 집을 만들 거야"
"차라리 보일러를 켜라."
"안 돼. 아껴야지^^"

저희 집은 낮에 보일러를 끕니다. 해주는 학교에서 배운 목공 수업을 활용합니다. 연필을 잡고 칼을 들고 원을 그려 이쁘게 도려냅니다.

"너 멋지다. 이런 것도 다하고."
"사진 찍지마. 또 어디에 올리려고 하지?"
"아니야. 올리긴 누가 올려. 그냥 너의 성장기록 차원으로 찍는 거지."

해주는 아직 컴퓨터를 능숙하게 하지 못합니다. 컴퓨터 시간도 최근 들어 주었는데 일주일에 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하루에 10분씩 나눠 쓰고 있습니다.  그런 해주니 제가 블로그에 자기 이야기를 쓰는지 모릅니다.

다만 어디를 가면 다들 "니가 해주니?"라고 물어대며 묘하게 웃는 사람들이 이상하기만 합니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길 알며 또 몰래 한 행동까지 아는지, 경이롭다는 눈빛입니다^^

대안학교를 보내면서 드는 고민

머리를 빼고 박스에 들어가 보는 딸.
 머리를 빼고 박스에 들어가 보는 딸.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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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엄마, 혹시 엄마가 사람들한테 내 말하는 거 아니야?"라고 진지하게 묻더군요. 아니라고 딱 잡아뗐습니다. 고백하는 순간, 해주의 이야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대안학교를 보내고, 다니면서 꼭 대안으로 보내야 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해주가 일반학교로 전학가고 싶다고 했을 때 더욱 그랬습니다. 공동육아를 졸업하고, 초등 대안학교를 나와 중고등 역시 대안학교로 가는 제 딸들을 보면서 '대안'에는 함정이 없을까 스스로 묻습니다.

사람들이 두 딸을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으니 학교에 관한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자기 아이가 이제 초등을, 중등을 입학하는데 대안학교로 보내야 할지 어쩔지 고민이라고 물을 때 저는 아이의 성향을 보고 판단하라고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대안학교에 맞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또 초등학교는 일반학교의 경험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에게 다시 되묻습니다. 만약 저한테 초등학교에 입학할 자식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역시 대안학교를 선택한다, 였습니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아이가 행복하고, 부모인 제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대안학교가 경쟁력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 아이가 특별해서 아닙니다.

아이만 행복하고 제가 괴로웠다거나, 제가 행복하고 아이가 괴로웠다면 대안학교 보내는걸 다시 생각했을텐데 다행이 아이도 저도 행복합니다. 물론 일반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불행하다, 이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나라 교육현실을 볼 때 공교육에서 아이들이 맘껏 성장하고 행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박스로 옷을 삼은 딸.
 박스로 옷을 삼은 딸.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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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행복하기 위해 지금 행복을 담보잡아야 한다는 다수의 논리가 지금 행복한 아이가 커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소수의 논리를 삼켜버리는 현실이지만 저는 소수에 관심이 갑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돈이 많이 버는 것에, 좋은 대학 나와 출세하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잘 쓰이겠다고 삶의 지향점을 바꾼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더 나아가 스스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면 또 어떨까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저부터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부처님의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일이 무척 망설이니까요.

전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마음이 흔들릴 때 제가 존경하는 간디학교 양희창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키우다 우리 아이가 주류사회에 끼지 못하면 어떡하느냐"고 한 학부모가 질문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재의 미국이, 자본주의가, 설령 100년을 간다 해도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는 것에 반대합니다. 현재 사회에서 말하는 주류를 키워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내것을 이웃과 나눌 줄 알고, 봉사할 줄 아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저도 제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은데 어렵네요.

덧붙이는 글 | 다음(daum)에도 보냈습니다.



태그:#대안학교, #양희창, #자발적 가난, #주류, #간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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