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엔 참사, '파사익'엔 훈훈함, 이 어찌된 시추에이션의 양극화란 말인가? 하나는 대한민국이고 다른 하나는 유에스에이라서 그런 건가? 하나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라서 그런 건가? 하나는 정치가 개입하고 다른 하나는 예술이 개입해서 그런 건가? 하긴 전쟁도 찍어놓으면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기도 하니까.

미셸 공드리가 공드려(?) 찍어놓은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고 나오며, 다정하게 손을 잡은 애인사이인 듯 보이는 두 사람이 나눈 말이다.

"같은 철거민 이야긴데 왜 이리 다른 거야?"
"그러게? 장소가 다른 데라서 그럴 걸. 하하하"
"너!? …."

용산엔 주검이 나뒹굴고

 미셀 공드리 감독이 'SWEDED VIDEO'란 영화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내놓은 재개발지역 비디오점 이야기다.

미셀 공드리 감독이 'SWEDED VIDEO'란 영화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내놓은 재개발지역 비디오점 이야기다. ⓒ 포커스 피쳐스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참은 말, "그것도 유머라고 하냐?" 여섯 명이나 죽었다. 집 없고, 가난하고, 빼앗기는 게 서러워 그냥 좀 내버려둬 달라고, 그냥 제대로 살만한 대책 좀 세워달라고 외쳐댄 죄 때문에 죽은, 그 외침을 막아야 할 막중한 책무 때문에 불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해 죽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용산의 참사가 유머거리는 아닐 터.

그래서 화가 났다. 그래서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나마저 참지 못하면 누가 참는단 말인가. 하긴 그 참음이 비겁함이긴 하지만. 이런 비겁함에 눌려 있어서 그렇지 아마도 설이라고 미어져라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은 대부분 용산 참사가 가슴에서 아릴 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에선 너무 무거운 사건이 영화에서는 너무 훈훈하게 그려진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현실에서는 살(殺)풍경이 영화에선 살(生) 풍경인 게 신기하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이터널 선샤인> 이후 이렇다 할 영화를 내놓지 않았(못했)던 미셀 공드리 감독이 'SWEDED VIDEO'(스웨덴식 비디오)란 영화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내놓은 재개발지역 비디오점 이야기다.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그토록 인상 깊게 외쳤던 말이다. 지금 용산에서는 그렇게 해달라고, 이제 좀 자리 잡혔는데 그냥 좀 내버려둬 달라고 외쳤던, 아니면 옮겨가는 것까지는 국가시책이라니까 따를 테니 좀 걸맞은 보상을 해달라고 외쳤다가 주검이 된 사람들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가난이 죄가 아니라면 그들의 외침도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인이 되었고, 심지어는 그들을 돕는 이들도 죄인이고 더 나아가 좌측 깜빡이 취급까지 당하는 현실이 되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그저 정치 색깔을 칠하면 그만이다. 참 편하다. 그렇게 빨간색 칠해놓으면 얼마나 처리가 간단한지 모른다.

파사익엔 감동이 나뒹굴고

 미셸 공드리가 각본과 감독을 독식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는 암울한 현실을 영화로 바꿔버린 그만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하지만 난잡하다. 중구난방이다.

미셸 공드리가 각본과 감독을 독식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는 암울한 현실을 영화로 바꿔버린 그만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하지만 난잡하다. 중구난방이다. ⓒ 포커스 피쳐스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난장판이 된 용산과는 달리 영화에서 재개발지역인 파사익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물론 빨간색만 쓰인 건 아니다. 모든 스프레이가 고루 쓰였다. 그래피티라 하던가. 그러나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파사익의 영웅 재즈 가수 팻츠 윌러가 오른쪽으로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유에스에이 경찰은 낙서꾼 불량시민들에게 엄포 한 번 놓고는 그냥 지나간다. 대한민국 경찰은 시끄럽다고 물대포를 쏴댔다. 현실과 영화에서, 경찰특공대와 유에스에이 경찰이 대조를 이룬다. 언해피엔딩과 해피엔딩이 이렇게 갈리는 거다.

미셸 공드리가 각본과 감독을 독식한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는 암울한 현실을 영화로 바꿔버린 그만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하지만 난잡하다. 중구난방이다. 처음에는 그저 말도 안 되는 영화작업을 하는 두 불량시민 이야기다. 근데 끝날 때는 감동이 밀려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법이 아니라 인정이 있기 때문일 거다. 영화 안에서 여러 영화들이 리메이크된다. <고스트 버스터즈> <러시 아워2> <로보캅> <캐리> <라이언 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등이 재탄생한다. 그래서 누구는 “21세기 버전의 <시네마 천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사익의 불량 시민 제리(잭 블랙 분)와 마이크(모스 데프 분)는 꾸준히 만화와 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영화세계를 창조한다. 전력발전소에서 감전 사고를 당한 제리가 친구인 마이크가 일하는 비디오 가게에 들러 테이프 곁에 간 것밖에 없는데, 모든 테이프가 못쓰게 되어 버렸다.

급기야 고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맞춤형 영화제작인 거다. 둘이 종회무진 뛰어다니며 사람을 섭외하고,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찍어대고, 이상한 분장까지 한다. 그러니 난잡하고 이상하고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다. 영화 내내 그랬다면 정말 재미없는 영화로 끝났을 것이다.

한 시간의 힘은 대단하고

 두 불량시민과 합세한 파사익의 시민들이 뭉쳐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는 그 마을 출신 재즈 영웅 팻츠 윌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두 불량시민과 합세한 파사익의 시민들이 뭉쳐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는 그 마을 출신 재즈 영웅 팻츠 윌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 포커스 피쳐스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재개발지역 비디오가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들이 촬영한 영화는 빅히트를 거듭, 말도 안 되는 높은 가격의 대여료를 받고 대여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억지에 가까운 횡포에도 점점 그들이 만든 영화에 빠져든다. 마치 마약이나 술에 빠져들 듯.

하지만 가게가 헐릴 날짜는 급박하게 다가온다. 가게 주인인 일로이 플레쳐(대니 글로버 분)는 이미 재개발에 동의하고 비디오가게를 비워줄 계획을 세워둔 후다. 미스 팔레위츠(미아 패로 분)와 더 높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 마을의 위상에도 공헌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 창출에도 도움 되는 일을 모색한 것.

마지막으로 철거를 맡은 인부들이 도착한다. 두 불량시민과 합세한 파사익의 시민들이 뭉쳐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는 그 마을 출신 재즈 영웅 팻츠 윌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드디어 완성된 영화가 상영되는 비디오가게. 몇몇 시민들이 가게 안에서 시사회를 하는데 철거반원이 이제 철거해야겠다고 한다.

플레쳐는 그들에게 간곡하게 양해를 얻어 한 시간을 지연시킨다. 그 한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영화의 감동은 없었을지 모른다. 창문에 친 화면으로 비치는 팻츠 윌러의 일대기를 감상한 이들은 가게 안의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밖에 모여든 군중들, 윌러를 알고 있는 시민들이 창문으로 비치는 영화를 감상했던 것.

세상에 이런 감동이 어디 있을까. 허무는 게 곧 세우는 것이라는, 삽질하는 게 곧 경제성장이라는, 우리 현실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들의 감동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영화는 한 시간의 힘과 시민을 감동시키는 게 무엇인지 너무나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비카인드 리와인드> 미셸 공드리 감독/ 잭 블랙, 모스 데프 주연/ 포커스 피쳐스, 파르티잔 제작/ 싸이더스 FNH 배급/ 상영시간 102분/ 2009년 1월 8일 개봉
*이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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