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효순·미선 사건을 캐나다에서 인터넷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촛불을 든 것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였다. 물론 아직까지 한나라당 등은 그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당시 탄핵 반대의 여론이 높았던 것은 불순한 언론 때문이라고 우기지만 어쨌든 그때 국민들의 70%는 탄핵을 반대했었고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허를 찔린 민주주의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 같은 민초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대뜸 한 말씀 건넸다. 굳이 네가 광화문에 가야 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잠시 머뭇거리던 난 어머니께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훗날 나의 자식들이 아버지는 그때 뭐하고 있었느냐고 물을 때 창피하지 않으려 나간다고.

자식들에게 창피하지 않기 위해...

어느 사회나 발전 과정에 있어서 변곡점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우리와 같이 압축 성장을 하고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나라일수록 그 변곡점이 많은 법인데, 각 개인들은 그 변곡점에서 정치적 선택을 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피력해 역사를 바꾸고자 하며, 어떤 이들은 소극적으로 자신의 책임 혹은 권리만을 행사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민의 한 명으로 호명됨에 만족한다.

이와 같은 개인들의 선택은 민주주의가 그 사회에 정착된 만큼 힘을 발휘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시민 다수의 의견을 바탕으로 서 있는 것임을 전제로 한다면 결국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일수록 개인의 정치적 견해가 적극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일수록 각 개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별것 아닌 개인들의 선택이 모여서 역사가 되며, 그 역사가 훗날 평가되기 때문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겠지만 개인의 행동이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흐름이 자기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후대에게, 더 나아가 역사에 창피하지 않고자 했던 독일인들의 이야기이다. 세계의 모든 역사가들이 절대 악이라고 평가하는 독일 나치. 과연 그 치하에서 살고 있던 독일인들은 모두 히틀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합당한 선거를 통해 히틀러를 총통으로 앉힌 독일인들이지만, 그가 온갖 만행을 저지를 때 독일인들이 모두 그에 대해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혹자는 찬성했을 것이며, 혹자는 두려워서 침묵하고 있었을 것이며, 또한 혹자는 적극적으로 대항했을 터,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히틀러에 대항하는 독일 내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한계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포스터 무거운 영화

▲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포스터 무거운 영화 ⓒ 20세기 폭스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가장 큰 단점은 관객이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연합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해 올 때 지하벙커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상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이 계획한 히틀러 암살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영화의 끝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물론 스크린에는 이미 예고된 결말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극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히 배어 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누구인가.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 뒤 뒤통수를 때린 영화로 유명한 <유주얼 서스펙트>의 감독 아니던가.

영화는 사건이 종료되기까지 관객들의 희망을 부여잡고 있었으며, 그 사건에 있어서 1분 1초가 얼마나 아까운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만들었다. 아마 역사를 모르고 영화를 보는 이라면 마지막까지 꽤 긴장을 했어야 할 듯.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관객들이 히틀러의 죽음과 관련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바, 나의 관심은 왜 그 암살기도가 실패하게 되었는가에 집중되었다. 영화 마지막 자막을 보면 15번씩이나 히틀러 암살기도가 있었다고 하던데 왜 모두 실패하고 역사는 비극으로 치달아야 했을까?

히틀러 암살의 가능성과 실패 요인

그때 그 사람들 독일의 양심

▲ 그때 그 사람들 독일의 양심 ⓒ 20세기 폭스


영화에서 주인공 슈타펜버그 대령은 매우 강직한 인물이다. 처음부터 히틀러의 역사적 과오를 인지하고 있었던 그는 아프리카에서 한쪽 손과 한쪽 눈을 잃은 뒤 더더욱 히틀러 체제에 반기를 들게 되었는데, 때마침 고위 장성까지 연루된 히틀러 암살 세력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주도적으로 용의주도하게 히틀러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대령이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 이용한 요소는 여느 독재자가 다 그렇듯 독재 권력의 가장 약한 끈인 소통의 부재와 맹목적인 복종이었다.

독재자는 항상 자신의 뒤를 두려워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자의 움직임은 철저히 보안에 붙여지고 그의 일상은 베일 속에 가려진다. 구조적으로 독재자와 대중의 소통은 요원하게 되며, 그는 그만큼 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남는 건 독재자의 오만과 독선뿐.

독재자의 소통 부재는 결코 대중과 맺는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정적인 배신은 항상 발밑에서 일어나지 않은가. 결국 자신의 수족까지 믿을 수 없는 독재 권력은 전반적으로 소통 부재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독재 정권에는 상부의 일방적인 지시와 하부의 맹목적인 복종 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슈타펜버그 대령이 히틀러 암살에 쓰고자 했던 예비군 동원령, 즉 발키리 작전은 이와 같은 독재 권력의 소통 부재와 맹목적 복종을 전제로 한 작전이었다. 그는 히틀러의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권력은 그의 죽음 소식과 함께 뿌리째 흔들릴 것이며,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권력의 수족들은 꿈쩍도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절대 권력이 사라진 공백을 접수하여 역사를 바꾸겠다는 대령의 의도.

용기는 가상하지만 뒤늦게 행동을 하는 사람들

▲ 용기는 가상하지만 뒤늦게 행동을 하는 사람들 ⓒ 20세기 폭스


맹목적인 충성 독재 권력에 길들여진 공권력

▲ 맹목적인 충성 독재 권력에 길들여진 공권력 ⓒ 20세기 폭스


그러나 불행히도 슈타펜버그 대령의 작전은 실패하고 만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폭탄테러에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반나절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들이 결정적 계기를 잃었던 것은 그 작전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독재 체제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거사를 계획했다면 모가 되든 도가 되든 행동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저하는 사람들.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영화 속 그들의 주저함은 신중이라기보다 독재체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기회주의에 가까워 보였다. 역사적 사명감과 양심의 목소리가 실행의지와 행동력보다 앞선 상황.

결국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듯이 반역자라는 오명과 죽음뿐이었다. 물론 히틀러의 시대가 지나가고 그들은 역사의 의인으로 남아 추모의 대상이 되었고 훗날 전범이라는 자괴감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위안을 주었지만, 그것은 그 당시 독일의 살아있는 양심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과연 그들이 그 당시 두려움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적극 대응했다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1944년 독일과 2009년 대한민국

영화 속 1944년 독일을 보면서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은 2009년 대한민국이었다. 물론 독재자 히틀러가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갔던 60여 년 전의 독일을 2009년 대한민국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독일과 현재 한국 사회엔 일면 비슷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이야기하면서도 한낱 인터넷 블로거를 구속하고, 광장에 컨테이너를 쌓고, 말도 되지 않는 집시법을 밀어붙이고, 영혼을 잃어버린 공무원은 맹목적인 복종에만 급급한 작금의 현실. 현재 한국 사회는 경제가 더욱 나빠지면 파시즘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혹자들은 이 개명한 21세기에 한국 사회가 파시즘으로 전환될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표할 것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권력의 전횡에 길들여지고, 패배주의에 젖게 된다면 독재 권력의 의지대로 사회가 변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사회가 파시즘으로 전환되기 전에, 좀 더 경색되기 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힘껏 내야 한다. 지금은 역사적 사명감을 띤 양심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기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주저거릴 시간은 없다. 이미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다음은 우리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2009년 대한민국에 또 다른 슈타펜버그 대령이 필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슈타펜버그 대령 독일인들의 양심

▲ 슈타펜버그 대령 독일인들의 양심 ⓒ 20세기 폭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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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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