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 여당의 언론정책에 대한 반발이 뜨겁다. 언론 장악 7대 악법 저지를 위한 언론노조의 총파업이 이어지고 있고, 국회 또한 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언론노조는 정부의 언론정책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도라며 언론악법이 강행 처리될 경우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언론노조나 야당에서 언론통제와 장악의 전례를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에서 찾고 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잃어버린 10년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이전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이미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훨씬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일제 식민지 시기도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식 역사 인식 속에는 7,80년대를 넘어서 일제 시기까지도 미화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까.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 정책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시킨 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한반도를 통치한다.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이란 국호를 없애고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용어는 절대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따라서 이제까지 발행되던 신문들은 제호부터 바꾸어야 했다.

 

그 결과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했던 <황성신문>은 <한성신문>으로 <대한민보>는 <민보>로,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로 제호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대한’이나 ‘황성’ 등의 용어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제호만 바뀐 게 아니다. 을사조약 이후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란 항일 논설로 유명했던 <황성신문>은 <한성신문>으로 바뀐 뒤 채 한 달도 못되어 폐간되었고,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친일단체 일진회를 비판했던 <대한민보>는 <민보>로 제호를 바꾼 지 하루 만에 폐간되었다.

 

구한말 가장 강력한 항일언론으로 이름을 날렸던 신문이 <대한매일신보>였다.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탄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던 점을 이용해 일제 침략을 비판하고 항일운동을 지지하는 기사를 주로 썼던 가장 강력한 반일 언론이었다.

 

조선총독부는 대표적 항일신문인 <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제호를 바꾸도록 강요하고 아예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다. 식민지 민중들에게 가장 환영을 받았던 신문을 이용해 총독부의 식민지 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널리 유포시키려는 의도였다.

 

문학 작품을 통해 본 <매일신보>의 맨얼굴

 

<매일신보>는 식민지 지배정책을 널리 홍보하고 전파시키는 통로였다. 일제가 조선을 병합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홍보지로 전락했다.

 

그 역할은 주로 기자들이 담당했다. 기자들은 단지 기사만 썼던 게 아니라 신소설, 번안, 번역소설 등을 집필했다. 1910년대 <매일신보>에 근무했던 기자들은 대부분 작가로도 활동했다. 구한말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에 근무했던 기자들이 평론가나 사학자들이 많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따라서 <매일신보>에 등장하는 신소설, 번안소설, 번역소설 등 문학 작품에서도 식민지 지배 구조를 안정시키고, 식민지 지배 체제를 효과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대중들의 의식을 개조시키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반영되었다.

 

주색잡기나 미신숭배 등을 비판하고, 신학문과 경제관념을 강조하면서 식민지 지배로 인해 초래된 변화를 문명개화로 정당화하고 그 변화를 수용하는 인물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문명개화에 힘쓰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신분상승을 하는 내용의 작품들이 많다.

 

한편 일본의 가정 소설을 번안해서 연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수일과 심순애로 유명한 <장한몽>이 대표적이다. 사랑과 돈을 둘러싼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할 뿐 아니라 삽화로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말초적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장한몽은 소설로만 끝난 게 아니라 신파극으로 만들어져 대중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문학 속에서 역사읽기

 

문학 작품 속에는 다양한 역사가 담겨 있다. 이인직의 <혈의누>에서는 의병을 오합지졸의 폭도로 그리고 있다. ‘혈루’라고 해도 될 제목을 굳이 일본식 ‘혈の누’로 붙였던 이인직의 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한국근대소설의 형성과 '매일신보'>를 읽다보면 문학 속에서 역사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했던 조선총독부의 치밀한 정책을 보면서 오슬오슬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매일신보>를 기관지로 만들어 식민지 지배를 굳히려 했던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그러나 1919년 3·1운동을 막지는 못했다. 언론의 통제와 장악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과거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희정/소명출판/2008.8/20,000원


한국 근대소설의 형성과 매일신보 - L-034

이희정 지음, 소명출판(2008)


태그:#매일신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