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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 등으로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의 신작 장편소설 <죽음의 중지>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노화는 진행하되, 아무도 죽지 않는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으로 시작했던 <눈먼 자들의 도시>만큼이나 심상치 않은 시작이다.

 

인간들은 영생을 꿈꿨다.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살고 싶어 했다. 그것이 인간의 소망이었다. 그런데 소설이 단 한순간에 그것을 가능케 만든다. 죽음이 중지한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사람들은 기뻐한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자축하기도 한다. 병상에 누워있던 노인들이 일어나고, 불치병에 걸려 하염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던 가족과 친구들이 죽지 않게 되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까.

 

그러나 죽음의 중지가 모두에게 기쁜 것은 아니었다. 장례에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은 일손이 끊겨 죽을 맛이다. 그들은 정부를 압박해 개나 고양이 등이 죽을 때 장례를 치르도록 하려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먹고 살 판이었다.

 

의료계는 어떤가. 죽음의 중지가 곧 젊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병원은 환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진다. 복도마저도 이미 환자들에게 점령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들이기도 마땅찮다. 약을 주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종교계는 어떨까? 종교의 탄생은 어쩌면 죽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죽음이 있어야 사후세계가 있고 신의 부활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돌연 죽음이 사라지니 종교계가 벌여야 하는 사투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일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다. 시간이 지나 인간은 깨달은 것이다. 모두가 죽지 않는 것이 좋은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인간은 왜 오래 살고 싶어 했는가?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이 두려웠고 사후세계라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죽음이 사라지자 인간들은 그제야 왜 오래 살려고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침대 위에서 평생 동안 있는 것이 행복한 것이었을까? 병에 시달리면서도 숨을 쉬는 것이 정녕 바라던 일이었을까?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인간과 이 문명의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을 통해,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앞을 보더라도 진실을 보지 못하는 상황을 통해 그것을 보여줬다. <죽음의 중지>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그토록 죽음을 피했고 그것을 이기려 했던 사람들이 소설 속에는 죽음을 찾아다닌다. 평생 모은 재산을 주고라도 그것을 만나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을,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인간과 문명은 그토록 허약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죽음의 중지>는 작가의 다른 소설이 그렇듯 심상치 않은 설정으로 시작해 집요하게 문제를 파고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집요한 묘사가 이어진 끝에 인간의 허약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거장의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주제 사라마구의 최신작 <죽음의 중지>, 소설의 힘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맛보게 해주고 있다.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2009)


태그:#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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